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천 (문단 편집) == 그의 가계에 대한 고찰 == 진주 [[소씨]] 대동보에 의하면 소알천(蘇閼川)의 조상인 [[소벌도리]]공은 신라의 초대 왕으로 칭해지는 [[박혁거세]]를 옹립한 경주 6개 촌장들 중 한 명이었다고 하며, [[최씨]]는 소벌도리의 [[차남]]에서 갈라져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족보]]는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보지 않기 때문에'''[* 족보는 가문의 명예를 위해 위조 및 조작이 가능하기 때문.][* 1차 사료들과 [[교차검증]]이 되는 일부 사례를 제외하고는 인정하지 않는다. 단적으로 [[마한]]의 왕 계보가 [[청주 한씨]]의 족보에 기록되어 있고, [[김해 김씨]] 족보에는 말왕의 존재가 기록되어 있으나 [[교과서]]에서 이들의 이름을 본 적이 있는가?] 그냥 이런 기록이있구나, 하고 보면 된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제작하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도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80092&cid=46620&categoryId=46620|알천]]으로 소개하고 있다. 알천은 삼국사기 기록상 [[신라]]의 왕족으로 김씨일 가능성이 높은데도 소씨의 시조로 나오는 것에 대해서는 이런 해석도 있다. [[사학자]] [[이기백(1924)|이기백]]에 따르면 [[1979년]]에 진주 소씨 서울 종친회에서 사람이 찾아와 진주 소씨 종친회보(宗親會報)에 알천에 대한 글을 써달라고 본인에게 요청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이기백은 알천은 신라의 왕족이고 김씨이므로 소씨일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적당히 둘러대고 거절하여 보냈는데, 이기백은 나중에 신라 말기 [[김해]](金海)의 호족이었던 '''김율희(金律熙)'''가 '''[[소율희]](蘇律熙)'''라고도 기록되기도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고[* 태자사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太子寺朗空大師白月栖雲塔碑)에는 소율희, 《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에는 김율희로 되어 있다.] 金은 음이 '김' · '금'이지만 그 뜻은 '쇠'이므로 蘇라는 글자와 서로 통용되어 쓰일 수 있다는 추론을 하게 되었다. 소씨도 김씨와 마찬가지로 '쇠'를 한자음으로 표기한 한 방식일 뿐이고 실은 둘 다 똑같은 성이라는 뜻.이런 식으로 한자의 음(金은 금/김)과 뜻(쇠, 이후 음차해 蘇로 추정)으로 읽기를 병용하는 방식은 현대 한국어에서는 사용되지 않지만 고대 한국에서는 [[향찰]] 등 많이 사용되었다. 다만 그렇다면 또 의문이 남는데 그렇게 되면 왜 왕족인 소씨가 [[김알지]]/[[성한왕]]도 아니고 하필 6부 촌장 중 하나인 소벌도리를 시조로 삼게 되었는가이다. 같이 소벌도리를 시조로 하는 [[경주 최씨]]의 경우 진골이 아닌 6두품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