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치용(야구) (문단 편집) === 아마추어 시절 === [[1979년]] [[2월 23일]] 출생으로[* 2월생이라 빠른 79년생에 해당되는데도 79년생-98학번들과 동기인걸 봐서는 입학유예를 거쳐 제 나이에 맞게 초등학교에 입학했거나 학창 시절 1년 유급한 걸로 보인다.] 서울미성초, 신일중을 거쳐 [[고교야구]] 시절, 강팀 [[신일고등학교 야구부|신일고]]에서 4번을 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었다. 모교인 신일고가 1997년 [[황금사자기]], [[봉황대기]], [[청룡기]] 3개대회 동시 석권을 기록할때 중심 타자로서 맹활약했고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청소년 대표팀]]에 콜업되기도 했다.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1997년]]에 [[LG 트윈스]]의 고졸우선 지명을 받았다. 그 해 서울팜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은 타자 3명이 신일고의 안치용, [[배명고등학교 야구부|배명고]]의 정현택,[* [[MBC 청룡]], [[LG 트윈스]] 역사를 통틀어 게으르고 불성실하기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멘탈]]이 심각하게 개판이었다. 2군에서 햇빛에 얼굴이 타기 때문에 낮경기를 못하겠다며 경기 출장을 거부한 일화는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그럼에도 불구하고 2군사상 최초로 4할타자(.418, 1999년)였다는 것도 전설, 결국 코칭스태프에게 단단히 찍혀서 쫓겨나듯 [[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 되었지만, 당연히 빛을 보지 못하고 쓸쓸히 은퇴하였다. 참고로 박용택의 휘문고와 안치용의 신일고는 강팀이었지만, 정현택의 배명고는 정현택의 원맨팀이었다.] 그리고 [[휘문고등학교 야구부|휘문고]]의 [[박용택]]이었는데, 그 3명을 모두 쓸어 담은 LG는 미래의 클린업을 얻었다고 좋아했고, 이 3명에게 많은 기대를 걸게 되었다. 그만큼 안치용의 고교 시절 위상은 전국구 급이었다. 그러나 프로 입단 대신 [[연세대학교]]의 러브콜을 받아 대학에 진학했고, 신입생임에도 연세대학교 야구부의 클린업 트리오를 꿰어찼지만, 처음 입학 때와는 달리 안치용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 모습을 보이며 '''4번 타자'''로 입학해 '''9번 타자'''로 졸업한다는 소리까지 듣게 되었다.[* 대학생 시절 다이빙 캐치를 시도하다 어깨을 다쳤고, 설상가상으로 타격 훈련을 하다가 손목을 다치는 바람에 내내 재활만 하느라 2~3학년 때는 경기 출장 기록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4학년이 돼서야 복귀하여 8번타자부터 시작했다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