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야구/기원 (문단 편집) === 세계화의 실패 원인 === 이에 대하여 존 폭스는 쓸데없는 자존심을 위하여 억지를 부리다가 되려 야구의 세계화에도 타격을 준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그나마 이제라도 사실대로 바로잡은 게 다행이긴 하지만. 100년전 미국이 야구는 미국이 원조이며 모든 걸 미국이 만들어냈다는 고집으로 세계 각국에서 야구에 대한 반감을 심어준 것이 야구를 미국만의 스포츠로 만들었다는 논리였다. 세계 여러 나라에 존재하는 비슷한 구기종목에 대해서, 당신들이 하는 그런 놀이를 미국에서 현대적으로 개량한 게 야구라는 식으로 그 나라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주면서 각국의 유사 야구를 즐기던 사람들에게 야구 용품도 지원하고 그랬더라면 세계에서 야구의 위상은 지금과 전혀 달라졌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1890년대 미국 선발팀이 최초로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며 야구 경기를 할 당시 유럽 각지에서 반응은 "우리가 하는 거랑 비슷하네?"라며 반가워 하는 것이 주를 이뤘다. 이후로도 유럽이나 여러 나라에서 야구 시범경기가 열렸을 당시 유럽인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다. 예를 들어 1924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뉴욕 자이언츠가 프랑스에서 시범경기를 진행하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운집하여 열광했고 이는 프랑스 야구협회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상식적으로 미국이나 유럽이나 사실상 동일한 문화권인데 미국인들이 재밌어 하는 걸 유럽인들이라고 무조건 배척할 리는 없다. 어차피 공을 손으로 주고 받고, 막대기 같은 것으로 공을 치고 하는 놀이야 어디에나 있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사람들이 특별히 야구에 반감을 가질 만한 이유가 있지 않는 이상.''' 축구의 경우, 영국 군인들이나 선원, 상인들이 근대 여러 나라로 가서 축구하는 걸 현지인들이 '쟤들도 우리가 하는 공놀이를 하는구나' 하는 식으로 친숙하게 받아들여 금방 현지에 전파될 수 있었고, 바로 이 점이야말로 축구 세계화의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에서는 축구를 칼초(calcio)라고 부르고 이는 여러 축구 구단 이름에도 반영되어 있는데, 사실 원래 칼초라고 불렸던 종목은 영국인들이 19세기에 규칙을 정립한 [[축구|어소시에이션 풋볼]]이라는 물건과는 기원적으로 뿌리가 같은지조차 불분명한, 별개의 스포츠다. 특히 [[피렌체]] 지역에 전래되는 '칼초 스토리코 피오렌티노' 같은 것은 도대체 공을 갖고 한다는 것 말고 축구라고 부를 만한 부분이 뭐가 있나 싶을 정도로 근대 축구와는 이질적이다. 하지만 19세기 이탈리아인들은 영국인들이 보여주는 football을 자신들이 즐기던 칼초의 한 방식으로 받아들였고, 그 결과 도입된 지 10년도 안되는 1898년에 이미 전국 선수권 대회가 개최될 정도로 성행하게 되었다. 영국인들이 축구에 대해서 '영국만의 것'임을 강조하며 오만한 모습을 보였다면 일어나기 힘들었을 일이다. 남아시아 지역에서 크리켓이 가진 위상을 보더라도, 장비가 많이 필요하다느니 룰이 복잡하다느니 하는 것은 야구 세계화 실패의 근본 원인이 아님을 알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