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야마구치구미 (문단 편집) === 5대 와타나베 요시노리 시대 === 와타나베 요시노리는 기존의 타오카처럼 1명이 정점에서 카리스마로 조직을 통괄하는 체제에서 벗어나는 방향으로 조직의 쇄신을 도모하였다. 내부적으로는 블록제를 도입, 야마구치구미가 활동하는 세력범위를 5개 블록으로 나누어 각 지역의 산하조직들의 상위 두목을 지정하고 이들에게 폭넓은 권한을 주었다. 이러한 체제혁신은 후계문제로 고생을 한 야마구치구미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이었지만 동시에 이후의 분열사태에도 영향을 미치게된다. 이렇게 쇄신을 거듭하던 5대 야마구치구미는 1997년 타쿠미 마사루 암살사건을 겪으면서 또 한차례 홍역을 치르게된다. 타쿠미 마사루는 5대 야마구치구미의 와카가시라이자 조직의 주요 자금책으로서 실질적으로 조직을 운영하던 인물이었다. 당시 교토에서는 야마구치구미 산하의 나카노카이와 아이즈코테츠카이가 부동산 문제가 발단이 되어 나카노카이의 카이쵸가 총격을 받는 등 격렬한 내부항쟁이 발생했었는데, 타쿠미 마사루는 조직의 중역으로서, 경찰의 개입을 막기위해 나카노카이의 제대로된 동의 없이 강압적으로 두 조직을 화해시켰다. 그 결과 나카노카이에서는 강압적으로 화해를 성사시킨 타쿠미 마사루에대한 불만이 치솟았고, 결국 신 코베 오리엔탈 호텔(현 ANA 크라운프라자 호텔 코베)에서 나카노카이의 히트맨의 공격을 받게된것이다. 당시 현장에는 타쿠미 마사루를 포함해 키시모토, 노가미 등 3명의 최고간부가 함께하고 있었는데, 타쿠미 마사루는 현장에서 7발의 총탄을 맞고 사망하게된다. 당시 타쿠미와 동석했던 키시모토와 노가미는 무사하였으나[* 조직의 브레인이자 큰어른으러 인망이 높았던 키시모토 사이조는 계파를 막론하고 존경을 받은 인물이었기에 나카노카이에서 타쿠미를 암살할때 키시모토는 해치지 말라고 따로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근처 테이블에 있던 치과의사가 유탄에 중상을 입고 엿새 후 사망했다. 조직의 핵심 간부 그 중에서도 조직의 자금줄을 관리하던 인물이 죽은 충격적인 사건에 분노한 야마구치구미는 사건의 당사자인 나카노카이와 절연하고 대규모 공격을 진행한다. 특히 오야붕을 잃은 타쿠미구미가 중심이되어 나카노카이의 간부 대부분이 습격당해 죽어버리고, 그 결과 주요 간부들을 잃은 나카노카이는 명맥만 유지하다가 2005년 해산하게 된다. 이렇듯 조직에 내흥이 계속되자 와타나베 요시노리는 2004년 갑작스럽게 집행부에 모든 전권을 위임한채 은거에 들어갔고 이듬해인 2005년에는 건강상의 문제를 이유로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 그 과정에서 와타나베 요시노리는 타쿠미 사후 계속 공석으로 남아있던 와카가시라 직책에 츠카사 시노부(본명 시노다 켄이치)를 임명했고 얼마안가 츠카사에게 구미쵸 자리마저 승계한다. 츠카사 시노부는 초대 고도카이 카이쵸였다. 본래 고도카이의 전신인 히로타구미는 구미쵸인 히로타 타케시와 야마모토 켄이치가 사적으로 가까운 관계였기 때문에 타오카 사후 4대 구미쵸로 야마모토 켄이치를 지지했지만 야마모토 켄이치의 갑작스런 병사후 구미쵸 승계를 두고 타케나카 마사히사와 야마모토 히로시가 대립했을 당시 야마모토 히로시의 지지를 표명하였다. 하지만 츠카사가 히로타를 적극적으로 설득해 히로타구미는 이치와카이 진영은 물론 4대야마구치 진영에도 참가하지 않아 권력다툼에서 피해갈 수 있었고, 최종적으로 히로타 타케시는 히로타 구미를 해산시키는 형태로 히로타구미를 츠카사에게 계승해준다. 츠카사는 해산된 히로타구미를 그대로 수습하고 계승하여 고도카이를 만들어 4대 야마구치구미의 직계로 승격했다. 다만 이 갑작스런 은퇴와 승계에는 츠카사에 의한 쿠데타 설도 제기된다. 와타나베는 구미쵸로 있는 동안 유난히 돈에 집착해 지방이권사업의 경우 조직산하의 지방조직이 아닌 자신의 영향권에 있는 업자에 수주를 주고, 부인이 운영하던 고급부띠크에 신상품 입점시 부하들에게 전화로 알리는 등 실질적인 강매를 해 조직내 불만이 중첩되고 있었다. 그리고 츠카사가 타쿠미 암살사건 배경에 대해 결정적인 증거를 쥐고 있었다고 한다. 나카노카이는 5대 야마구치구미 직계가 되기 전까지 2대 야마켄구미 2차단체였고 2대 야마켄구미 구미쵸는 와타나베 요시노리였으므로 와타나베가 야마켄구미 샤테이카시라보좌 출신인 나카노 타로(나카노카이 카이쵸)를 이용해 조직운영의 실권을 쥐고있던 타쿠미의 암살을 부추기고 이후 파문 정도로 마무리 할려고 했다. 그러나 사건의 전모를 알아챈 고도카이를 비롯한 집행부의 강요로 나카노는 절연 당해 버림 받고 5대 와타나베 두목도 은퇴에 몰렸다는 추정도 거론되었다. 이후 은퇴상태로 요양하던 와타나베 두목은 2012년 고베시 주오구의 자택에서 병으로 타계했다. 향년 71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