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애제(전한) (문단 편집) == 생애 == 제11대 [[원제(전한)|원제]]의 손자이자 제12대 [[성제(전한)|성제]]의 조카였다. 그의 아버지는 정도공왕 유강으로 성제의 이복동생이자 원제의 차남으로 [[효원소의 부씨|소의 부씨]] 소생이었다. 원제의 총애를 받았던 유강은 이복형 유오(성제)와 후계자 경쟁을 벌이다 탈락해 정도왕이 되었다. 원래 유강은 조비연을 사랑했었는데 반대에 부딪혀 이뤄지지 못했다. 그 후, 유강은 그리움으로 [[상사병]]을 얻었고 장안에서 치료받았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유흔은 부친 유강이 승하하자 정도왕을 세습했는데 백부인 성제 유오가 후사가 없어 제위 계승자로 낙점되었다. 애제의 할머니 소의 부씨는 [[효원황후 왕씨|황태후]] 왕정군과 경쟁관계에 있었으나, 손자 유흔을 위해 우선 고개를 숙였고, 성제의 총비이자 그의 무자식의 원인이 되었던 조비연•조합덕 자매에게 뇌물을 쓰면서 회유했다. 그러나 애제 집권 이후, 소의 부씨와 애제의 어머니 정씨의 친척들이 효원황후의 집안인 왕씨를 밀어내고 권력을 독점했다. 부소의는 '''제태태후'''(帝太太后)[* 얼마 뒤에 '''황태태후'''(皇太太后)로 고쳤다. '''태황태후'''에 상당한다.], 정씨는 '''제태후'''(帝太后)[* '''황태후'''에 상당한다.]라는 중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칭호를 받기도 했다. 태황태후 왕정군의 조카였던 [[왕망]]도 이때는 은거하여 지내다가 명성을 얻어 말기에 다시 임용되었다. 애제는 집권 초기에 검약을 실천하면서 당시 심각해지던 토지겸병, 빈부격차 심화 등을 비롯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으나, 외척 부씨와 정씨에 의한 현실의 벽에 부딪힌 후 실망하고, 미남자 [[동현(중국)|동현]]에게 군 고위직인 [[사마(관직)|대사마]]직을 내리며 총애했다.[* 후궁인 소의 동씨의 남동생이다. 애제가 [[남색]]을 했다고 지목되는 원인으로, 후술되는 일화 참조.] 이는 군부와 신료들의 반발을 부르게 되었다. 그렇게 재위 7년간 정치를 돌보지 않다가 병으로 붕어했다. 이후 애제의 외척 정씨와 부씨는 몰락했고, 애제 사후 곧장 태황태후 왕정군이 [[전국옥새]]를 인수한 뒤 명망이 높았던 조카 왕망에게 권력을 주었다. 애제의 총신이었던 동현은 부부동반으로 자살했고, 옥루에 쌓인 시신마저 파헤쳐지게 되었다. 애제의 황후인 [[효애황후 부씨]]와 [[성제(전한)|성제]]의 황후였던 황태후 [[조비연]] 역시 자살했다.[* 효성황후 조비연의 여동생이자 성제의 후궁이었던 조합덕은 이미 성제 사후, 황제 시해 의혹을 받고 자살했다.] 일화로, 애제가 동현과 낮잠을 자다 먼저 깨니, 동현이 자신의 소매를 깔고 자고 있었다. 이에 칼을 가져오게 해 소매를 자르고 일어나 동현이 깨지 않게 했다. 여기서 유래한 말이 동성애를 뜻하는 '''단수'''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