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애처가 (문단 편집) === 실제 인물 === 시대 순으로 배열할 것. * [[네부카드네자르 2세]]: 자신의 고향을 그리워하던 아내를 위해 그녀의 고향을 닮은 정원을 지어주었는데, 그 정원이 바로 그 유명한 [[바빌론의 공중정원]]이다. * [[람세스 2세]]: 가족 중에서도 첫 번째 왕비 [[네페르타리]]를 무척이나 사랑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그녀를 위해 직접 신전을 지어 줄 정도로, 아부심벨 소신전이라 불리우는 아부심벨 대신전 근처의 신전이 바로 그 곳이다. 람세스가 조성한 건축물, 기념물에 이시스 여신과 함께 그려지거나 람세스 2세와 함께 조각된 모습 등으로 유명한데, 일반적으로는 '람세스 2세와 함께' 조각된 곳에서는 람세스 2세의 수십분의 일 크기로 람세스 2세의 발치에 서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아부심벨 소신전에서는 람세스와 같은 크기로 새겨지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다. 그녀에 대한 사랑을 곳곳에 새겨둔 네페르타리의 무덤은 왕비들의 계곡에서도 가장 유명한 관광 명소로 자리잡았다. * [[티베리우스]]: 전처 빕사니아 한정. [[로마 제국]] 상류층에서는 극히 찾아보기 힘들었던 연애결혼이었고, 부부간의 사이도 금슬이 매우 좋았으며 아들인 소 드루수스까지 낳으면서 행복한 가정 생활을 했다. 하지만 양부인 [[아우구스투스]]의 후계자 구도를 위한 판단에 의해 빕사니아와 강제로 이혼하고, 당시 로마에서 가장 바람난 여자로 유명한 아우구스투스의 친딸 [[대 율리아]]와 강제로 결혼해야만 했다. 이런 날벼락 같은 명령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던 티베리우스는 당시 유일하게 양아버지의 결정을 물려줄 수 있는 어머니에게 찾아가 제발 명령을 취소해달라고 눈물로 호소했으나, 강제 이혼 및 결혼 명령의 배후가 어머니 리비아였기 때문에[* 티베리우스의 동생 대 드루수스가 낙마사고로 사망한 후 자기 자식을 꼭 후계자로 만들고 싶었던 리비아는 적당한 기사계급 출신 신랑을 찾아 딸 율리아와 결혼시키려고 한 아우구스투스를 말리면서 율리아의 결혼 문제는 단순한 집안 문제가 아니라 후계자를 정하는 통치 문제라고 설득하면서 티베리우스와 결혼시킬 것을 종용했다. 원래 가까운 가족들에겐 따뜻했던 아우구스투스는 아내인 리비아가 가족 문제가 아니라 통치에 관한 문제라고 부담을 덜어주니 강제적으로 이혼과 재혼 명령을 내리게 된다.] 씨알도 안 먹혔다. 여기에 계속 티베리우스가 버티다간 빕사니아와 아들 소 드루수스에게 해가 미칠 가능성이 있어 결국 굴복하고 만다. 전해지는 에피소드에 따르면 이렇게 강제 이혼한 지 얼마 안되어 로마의 거리에서 빕사니아와 티베리우스가 마주 쳤는데 그녀가 아무 말없이 떠나가자, 티베리우스는 크게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시야에서 빕사니아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만 보고 있었다는 안타까운 사연도 남아있다. 그리고 이는 티베리우스와 리비아의 사이가 멀어지게 되는 큰 요인이 되었다. * [[하후상]]: 본처가 아닌 첩에게 애처가였다. 첩을 얻은 후 첩에게는 천하의 애처가였는데, 그걸 본처 [[덕양향주 조씨]]의 일족인 [[조비]]가 암살해버렸다. 첩이 죽은 후 무덤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가 사망했다. * [[모용희]]: 아내에게 푹 빠져서 사치와 낭비로 나라 말아먹은 전형적인 케이스. 이게 정도가 지나쳐 아내가 죽은 다음엔 '''[[시간(동음이의어) #s-2|시간]]'''[* 그러니까 죽은 아내의 시신을 '''[[간음]]까지''' 했다.]까지 했다. * [[강수]]: 아내가 천한 대장장이의 딸이었지만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했다. *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법까지 바꿔가며 아내 [[테오도라(6세기)|테오도라]]와 결혼했다. * [[흥덕왕]]: 왕비인 [[장화부인]]이 자신보다 먼저 사망하자 매우 슬퍼했고, 주변의 신하들이 새 왕비를 들이라고 권유해도 전부 거부하며 장화부인만을 그리워하다가 사망했다. 사후에나마 아내와 함께 합장되었다. 이는 신라 역사상 유일하게 왕과 왕비가 합장된 경우다. * [[현종(고려)|현종]]: [[현화사비]]에 자신의 1비 [[원정왕후]]를 추모한 기록이 남아있다. * [[송진종]]: [[장헌명숙황후 유씨|유아]]를 매우 사랑했다. 본래 유아는 유부녀였기에 아버지 [[태종(송)|송태종]]이 이 사실을 알고 격노해 그녀를 내쫓고 극구 반대하면서 결국 다른 황후까지 들였다. 그러나 진종은 굴하지 않고 그녀와 밀회를 무려 15년간이나 즐겼다. 결국 그녀를 반대하던 아버지가 붕어하고 자신이 즉위하자 기어이 그녀를 [[후궁]]에 봉했고, 나중엔 [[황후]]로 만들어 주었다. * [[윌리엄 1세]]: 당시 시대상 흔히 존재하던 [[사생아]]는커녕[* 참고로 [[윌리엄 1세]] 본인도 [[사생아]] 출신이다. 때문에 아래에 서술된 마틸다와의 혼담처럼 정통성 관련으로 공격을 많이 받았다.] 정부를 두었다는 기록조차 전무할 만큼, 아내인 [[플랑드르의 마틸다]]와의 사이에서 많은 자식을 낳았을 정도로 부부 금슬이 좋았다. 참고로 아내 마틸다의 결혼 일화가 매우 [[흠좀무]]하다. 윌리엄 1세가 처음 청혼했을 때 마틸다는 그가 사생아라는 이유로 거절했는데, 이에 열받은 윌리엄 1세가 다짜고짜 마틸다를 찾아가서 그녀를 두들겨 팼다.[* 두들겨 팬 장소로 여겨지는 곳도 흠좀무한데, 하나는 '''교회'''고 다른 하나는 '''마틸다의 방'''이다. 그러니까 공작씩이나 되는 사람이 교회에서 대놓고 사람을 두들겨 팼다거나, 금남의 구역인 여성 귀족의 방에 쳐들어가서 두들겨 팼다는 말이다.] 당연히 이 상황에 마틸다의 아버지 플란데런 백작 보두앵 5세가 분노해 윌리엄의 목을 베려고 하자,[* 아버지로서 화가 나는 건, 물론 보두앵 5세는 [[앙리 1세]]의 매부이자 [[필리프 1세]]의 섭정이었다. 한마디로 '''프랑스 최고의 실권자'''였다는 건데, 그런 자신의 딸이 사생아 출신인데다 프랑스의 봉신국 공작에게 얻어맞았으니 분노하는 건 당연했다.] 마틸다가 아버지를 가로막으며 '''"이 남자 아니면 결혼 안 한다"'''라고 하면서 결국 결혼하게 되었다고 한다.[* 역사학자들은 이를 두고 사생아라는 말에 저 정도로 게거품을 문다면 사생아를 만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결혼한 거라고 추정한다. 실제로도 윌리엄 1세는 사생아가 없었으니 나름 일리 있는 말이다.] * [[요안니스 2세]]: 일평생 아내 한명만 바라보고 살았다고 한다. * '''[[공민왕]]''': 정말 애절하게 사랑하던 [[노국대장공주|아내]]가 죽은 후 완전히 폐인이 되어 [[신돈]]에게 나랏일을 맡기고 영전 공사에만 치중하면서 타락했고, 결국 자신과 함께 방탕한 짓을 하던 [[홍륜|친위대]]에게 살해되었다. * [[주원장]]: 황제가 되기 전부터 자신을 물심양면으로 내조하던 어진 성품의 [[효자고황후|효자고황후 마씨]]를 몹시 사랑했고, [[전족]]을 하지 않아 발이 큰 마씨를 놀리는 그림을 보고 낄낄거리는 백성들을 처형하려 했으나[* 진짜로 이건 황제의 아내, 그것도 정실을 능멸했다는 이유로 죽여도 이상할 게 전혀 없는 일이었다.] 마씨의 만류로 그만두는 일도 있었다. 마씨가 죽은 후 주원장은 일주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매우 비통해 했으며 두번 다시 황후를 들이지 않았고, 공신을 때려잡는 황제가 되어 버렸다.[* 마씨 생전에도 안 잡은 건 아니지만 마씨의 만류로 적절하게 했는데, 마씨 사후 말리는 사람이 없으니까 마구 때려잡게 되었다.] * [[조선]] [[태조(조선)|태조]]: 물론 경처 [[신덕왕후|신덕왕후 강씨]] 한정. 조선이 개국될 당시에 이성계의 향처인 [[신의왕후|한씨]]는 이미 사망한데다가, 성격이나 친정 세력이 강씨에게 밀려 존재감이 없어서, 이성계는 강씨를 유일한 왕후로 책봉했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강씨의 소생이자 막내아들인 [[이방석]]을 왕세자로 세우기까지 한다. 강씨에 대한 극진한 총애가 그녀의 아들인 방석에게까지 이어진 건지, 아니면 친자를 세자로 세우고 싶은 강씨의 폭풍 잔소리에 알아서 기었는지는 알 수 없다. 전자는 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서, 후자는 드라마 <정도전>에서 묘사된다. 하지만 모든 자식들 중 가장 막내인 방석의 세자 책봉은 엄연히 정치감각이 떨어진 판단이었는데, 한씨 소생의 왕자인 [[이방원]]이 참고참다가 들고 일어나자 종친과 대신들 대다수가 [[이성계]]와 [[이방석]]을 저버린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 [[조선]] [[정종(조선)|정종]]: [[불임]]으로 추정되는 [[정안왕후]] 김씨가 자식을 끝내 낳지 못했지만, 그래도 버리지 않고 평생 같이 살았다. 새 장가를 들려고 하는 동생 태종에게[* 정확히는 일부러 [[후궁]]을 성대하게 맞으려고 한 일. [[원경왕후]]의 항의에 대한 맞불이다.] "나는 자식도 없지만 소싯적 정으로 사는데 왜 너는 새장가를 들려고 하냐"고 나무라기도 했다.[* 결국 조촐하게 새 후궁을 맞아야 했다.] 왕에서 물러난 후 정사에 간섭하지 않던 정종이 태종에게 간섭한 몇 없는 사례. 이와 별개로 후궁과 첩에게 얻은 자식이 수십 명이다. 물론 이혼하고 새 정실을 맞아 적자녀를 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던 것에는 태종을 의식한 정치적인 [[처세]]도 없지는 않았다고 본다. * [[세종대왕]]: 역대 조선 임금들 중에서 가장 많은 정실 자손을 본 임금으로, 자신의 정실 왕비인 [[소헌왕후]]와의 사이에서 본 자녀는 무려 8남 2녀. 부친 [[이방원|태종]] 때문에 소헌왕후의 친정인 심씨 가문이 멸문당하긴 했지만[* 그나마 나중에 심온의 아내와 자식들은 세종이 복권시켜주었다. 이때 그들은 '''노비였다.'''][* 이 과정에서 세종은 아무 역할도 못했으며 이후 심온을 복권시켜주지 않았는데(심온을 복권시킨다는 건 결과적으로 태종을 거스른다는 의미가 된다. 아버지를 진심으로 존경했던 세종으로서는 차마 하지 못했던 일이다.) 아마도 이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텐데, 소헌왕후는 이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심온이 억울하단 거야 '''세종도 알고 있었으니''' 소헌왕후라고 모르진 않았겠지만 그럼에도 그 일을 제기하지 않은 채 내조를 했고, 그 결과 '''소헌왕후는 조선시대에 가장 모범적인 왕비로 꼽혔을 정도다.''' 이 정도니 잘 해주려고 하지 않는게 이상할 일.] 꽤나 금슬이 좋았다고 한다. [[후궁]]도 많긴 했지만 이건 태종의 강권(외척 견제)도 다소 작용한 것으로 그 시기도 다소 늦다. 후에 [[소헌왕후]]가 승하하자 차남 [[수양대군]]을 시켜 '석보상절'을 만들게도 했다. * [[세조(조선)|세조]]: 자신의 왕비인 [[정희왕후]]에 대한 사랑이 극진했다는 게 실록에도 적혀있다. 국정에 대한 의견을 들을 때도 정희왕후의 의견을 많이 참고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그녀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특히 정희왕후는 [[계유정난]] 당시, 시할머니 [[원경왕후]] 못지 않게 세조를 많이 도와줬다. 그래서 세조의 후궁도 '''단 2명'''밖에 안 되고, 그나마 모두 수양대군 시절에 첩으로 들였다가 즉위 후에 후궁으로 격상한 형태이며, 즉위 후에 후궁을 새로 들인 적이 없었다. 다만 세조는 불혹에 가까울 때, 즉 늦게 즉위하였던 것도 감안하여야 한다.[* 정확히는 만으로 39살 때 즉위.] * [[연산군]]: 방탕한 삶과 대표되는 호색한의 이미지를 생각해 보면 의외일 지 모르나, 실제로는 정비인 [[폐비 신씨]]를 아꼈다. 실록을 보면 신씨가 왕대비와 [[선릉]]에 친제[* 친히 제사를 지낸다는 뜻.]하러 갔다고 교외나 제천정에 나가 직접 맞이하였다는 기록도 있고 [[http://sillok.history.go.kr/id/kja_10109011_001|연산군일기 연산 1년 9월 11일 신묘 첫 번째 기사]], [[http://sillok.history.go.kr/id/kja_10209005_001|연산 2년 9월 5일 무신 첫 번째 기사]], 신씨가 친잠례를 했다는 이유로 교서를 반포한 적도 있다.[[http://sillok.history.go.kr/id/kja_11003027_001|연산 10년 3월 27일 무자 첫 번째 기사]] 다른 기록에는 "중궁이 너무 어질고 덕이 많은데, 내가 말하지 않으면 남들이 모른다"고 안타까워한다. 그러면서 신씨의 어진 덕을 알리기 위해 옥책을 내리겠다며 옥책문에 들어갈 어질고 아름다운 내용을 조목조목 밝히며 명하는가 하면 [[http://sillok.history.go.kr/id/kja_11106007_001|연산 11년 6월 7일 경신 첫 번째 기사]], 그 다음 날에 바로 옥책을 내린다고 전교한다. [[http://sillok.history.go.kr/id/kja_11106008_003|연산 11년 6월 8일 경신 첫 번째 기사]] 며칠 뒤에는 옥책을 직접 내리고 싶은데 이미 즉위한 중전에게 내리는 예법이 없어 절차를 신하와 의논한다. 그러면서 내외명부를 모조리 불러 보게 하려다가 장소가 협소하다는 이유로 까인다. [[http://sillok.history.go.kr/id/kja_11106012_003|연산 11년 6월 12일 을축 3번째 기사]] 아예 중전의 덕을 황금에 새겨 치하하게 하기도 했다. 그런데 국고가 텅텅 비었을 때인데다, 옥책 내린지 1달 정도밖에 안 지났다(…). [[http://sillok.history.go.kr/id/kja_11107009_003|연산 11년 7월 9일 임진 3번째 기사]] 둘 사이에서 낳은 아이 역시 많았는데, 요절한 자식을 포함하여 8명을 중전에게서 보았다. 폐위되어 유배를 간 연산군이 죽기 직전 남긴 유언도 "신씨가 보고 싶다"는 말이 전부였다. [[http://sillok.history.go.kr/id/kka_10111008_002|중종 1년 11월 8일 계미 2번째 기사]] 애초에 신씨는 미쳐 돌아가는 말년의 연산군에게 싫은 소리를 하거나 말리고, 직언을 해도 아무런 해를 입지 않은 인물이다. 아니, 에초에 연산군은 신씨에게 화조차 내지 않았다. [[갑자사화]] 당시 연산군이 칼을 휘두르며 미쳐 날뛸 때도, 신씨가 말리자 순순히 칼을 집어넣고 물러난 일도 있다. * [[헨리 8세]]: 3번째 부인 [[제인 시모어]] 한정. * [[조지 3세]]: 아내인 [[조피 샤를로테|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샬럿]]과 사이가 좋았고, 사생활도 깨끗한 축에 속했다. 그는 당시의 왕족이나 귀족으로서는 드물게도 일생동안 단 한번도 바람을 피우거나 정부도 두지 않았다. 9남 6녀에 달하는 많은 자녀들도 모두 샬롯 왕비로부터 얻었다. 거창하게 시종이나 귀족을 곁에 대동하고 다니던 왕실의 산책과 달리, 부부끼리만 오붓하게 산책을 즐기는 걸 낙으로 삼았다고 한다. 또 아내에 대한 사랑이 워낙 지극해서, 샬롯 왕비에게 [[케이크]]를 선사할 때에 케이크에 아내의 이름에서 따온 명칭을 붙이기도 했다. * [[쉴레이만 1세]]: 이전까지는 정식으로 황후를 두지 않았던 [[오스만 제국]]에 최초로 황후를 맞이하여 결혼하였다. [[휴렘 술탄]]이라고 불리는 그의 황후는 다름 아닌 '''[[노예]] 출신'''이었다. * [[윤원형]]: 첩인 [[정난정]] 한정. * [[이반 4세]]: 첫번째 아내 아나스타샤를 각별히 사랑했는데, 그녀가 사망하자 '''광기가 폭발했다'''.[* 아나스타샤가 사망하자 "아냐스타샤를 데려간 신은 잔인하고 무분별했다. 이제부턴 나도 똑같이 행동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 [[이황]]: 첫째 부인과 27세에 사별 후 후처 권씨와 재혼했으나, 그녀는 정신이 온전치 못해 비정상적인 행동을 자주 했다. 그럼에도 그때마다 권씨를 감싸주었다. * [[모리 모토나리]]: 정실 묘큐와 금슬이 아주 좋았다. 그녀가 죽은 이후로 "그녀가 살아있었다면 좋았을텐데" 같은 생각을 자주 한다고 적장자 [[모리 타카모토]]에게 말한 적도 있다. * [[시마즈 요시히로]] * [[아케치 미츠히데]] *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 [[호소카와 타다오키]] * [[도쿠가와 히데타다]]: 애처가로 유명해 각종 사극에서 아내에게 꼼짝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샤 자한]]''': [[무굴 제국]]의 5대 황제로, 단지 아내 [[뭄타즈 마할]]에 대한 애처심 때문에 그 유명한 [[타지마할]]을 세워버렸다. 다만 너무 정신줄을 놓은 나머지 말년이 비참했다. * [[숭덕제]]: 후궁 [[민혜공화원비]] 해란주를[* 숭덕제의 정실 황후인 철철의 조카이며, 같은 숭덕제의 후궁이자 [[순치제]]의 생모 [[효장문황후|포목포태]]의 언니이기도 하다. 고모와 자매가 한 남자에게 시집을 간 셈.] 황후와 수많은 후궁들을 제쳐두고 가장 총애했으며, 나중엔 총애를 뛰어넘어 남녀 간의 연정으로 이어질 정도로 그녀를 매우 사랑했다. 해란주가 아들을 낳자 크게 기뻐하며, 이미 성년이 된 황자들이 있었음에도 바로 황태자로 삼았을 정도. 하지만 해란주의 아들은 1살이 채 못 돼 요절했고, 그로부터 3년 뒤에 해란주마저 세상을 떠났다. 숭덕제는 5시간 가까이 통곡하다 실신할 정도로[* 이때 신하들마저 숭덕제가 울다 쓰러져 죽는 줄 알았다고 한다.] 해란주의 죽음을 매우 애통해했고, 이후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해란주를 그리워하며 시름시름 앓다가 급사한다. * [[순치제]]: 가장 총애하던 후궁 [[효헌단경황후|동악비]]가 젊은 나이에 요절하자 그녀를 바로 황후로 추존했다. 이후에도 그녀의 죽음을 계속 슬퍼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순치제도 세상을 뜬다. 일각에선 "순치제가 동악비의 죽음을 너무나도 슬퍼한 나머지, 붕어를 가장해 나머지 [[승려]]가 되어 은둔했다"는 설도 있을 정도. * [[장희재]]: 첩인 숙정 한정이다. 본처인 자근애기는 심하게 홀대했다. 이로 인해 자근애기는 남편과 그 첩에게 원한을 가졌고, [[갑술환국]]에서 장희재와 숙정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 [[강희제]]: 옹정제의 어머니인 [[효공인황후|덕비 오아씨]]를 아낀 기록이 보인다. * [[건륭제]]: 자신의 첫 황후인 [[효현순황후]]가 병들자 [[산동성]]까지 같이 여행할 정도로 그녀를 아꼈다. 하지만 그만 황후가 죽자 이성을 잃고, 그녀의 죽음을 제대로 애도를 하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모조리 벌을 주었다. 이 때문에 몇몇 아들들은 제위 계승권마저 잃었을 정도다. 이후에도 평생 효현순황후가 준 선물인 부싯돌 자수주머니를 간직하고 살았으며, 그녀를 평생 그리워하며 수많은 시를 지었다. * [[정약용]]: 유배되어 있을 때 아내가 자기가 결혼 날 입었던 다홍치마를 보내자 그 위에다 편지를 써 보낸 적이 있었다. 그만큼 가족을 걱정하고 아끼는 성격이었다. * [[루이 16세]]: 성 문화가 매우 자유로운 [[프랑스]]에서 정부 한 명 안 들이고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만 바라본 순정남이다. 다만 아내를 향한 그의 순정은 [[프랑스 혁명]] 시기에 앙투아네트가 천하의 몹쓸 사치 패륜녀로 낙인찍힌 데에 간접적으로 한몫을 했다. 당시 [[프랑스]]에서 왕의 정부는 백성들에게는 나랏님 욕하고 싶을 때, 왕을 욕하면 반역이 되니 대신 욕하는 욕받이 노릇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이 16세는 정부가 없었기에,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그 모든 욕을 다 들어먹어야 했다.[* 앙투아네트 본인의 결점과 실책도 없지는 않았지만, 현대에는 '잘못한 것보다 심하게 비난받았다'는 평이 많다.] * [[앤드루 잭슨]]: 아내인 레이첼은 전남편과 이혼하고 잭슨과 재혼했는데 당시 처리가 대차게 꼬이는 바람에, 법적으론 이혼처리가 안 되어 있어서 잭슨과의 관계는 [[간통]]으로 간주되었다. 이에 주변사회는 아내 레이첼과 잭슨을 비난하는 경우가 많았고, 잭슨은 아내가 모욕당하는 것에 [[결투]]까지 벌일 정도로 크게 분노했다. 정계에 진출하고 나서 아내에 대해 공격하는 정적들이 많아지자 그 정적들에게도 분통을 터트렸다.[* 일례로 [[헨리 클레이]]가 레이첼을 비난하자 평생 그를 증오했고, 후에 정계에서 정적이 되어버리자 '그때 죽였어야 했는데!'라고 후회 섞인 분노를 했을 정도다.] 아내를 모욕했다고 목숨 건 결투까지 할 정도였기에 부부간의 금슬은 굉장히 좋았다고. 사실 잭슨은 굉장한 다혈질이라 아내의 일 외에도 수많은 결투를 벌였다. * [[에이브러햄 링컨]] * [[로베르트 슈만]]: 아내 [[클라라 슈만|클라라]]를 매우 사랑해서 결혼하려고 했지만 서로의 부모님이 반대했는데, 슈만은 클라라와 재판을 통해 결혼하게 되었고, 그 뒤에 많은 곡을 작곡했다. * [[앨버트 공]]: 성격이 괴팍하기로 유명했던 [[빅토리아 여왕]]과 죽을 때까지 금슬 좋은 부부관계를 유지했다. 당시 시대상 그 흔한 애첩 하나 두지 않고 일편단심 여왕만 바라보며 정치적으로든 가정적으로든 적극적으로 그녀를 지지하고 도와주는 등,[* [[빅토리아 여왕]]은 당시 손꼽히는 강대국인 [[대영제국]]의 여왕이었던 반면, [[앨버트 공]]은 명문가이긴 하나 [[독일]]의 군소공국 중 하나인 [[작센코부르크고타]]의 공자여서 신분의 차이가 꽤 있었다. 때문에 앨버트 공이 애첩을 둘 형편은 아니였을 것이다. 하지만 무려 [[오스트리아 제국]]의 여제였던 [[마리아 테레지아]]의 부군인 [[프란츠 2세]]도 애첩을 여럿 둔 전적을 생각하면, 오로지 아내와 자식들에게만 집중한 앨버트 공이 엄청난 것도 사실이다.] 그 당시 [[영국]] 기준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21세기인 현재 기준으로도 거의 완벽에 가깝다고 해도 될 정도의 애처가의 면모를 보여줬다. 그래서인지 성격이 괴팍했던 빅토리아 여왕도 앨버트 공의 말은 비교적 잘 들었고, 아이들을 그리 좋아하진 않았지만 앨버트 공이 아이들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의사]]들의 만류를 무시하고 결혼생활 내내 많은 아이들을 낳았다. 앨버트 공이 [[에드워드 7세|자신의 아들]]을 훈계하려 무리한 여행을 하다 병에 걸려 죽자 빅토리아 여왕이 아들을 평생 용서하지 않았다는 야사가 있을 정도다. * [[클로드 모네]] * [[알렉산드르 3세]]: [[덴마크]] 태생의 황후 [[덴마크의 다우마]]가 타국 [[러시아]]까지 시집을 와 [[향수병]]에 시달리자 아내를 위하여 보석 장인 파베르제에게 [[달걀]] 모양의 [[보석]] 공예품을 주문하여 선물하였다. 그 파베르제의 달걀은 러시아 보석 공예의 상징으로 취급되고 있으며, 총 50개가 제작되었으나 7개는 분실되고 지금은 완전히 부르는 게 값이다. * [[율리시스 S. 그랜트]] 아내와 자녀들을 매우 각별하게 생각했으며, 가족들이 곁에 없으면 외로움을 많이 탔다고 한다.[* 그랜트는 학생 시절에도 친구 없는 외톨이였다고 한다. 아무래도 사교적인 성격은 아니었는 듯.] 실제로 군인이었을 당시, 작전이 없을 때면 아내와 자녀들을 그리워하며 술을 진탕 퍼마셨다고 한다.[* 이게 너무 심해서 불명예 전역까지 했다(…)] 매우 가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다. * [[체스터 아서]] *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병약한 아내 옆에서 매일 저녁 책을 읽어주고 직접 간호했으며, 죽기 직전까지도 아내의 건강을 걱정했다. * [[윌리엄 매킨리]]: 이 사람도 [[퇴계 이황]]처럼, 아내가 정신이 온전치 못했지만 아내를 잘 돌봐줬다. 심지어 암살자의 총격을 받아 죽어가는 와중에도 "내가 죽으면 아내는 누가 돌봐주냐"고 한탄했다. * 다케치 즈이잔 * [[카를 벤츠]]: [[메르세데스-벤츠]]의 그 벤츠로, 1879년 마지막 날까지 벤츠가 제작한 자동차 엔진의 시동테스트에 계속 실패하던 와중에도, 아내 베르타 벤츠가 "한 번만 더 해보자"고 계속 조르면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부탁을 들어주고 실험을 계속 진행해, 마침내 해가 바뀌기 전에 시동테스트에 성공하였다. 이후 베르타가 칼 벤츠 몰래 벤츠의 발명품인 자동차를 가지고 집(만하임)에서 약 100km 떨어진 친정(포츠하임)까지 갔다 와서는 사과 한 마디 없이[* 물론 진짜로 아예 안한 건 아니고, 중간에 자동차를 몰래 가지고 나간 것에 대해 사과하는 내용의 전보를 한 번 보냈었다.] 오히려 자동차를 몰면서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필요한 개선사항을 제시하는데, 그걸 불만 없이 또 자동차에 반영하여 상용화에 성공했으니 진정한 애처가라고 할 수 있다. 본인의 회고록에서도 "가라앉을 위험에 처한 배와 같은 나의 인생을 지켜준 사람은 아내뿐이었다."고 적을 정도. * 고틀리프 다임러: [[다임러 그룹]]의 그 다임러로, 자신이 직접 마차의 차량을 개조해서 내연 기관 자동차를 발명한 이유가, '''아내 엠마 다임러의 생일 선물로 주기 위해서였다.''' * [[조선]] [[고종황제]]: [[일본]]의 손에 죽은 [[명성황후]]가 죽은 후로, 죽을 때까지 새로 정실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최초의 전차가 청량리까지 이어진 것도 그곳에 명성황후의 능이 있기 때문이며, [[명성황후]]가 죽자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거액의 돈을 들여 황후의 무덤에 [[전화]]선를 연결해 매일 밤마다 전화했다는 기록도 있다.[* 실제로 고종은 [[전화]]를 꽤 좋아했다. 신하들은 반대했지만 '''[[신정왕후 조씨]]의 3년상조차 전화로 했다.'''(전화기에 대고 아이고~ 아이고~ 한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순종황제]]도 부황이 붕어하자 부황의 능인 홍릉 옆에 전화기를 설치하고 전화로 3년상을 했다. 물론 이때는 [[일본]]이 순종황제의 외출에 상당한 제약을 가했기 때문인 것도 있다.] 명성황후가 죽자마자 전에 총애하던 [[순헌황귀비|엄씨]]를 불러들인 것도, 명성황후를 닮아서 그랬다는 설도 전해진다. * [[에드워드 엘가]]: 아내를 위한 선물로 <사랑의 인사>를 작곡했다. 아내가 죽은 뒤 상심에 빠져 작곡에 손을 놓다시피하기도 했다. * [[마르크 샤갈]] * [[미하일 니콜라예비치 대공 ]]: [[니콜라이 1세|아버지]]와 형들이 혼인생활 중에도 정부와 사생아를 기본으로 두고있었으나, 미하일 대공은 [[바덴의 체칠리에|아내]]만을 아끼고 사랑했으며 아내가 사망한 뒤에도 재혼하지 않고 홀로 여생을 보냈다. * [[이오시프 스탈린]]: 첫 아내가 병으로 사망한 후 죽은 아내와 같이 묻히겠다며 소동을 벌였을 뿐더러, 측근에게 '''"내 인간성을 아내와 같이 묻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아내가 결혼 후에 너무 빨리 죽은 나머지 정이 들 시간이 부족했을 텐데도, 아내가 죽기 전에는 자상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가 아내의 죽음 후에 급격히 흑화되어 [[대숙청]]을 비롯한 여러 폭정을 벌인 독재자가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재혼한 둘째 아내와는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말이 있지만, 둘째 아내가 죽자 정치국에 사표하고 서기장에서 물러날 생각을 한 것을 보면 정말 사이가 나빴을지는 애매하다. 애초에 아내라는 존재에게 남편으로써 매우 충실하고 싶어하는 면모를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 [[야마구치 다몬]]: 사별한 전처와 재혼한 후처 모두 해당. 특히 후처에게 보낸 편지는 꿀이 뚝뚝 떨어진다. 편지는 항상 "사랑하는 타카코 님"에게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당신의 다몬으로부터"라는 문장으로 끝났다. * [[에르빈 롬멜]]: 군인으로써 뛰어난 명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가정에도 매우 충실하며, 아내와 아들 외에는 따로 사랑한 게 없어보일 정도였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할 때]]에도 아내에게 줄 선물을 숨기느라 끙끙댔다고 하며, 전장에서도 아내를 안심시키려고 달달한 편지를 쓸 정도였다. *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아내 엘레나가 이름에서 파울루스라는 성을 떼어내면 아무 일 없을 것이라는 회유를 상큼하게 씹고 수용소행을 선택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 [[푸미폰 아둔야뎃]]: [[라마 9세]]로 알려진 태국의 왕. 왕비를 여러 명 둘 수 있는 환경에도 불구하고 한 명만 고수했다고 전해진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라마 10세|외아들]]의 결혼생활은 막장이다. * [[무함마드 6세]]: [[모로코]]의 현 국왕으로, 아예 결혼하면서 "지금 결혼하는 아내만을 아내로 받아들이겠다"고 맹세했다. 모로코는 [[일부다처제]]가 용인되어서 이슬람교]] 교리에 따라 아내를 4명까지 들일 수 있는데도 저런거다. * [[지그메 싱계 왕축]]&[[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부탄]]의 전현직 국왕으로, 부자가 나란히 애처가다. 다만 지그메 싱계 왕축은 아내가 4명인데, 그 이유는 4명의 아내 모두 자매지간이기 때문이다. 원래 지그메 싱계 왕축은 그 4자매들 중에 맏언니와 결혼하려고 했는데, 그쪽에서 '''"나를 포함해서 내 여동생들과도 결혼해달라"고 해서''' 4명 모두 아내로 맞이했다. 물론 애처가답게 아내 넷 다 고루고루 사랑해서 [[부부싸움]]은 별로 없었다고 한다. * [[저우언라이]]: 당시 [[마오쩌둥]]을 비롯한 중국 공산당의 고위공직자들이 바람둥이였던 것에 상반되게 한평생 한 여자에게만 마음을 쏟았다. 일화를 보면 [[공처가]] 성격도 있어 보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아내를 매우 사랑해서 그런 것에 가까우며 오글거리는 편지를 쓴 적도 있을 정도였다. * [[샤를 드골]]: 아내에게 충실한 가정적인 남자였다고 한다. 참고로 [[프랑스 대통령]] 중에 사랑 관련 스캔들이나 논란이 없는 유일한 인물이다. * [[C. S. 루이스]] : 결혼과 관련된 가정사가 매우 눈물겨운데, 60세가 다 된 굉장히 늦은 나이에 이미 전남편은 물론 아이도 둘이나 있고 암으로 시한부 판정까지 받은 여인과 기어이 결혼하였다. 심지어 본인은 독실한 기독교인임에도 아내는 무신론자였는데 결국 전도하여 회심시켰고[* 아내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본인이 무신론자에서 회심하여 변화된 케이스이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결혼한 지 불과 3~4년만에 아내를 떠나보낸 후, 아내의 자녀까지 양자로 충실하게 키우다가 본인도 3년 만에 뒤이어 사망했다. 어떻게 보면 가장 마음 아픈 결혼에 해당되는 매우 드라마틱한 케이스로, 1993년에 <섀도우랜드>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배우 [[안소니 홉킨스]]가 주인공 루이스 역할을 맡았다.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무시무시한 살인마 캐릭터를 연기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으니 괴리감을 느꼈을 팬들도 있을 법 하다.] * [[리처드 파인만]] * [[류 치슈]] * [[톰 피니]] * [[김영삼]]: 아내인 [[손명순]] 여사에게 친근하게 '''맹순이'''[* [[동남 방언]]으로 명순이.]라고 이름을 부를 정도로 아내를 아꼈다고 한다. 아내인 손명순 여사 역시 역시 자신을 아껴준 남편이 사망했을 때 매우 슬퍼하는 듯 멍한 표정을 짓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김종필]]: 아내인 [[박영옥]] 여사가 암 투병 하는 동안 뇌졸중 후유증이 있음에도 끝까지 옆에서 돌보며 병 간호를 하였다. * [[송해]]: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고 더욱 서로를 의지했다고 밝혔으며, 동고동락한 지 63년 만에 가난에 시달려 해보지 못했던 결혼식을 올렸다. * [[스티븐 킹]]: 젊은 나이에 작가로써 빨리 성공했지만 결혼과 출산은 더 빨리 했기 때문에 청년기에 어려운 시기가 있었는데 그 때, 아내가 큰 힘이 되어주어 아내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작품에는 부부와 가정의 행복한 모습과는 거리가 먼 불건전한 설정을 넣는 성향이 있는 것과는 다른 부분을 지니고 있다. * [[김정일]]: 자신의 후처들 중 한 명인 [[고용희]] 한정으로 애처가였다. 생전에 자신을 성심성의껏 내조하던 고용희를 매우 총애하고 신뢰하여 그녀의 부탁이나 조언을 잘 들어주었고,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다녀오는 것도 허락했으며, 그녀가 암 수술을 받을 때에는 그녀를 걱정하며 울음을 터트릴 정도로 금슬이 좋았다고 한다. 이러한 영향 때문이었는지 [[고용희]]가 낳은 [[김정은|아들]]과 [[김여정|딸]]이 김정일의 뒤를 이어 북한 정부의 최고위 지도부에 올랐다. * [[신해철]]: 아내가 암 투병 중임에도 불구하고 [[결혼]]하였다. 다행히도 아내는 완치. 하지만 안타깝게도 본인이 46세의 젊은 나이에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 [[이성순|시라소니]]: 아내가 법이었으며, 아내가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확히는 아내는 시라소니가 깡패인줄 모르고 결혼했는데 알고 보니 깡패라고 하자 "제발 나쁜 짓만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네임드 주먹들 가운데에서는 드물게도 '''전과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다른 건달들은 호적에 빨간줄 투성인데 자기 호적은 깨끗한 것을 평생의 자랑으로 여겼다고 한다.[* 헌데 이와는 별개로 결혼한 방식은 꽤나 괴팍해서 원래 아내는 친척의 소개로 시라소니를 알게 되었는데 그가 못 생겨서 안 만나려고 했다. 그런데 이에 시라소니는 아내의 친척들을 죄다 모이게 하고는 '''총을 꺼내고는 결혼 안 시켜주면 다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다. 당연히 친척들은 겁에 질려 아내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결혼을 시켜줬다고 한다. 하지만 의외로 이렇게 협박으로 얻은 아내를 때리거나 괴롭히지 않고 평생 잘 해주었다고 한다. 아이들에겐 무뚝뚝했지만 그녀에겐 한없이 다정해 아이들 몰래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기도 했고 아내 본인도 '가난했지만 사랑도 많이 받았고, 행복했다.'고 회고했다.] 시라소니의 아내 이진옥은 당시 해방 전 조선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다던 [[동화백화점]]에서도 최고의 미인이라고 손꼽혔는데,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 시라소니는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고 나서 정말 한평생 그녀를 최선을 다해 사랑해줬다고 한다.[* 대표적인 일화로 아내가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자 시라소니는 '아내를 한 번만 살려주시면 종교인이 되겠다.'며 [[하나님]]에게 빌었고 이후 기적적으로 아내가 병에서 회복하자 철천지 원수였던 이정재를 용서하고 본격적인 종교인의 길을 걸었다. 그렇다고 아내에게만 사랑을 쏟은 것도 아니어서 자식들에게도 엄하지만 따뜻한 아버지 노릇도 충실하게 해냈다. 시라소니의 셋째 딸이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시라소니는 남편들과 아버지들이 가정에서 좋은 사람인 경우가 별로 없었던 그 시대에 자식들에게 욕 한 번 안 했던 사람이고, 어머니에겐 평생 존댓말을 하며 지냈을 정도로 가정적이었다고 한다.] * [[윤윤수]]: 휠라의 회장으로, 큰누나와 같은 계모임에 속해 있던 장모를 통해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윤 회장의 아내는 굉장한 여장부 스타일로, 수출입 사업을 하던 때 윤윤수 회장에게 [[뇌물]] 제의가 들어오자 '그렇게 해서 번 돈으로 먹고 살 바에는 차라리 굶어 죽을 테니 꿈도 꾸지 말라'고 했다고.[* 이 일 때문인지는 몰라도 윤 회장은 '유리알 경영'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할 정도로 투명한 경영을 철칙으로 삼아 실제로 행하고 있다. 회사의 실적과 자신의 연봉을 정기적으로 공개하고 있으며, 모범납세자 상을 2000년과 2007년 2번 수상했다. 참고로 2000년에 휠라의 소득이 110억 원이었는데 낸 세금이 50억원이니, 우회나 절세 없이 세율 그대로 때려박은 것.] 이뿐만 아니라 남편이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 비서와 운전기사, 청소부 역할을 다 담당했고, 사업자금이 필요할 때마다 돈을 구해다주기도 했다고 한다. 이토록 고생을 함께 한 조강지처라서 그런지, 윤윤수 회장은 지금도 재계의 소문난 애처가다. 인터뷰에서 '아내와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고 밝히기도 했다. * [[이덕화]]: 오토바이 사고로 크게 다쳤을 당시 자신을 헌신껏 간호해 준 당시 여자친구였던 김보옥 씨를 위해, 집과 같은 재산의 명의를 모두 아내 앞으로 돌려놔서 자신의 명의로 된 재산이 없다고 한다. 그 뿐만이 아니라 지금도 아내를 '''이쁜이'''라고 부른다. 정작 딸에게는 이름 혹은 기지배라고 부른다고 한다. 당연하겠지만 이덕화는 애처가인 동시에 [[딸바보]]이다. * [[아베 신조]]: 아내 [[아베 아키에]]가 [[불임]]인 탓에 주변에서 임신에 대한 압박에 시달렸을 때 그녀를 감싸주었고, 자녀가 없는 대신 반려견을 키우면서 살았다. 또 아베가 총에 맞고 사경을 헤맬 때 아키에 여사는 애칭인 "신짱"이라 부르며 울부짖기도 했다. * [[장항준]] * [[한인수]]: [[https://www.topstar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832426|아내인 황선애 여사에게 자상하며 너그럽고 잘 챙겨주는 애처가이다.]] * [[함영준]]: 오뚜기 회장인 그 분 맞다. 딸 [[함연지]] 유튜브 영상을 보면 아내를 챙기는 가정적인 남편이자 딸바보다. 이후 딸인 함연지도 그런 좋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좋은 사람을 만났는지 2017년에 6년 넘게 사귄 연인과 결혼했는데 사위도 애처가이다. * '''[[홍서범]]''': 이 분야에서는 절대 빠지지 않는 애처가계의 아이콘 중 한 명이다. * '''[[최수종]]''' * [[허재]]# * [[나카이 카즈야]] * [[미도리카와 히카루]]: 핸드폰에 여자성우들의 생일이나 전화번호는 등록하지 않는다고 했다. * [[김영선(성우)|김영선]]: [[정재헌]]의 호락호락에서 아내를 자연스럽게 이름으로 소라라고 불렀고, 집안에서도 매우 시끄럽다고 했다. * [[손지창]]: 평소에 사생활이 매우 깨끗하고 가정적인 성격이라고 [[오연수|아내]]가 밝혔다. 반대로 [[임택근|생부]]는 여성편력이 상당히 막장이다. 생부와의 나쁜 기억 때문에 역으로 좋은 남편이 된 것으로 보인다. * [[임재범]]: 암 투병중인 아내가 치료를 위해 삭발했을 때 "나만 머리를 기를 수 없다"는 이유로 같이 삭발하고, 아내가 남편이 1위를 했다고 매우 좋아하자 눈시울을 훔치기도 하는 등 가족에 대한 사랑이 묻어났다. 동생인 [[손지창]]과 [[임택근|같은 이유]]로 좋은 남편이 된 것으로 보인다. * '''[[션(지누션)|션]]''' * [[나루히토]]: [[마사코 황후|마사코 황태자비]]가 아들을 낳지 못한데다 적응장애 등으로 공무도 거의 하지 못해 국민들의 불만을 사고 [[궁내청]]에서도 이혼하라고 강하게 압력을 넣었으나 각종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아내와 딸 [[도시노미야 아이코 공주]]를 지켜냈다. 마사코에게 공식 청혼할 때도 "전력을 다해서 당신을 지키겠습니다."라는 매우 의미 깊은 말을 하였다. 덕분에 가정을 지켜낸 좋은 남편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아내인 마사코 황후도 이런 남편에게 고마움을 자주 표현한다. * '''[[빌럼알렉산더르]]''': 아르헨티나 독재자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의 부하인 호르헤 소레기에타의 딸인 [[막시마 소레기에타]]와 결혼하여 네덜란드 국민들과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래도 일본의 나루히토 덴노처럼 아내를 지켜내는 국왕으로 재평가를 받았다. * [[오치아이 히로미츠]]: 아내인 노부코가 악처[* 악처란 행실이 부정하거나 부적절한 행동과 생각을 가지고 있어 한 가정(가문)에까지 큰 피해를 입히는 아내를 말한다.]로도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교제를 시작한 것은 오치아이가 굉장히 적극적으로 대시했기 때문이다. 독단적인 스타일의 오치아이조차 노부코의 말에는 무조건 따른다고 하며, 생일날에는 어디에 있던 간에 [[장미꽃]]을 매년 보낸다고 한다. * [[글렌 제이콥스/프로레슬링|케인]]: 아내가 [[불임]]이라 둘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지 못했는데, 바깥에는 자기 몸에 문제가 있어 임신이 안 되었던 거라며 아내를 보호해줬다. 지금은 [[입양]]한 아이가 부모가 되어 할아버지가 되었다고. * [[김용갑]]: 국회의원 임기중이던 1998년 2월 [[뇌출혈]]로 아내가 쓰러지자 1년 넘게 사물의 이름을 가르치고 초등학교 교과서를 읽어주며 병간호를 했고, 17대 국회 말기에 정계 은퇴 선언을 하였을 당시 언론사의 인터뷰에서 "내가 자유인이 되면 아내를 돌볼 것이고, 같이 해외 가면 렌트카 내가 얻고 부킹도 내가 할 거예요."라고 말을 했다. * [[폴 뉴먼]] * [[폴 매카트니]]: 사별한 [[린다 매카트니]]와 잉꼬부부였던 걸로 유명하다. * [[알렉스 퍼거슨]]: 지도자에서 은퇴한 이유가, 바로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였다. * [[데이비드 베컴]]: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레전드의 반열에 올라선 실력과 동시에 외모가 출중하여 [[알렉스 퍼거슨]]이 "외모에 너무 신경을 두지 마라"는 경고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시했다. 또한 외모에 신경을 쓰는 만큼 아내 [[빅토리아 베컴]]을 좋아했기에 축구에 신경을 덜 쓰게 되었다. 결국 일명 퍼거슨의 '헤어드라이어 사건'이 절정을 달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상처를 입은 그는 맨유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게 되었다. 물론 퍼거슨과 베컴 사이의 불화는 해소되었고 지금까지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그는 그녀와 오순도순 살고 있고 자녀 4명을 두었다. * [[루이스 수아레즈]]: 그라운드에서는 사람 깨물기부터 상대팀 벤치에 다이빙 세레머니 등, 온갖 기행을 저질러 악동으로 불리지만, 아내와 가족한테는 따뜻한 가장이다.[* 덧붙이자면, 첫사랑이 바로 아내이고 '총잡이'라는 별명이 나온 그의 골 세레모니 또한 그의 아내 소피아를 위한 것이다.] 수아레즈가 14살 때부터 만난 지금의 부인은 [[우루과이]]에서 [[스페인]]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는데, 이때 수아레즈는 "꼭 내가 다시 만나러 갈게"라는 말을 남겼고 그 약속을 지켰다. 결혼 후에는 아내의 말에는 거의 복종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깨물기로 한창 치아레즈로 불릴 때 "한 번 만 더 그런 짓 하면 두 번 다시 당신 얼굴 안 본다"는 말에 겁을 먹거나,[* 아내의 엄포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리그와 계약할 때 사람 깨물면 연봉의 30%을 벌금으로 내는 조항이 들어가서 더 이상 핵이빨을 시전하지 않는다.] [[탄산음료]]를 입에 달고 사는 걸 걱정한 아내가 차를 권유하자 탄산음료를 끊고 [[마테차]]만 마신다고 한다. * [[오현경(1936)|오현경]] * [[천호진]] * [[권오중]]: 연예계에서 애처가로 유명하다. 방송에서 '애인'과의 19금 수준의 사랑 이야기들을 많이 하였지만, 실제로는 모두 현 아내와의 이야기였다. * [[차승원]] * '''[[차인표]]''': 2016년 KBS 연기대상 시상 중에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은 결코 참을 이길 수 없고, 남편은 결코 아내를 이길 수 없다."는 발언을 했다. 또 위의 최수종, 션과 더불어 대표적인 애처가 연예인 3인방으로 꼽힌다. 최수종처럼 연하의 아내에게 존댓말을 쓰는 일이 많다는 공통점이 있기도 하다. * [[최민수]]#: 카리스마 넘치는 이미지와 별개로 아내 앞에서는 꼼짝 못해서 공처가이기도 하다. * [[최태성]] * [[안정환]]: 본인을 길들일 수 있는 인물이 오로지 단 둘이라고 밝혔는데, 그 두 사람이 바로 前 한국 축구 국가대표 감독 [[거스 히딩크]]와 아내 [[이혜원(1979)|이혜원]]이라고 한다. 아내 연락처를 대놓고 [[끝사랑]]이라고 저장해놨다고 한다. * [[박지성]] * [[정의선]]: 삼표그룹 회장의 장녀인 정지선과 결혼했는데, 같은 정씨인데다 이름까지 사촌동생인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정지선(기업인)|정지선]]과 같아서 처음에는 집안 어른들이 반대했지만 집안 최고 어른이자 할아버지인 [[정주영]] 회장이 본이 다르기 때문에 괜찮다고 허락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정의선 회장은 애처가다. 부인과 함께한 사진도 많다. * [[유재석]]: [[무한도전]] 녹화를 끝내고 스태프, 출연진과 회식 후에 음식을 싸가는데 이때 왜 싸가냐 물어보니 "내가 맛있는 건 [[나경은|아내]]도 맛있어 한다"며 아내를 생각해 주는 훈훈한 일화가 있다. 참고로 무도 중 잠깐 아내와 통화했을 때 '여보'나 '지호 엄마' 이런 호칭이 아닌 이름을 불렀다. * [[유희열]] * [[윤종신]]: [[전미라|아내]]와 결혼 과정 자체도 상당히 여러모로 감동적인데, 나이 차가 많이 나는 편임에도 지금도 아내를 특히 많이 아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 [[박명수]]: TV 내에선 서먹한 가정의 가장 이미지를 주로 써먹고 아내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처럼 표현하는 설정도 해보지만, 실제로는 방송 촬영할 때 빼면 수시로 애정을 표현할 정도로 애처가다. 아내 [[한수민]]은 다시 태어나서 결혼해도 박명수랑 결혼하겠다고 할 정도였고, 남편을 칭찬하거나 편을 들어주는 것도 잘 한다. 박명수도 다시 태어나서 결혼해도 한수민과 결혼하겠다고 했다. * [[하하(가수)|하하]]: [[별(가수)|별]]과의 혼인신고를 서둘렀던 이유도 별의 부친이 위독했던지라 그런 별을 지켜주기 위해서였고, 난봉꾼 이미지를 그만둔 계기도 별이 내심 속상해한 것을 눈치채서였다. 방송 중에 별 얘기가 나오면 좋아죽는 모습도 보여주고, 별과 관련해서는 절대 개드립도 치지 않는다. 그래서 웨딩싱어 특집에서 게스트로 나온 성시경이 별과 듀엣곡 연습을 하며 애틋한 분위기가 나오자 '''진심으로 욱해서''' 욕을 하는(…) 진풍경을 보여주기도. * [[지석진]]: 런닝맨 2017년 1월 8일 방영분 거짓말탐지기 미션에서 [[송지효]]에게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아내와 결혼할 것이다"라는 질문과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집에 일찍 들어가고 싶다"라는 질문을 받자 둘다 "예"로 대답했는데, 둘다 진실로 나왔다.[* 여담이지만, 위의 유재석과 하하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는데, 이 둘은 거짓으로 나왔다.]--그러나 이걸 안믿는 다른 멤버들-- 같은 런닝맨에 출연하는 유재석과 마찬가지로 '여보'나 '현우 엄마' 라는 호칭 대신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 [[문천식]] * [[크리스찬 베일]]: 헐리우드에서 대성공한 배우들 중 결혼을 한 번 밖에 안 한 몇 안 되는 케이스인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외부에도 아내와의 다정한 모습을 여러 번 보여줬다. 부인 시비 블라직이 어린 스타인 것도 아니고 4살 연상의 평범한 여성인데도[* 물론 그렇다고 해서 미인이 아닌 것은 아니다.] 공식 석상에 수차례 대동하여 자신과 같은 스타 연예인과 결혼한 게 아님에도 부부 두 사람이 함께 다정하게 찍은 사진을 아주 쉽게 많이 찾아볼 수 있다. * [[이안 케네디]] * [[빅토르 안|안현수]]: 아내에게 휴가를 주고 싶어서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특별 출연하였으며, 선수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하는 이유도 자신을 위해 헌신해 준 아내에게 보답하기 위해서였다. * [[지상욱]]: SNS 등을 통해 깨알같이 아내 [[심은하]]에 대한 애정을 많이 드러낸 바 있다. * [[구광모]]: 현대차그룹의 [[정의선]]과 유사한 케이스로 신분으로 인한 어려움들을 뚫고 정효정과 결혼하여 1남 1녀를 두고 잘 살고 있다. * [[구준엽]]: 1998년에 만나 연애했던 [[서희원]]과 헤어지고 줄곧 [[독신]]으로 살다 그녀의 이혼 소식 접하고 과거에 교환한 휴대전화 번호로 연락이 닿으면서 눈물의 재회와 백년가약을 맺고[* 다만 당시 [[코로나19]] 때문에 섣불리 출입국이 불가능해 영상통화를 이어가다가 결국 청혼하고 [[혼인신고]]를 한 소식이 [[한국]]ㆍ[[대만]] 양국 내에서 화제가 되었다. 서희원은 이미 대만의 국민 스타였고, 구준엽도 별 사건사고를 일으킨 적 없고 평소 이미지도 무난하고, 좋았기 때문에 한국ㆍ대만에서도 호감도가 높은 편이다.] 대만에서 살고 있다. 게다가 서희원의 전 시어머니와 남편인 장란, 왕샤오페이 모자가 가짜뉴스, 루머를 퍼뜨리며 이들의 이미지 실추를 꾀하려는 것과 달리, 구준엽은 끝까지 서희원을 지키고 사랑하겠다는 신념이 꺾이지 않고 맞서는 모습을 보여 대만 내에서의 이미지가[* 대만에서는 아예 국민 형부로 불리며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건 물론, 한국 내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극과 극으로 상반되는 연출을 보였다. * [[기태영]]: 아내 [[유진(1981)|유진]]을 사랑하는 곡까지 만들었으며, [[임신]]한 아내를 위해 [[육아]] 공부까지 엄청 열심히 해서 실제로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통해 딸 로희를 지극정성 육아하는 [[딸바보]]의 모습까지 덤으로 보여주었다. * [[도경완]]#: [[장윤정]] 가족의 빚과 가정불화를 알고도 장윤정과 결혼을 결심할 정도였다. 그래서 그는 성인군자의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그녀의 시가(媤家)도 그녀의 사정을 이해해 주었다. 자세한 것은 [[장윤정 친족 재산탕진 논란]] 문서 참조. 이후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는 애처가, 아들바보, 딸바보 그랜드 슬램의 면모를 보여 별명이 도책바가지였다. *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마약]]에 찌들어 방황하던 그를 바로잡아준 것이 영화 프로듀서 수전 러빈 덕으로 둘은 2005년에 결혼했고, 다우니 주니어는 성공적으로 재기하며 다들 잘 아는 아이언맨 실사 영화 시리즈의 토니 스타크로 전성기를 누린다. * [[크리스 헴스워스]]: 7살이나 연상이고 자신과 같은 배우인 아내와 결혼해서 아이 셋을 낳고 헐리우드에서 몇 안 되는 좋은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 중 하나로 잘 살고 있다. * [[리오넬 메시]]: [[호날두 노쇼 사태|한국에서 계약 위반과 결장을 넘어 한국 팬들에게 신경질이나 부리던]] 라이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심각한 [[호색한]]이어서 슬하에 둔 아이들의 어머니가 모두 다른 것과는 달리 어릴 적부터 가까이 지내던 여자와 결혼하고는 지금까지 아내와 아들 셋을 낳고 잘 살고 있다. 거기에 [[아들바보]] 기질까지 있다. * [[팝핀현준]] * [[현경렬]] * [[알베르토 몬디]]: [[중국]]에서 알게 된 어느 한국 여성에게 반해 대쉬를 걸었고, 친한 사이로 지내는 중 각자의 사정으로 귀국길 앞에 놓이자 그 여성에게 "지금은 떨어지지만 다시 만날 것"이라며 기다려달라는 말을 남겼고, 그 후 한국으로 입국해 다시 만났다고 한다. 그 여성이 지금의 부인인 맹지은 씨. * [[권상우]] * [[김재우(코미디언)|김재우]] * [[마인드C]]: 그의 웹툰 [[윌유메리미]]를 보면 상당한 아내바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자기 친형은 물론 심지어 큰 매형, 셋째 매형도 각각 큰 누나, 셋째 누나를 사랑하는 애처가인 것만 보면… * [[스즈무라 켄이치]]: 결혼 후에는 방송에 출연할 때마다 [[사카모토 마아야|아내]] 자랑하는 게 레퍼토리중의 하나가 될 정도로 유명하다. * [[시영준]]: [[https://youtu.be/mx2skJF7toY|이 영상]]에서 [[김보영(성우)|아내]]에 대한 사랑을 표했다. * [[정지웅(국어)|정지웅]]: 강의 중에도 자신의 가족들을 자주 언급한다. * [[정준하]]: 별명이 사랑꾼이다. 결혼이 늦어지면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고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한만큼 아내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것으로 보인다. 매일 아내에게 편지를 보내는가 하면, 생일 때마다 진수성찬을 차려준다고 한다. * [[조현우]]: 자신의 오른쪽 팔에 아내의 얼굴을 문신으로 새겼다. * [[조정식(강사)|조정식]] * [[PD대정령]] * [[이말년]] : 분위기상 농담에 가깝긴 했지만 사람에게서 나는 고약한 체취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아내에게서는 항상 좋은 냄새만 난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한 적이 있으며, 유일하게 아내의 연락처에는 하트를 붙여서 저장했다고 한다. * [[전두환]]: 생전에 [[이순자]] 여사하고 처음 연애할 때 아내의 복통이 심해지자 그녀를 업고 병원까지 뛰어가기도 했고, 광주에서 재판을 받을 때 기자들이 몰려와도 아내 [[이순자]] 여사가 잘 따라오는지 확인하는 등, 애처가의 모습을 보여줬었다. 실제로 어디를 가든지 [[이순자]] 여사와 손을 잡고 같이 다녔다. * [[박인천]]: 아내인 [[이순정]] 여사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다. 평생 함께 하면서 남편과 자식들을 뒷바라지 해줬고, 박인천 본인도 자식들한테 항상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을 절대 잊지 말라고 각별히 말했다고 한다. * '''[[데이비드 뷰캐넌]] ''': 타고난 사랑꾼이자 스윗가이이며, 처가집 식구들까지 오면 그야말로 괴물이 된다. 박성윤 기자가 별명을 짓기를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477&aid=0000259360|야구계의 최수종]]'''이다. 수도꼭지 속성도 있어서 아내를 생각하며 인터뷰 중에 울기도 한다. 심지어 2022년 5월 14일에는 '''부인 뿐만 아니라 처가집 식구들까지 야구장에 와서 '''그런지 몰라도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완봉승을 때려버렸다(…). * [[홍준표]]--#--[* 본인이 [[공처가|엄처시하]]에서 산다고 밝혔다.[[https://www.donga.com/news/Politics/article/all/20170920/86421888/2|#]]]: 아내 [[이순삼]] 여사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고 하며 지금도 각시[* 원래 [[경상도 사투리]]로 부인을 각시라고 한다. [[100분 토론]]에서 [[신지예]]가 각시라는 표현이 방언인 줄 모르고 여성비하 발언이라고 생각하여 홍준표에게 이의를 제기했을 때 홍준표가 직접 각시는 부인의 경상도 방언이라고 말했다.[[https://youtu.be/cD2EF2XjEUc?t=1664|#]]]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 [[윤석열]]: 아내 [[김건희]]에게 매우 다정한 남편이라고 한다. 10년 동안 집밥도 차려주고 있다고. * [[추신수]] * [[오세훈]]: 아내를 위해 직접 요리를 한다. 예능 [[아내의 맛]]에 출연. * [[안철수]]: [[https://youtu.be/hqHbE4xU3M4]] 결혼생활 동안 딱히 정해두는 것 없이 먼저 집에 온 사람이 식사를 준비한다. * [[황정민]]: [[https://youtu.be/WfOuF-wzgG8]] 매일 아침 아내와 딥키스를 나눈다고 한다. 아내가 시키는 것은 무조건 한다고 한다. 한 번은 촬영 끝나고 새벽 2시쯤에 자고 있는데 깨워서 왜 그러냐 물었더니 "음식물 쓰레기 버려야 하는데 무섭다고 못 내려가겠다"고 하여 황정민이 군말 없이 버려줬다고 한다. * [[노지훈]] * [[김기춘]] * [[토가시 요시히로]]: [[타케우치 나오코|아내]]를 공주님이라 부르며, 육아와 집안일 분담에 있어서도 진보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