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애처가 (문단 편집) === [[왕국]]의 애처가 === 국왕이 애처가이고 [[왕후]]와 일찍 사별하면, 본의 아니게 백성들이 피를 보는 일도 많다. 당장 왕이 시름에 잠겨 국정이 마비되니 그도 그럴 수밖에. 대표적인 예가 [[고려]]의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 [[무굴 제국]]의 [[샤 자한]]과 [[뭄타즈 마할]]. 공민왕은 노국대장공주 사후 정신줄을 놔버려 [[고려]]왕조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어버리게 되었고, 샤 자한은 [[뭄타즈 마할]]의 사망을 기리기 위하여 [[타지마할]]을 지으며 아스트랄한 돈낭비를 하여 [[무굴 제국]]의 재정을 거덜냈고, 아들인 아우랑제브의 쿠데타로 축출되어 유폐되었다. 사실 국정 마비 정도로 끝나면 양반이고, 왕이 시름으로 국정 놓은 틈을 타 신하들이 백성들을 등쳐먹기도 하며, 재수 없으면 [[타지마할|초대형 토목공사]]로 애먼 백성들이 강제동원되기까지 한다.[* 여성의 경우지만,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부군 [[앨버트 공]]의 사후에 거의 평생 동안 남편을 그리워하며 은둔생활을 하면서 살았다. 그래도 영국은 정식 후계자가 잘한 덕에, 위의 사례들과는 달리 나라가 흔들릴 정도는 아니었다.] 왕 본인이 배우자를 잃고 슬픔에 잠겨도 '아 백성들을 위해선 내가 이러면 안 되겠다'라고 깨달을 수 있을 만큼 개념이 잡히고, 왕이 국정을 잠깐 놓아도 국정이 올스톱되지 않을 만큼 신권이 적절히 보장되는 체제 하에 실무 보는 신하들이 딴 마음도 먹지 않고 능력도 좋은 경우에나 얘기가 달라지지만, [[세종대왕|그 3가지가 다 되는 경우면]][* [[세종대왕]] 본인의 개념은 말할 것도 없고 [[황희(조선)|황희]]를 비롯한 명재상이 있는 데다가 의정부서사제로 정승의 권한도 강해진 때였다. 여기에 [[문종(조선)|세자]]도 대리청정을 능숙하게 해주었다.] 애초에 왕이 시름에 잠기든 안 잠기든 나라는 겁나게 잘 굴러갈 것이다. 특이한 사례로, 국정 문제와는 별개로 군주가 애처가라는 점 자체 때문에 오히려 민심을 잃는 경우가 있었다. [[프랑스 왕국]]의 [[루이 16세]]의 경우 애첩을 두지 않고 정실인 [[마리 앙투아네트]]만 사랑하였는데, 프랑스 민중들은 이를 두고 루이 16세를 '남자답지 못하고 아내에게 휘둘려 사는 바보'라는 식으로 비하했다. 당시엔 마초적인 풍습이 매우 강해서 남자, 그것도 군주라면 여러 애인을 거느리며 왕성하게 성생활을 행해야 남자다운 면모로 여겼기 때문이다.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비방 중에 '못난 남편을 등쳐먹는 못된 여자'란 소문도 여기에서 비롯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