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야마구치구미 (문단 편집) === 6대 츠카사 시노부 시대 === [[https://www.youtube.com/watch?v=J9hoPy9n_hE|계승식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kPPN7QpCo04|계승식 축하 연회 영상]] 6대째에 들어서면서 야마구치구미의 블록 체제는 더욱 강화된다. 5대 때와는 달리 조직의 힘을 고도카이에 집중시키는 방법으로 활용된다. 1차 단체인 야마구치구미 본가를 중심으로 일본 전국을 7개 블록으로 나눈다. 칸토-홋카이도, 츄부, 북 오사카, 남오사카, 한신, 츄고쿠-시코쿠, 규슈 / 2016년 기준 칸사이, 칸토, 도카이, 츄고쿠-시코쿠, 츄부, 규슈 블록으로 재구성해 6개 블록이 되었다. 그리고 각 블록의 장은 [[나고야]]의 고도카이를 중심으로 한 조직 집행부에 의해 선출되었다. 야마구치구미가 분열 직전 츠카사 시노부(시노다 켄이치)의 생일 잔치때 화기애애한 모습의 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kyHH6I-4FQA|#]], 일본 전국의 주요 두목들이 다 모였다.[[https://www.youtube.com/watch?v=R_peEVWMcSU|#]][* 해당 영상에서 볼 수 있는 야쿠자 오야붕은 다음과 같다. 이토 요시마사 - 7대 마츠바카이 두목, 키나우미 요시오 - 2대 토우아카이 두목, 와타나베 노조미 - 3대 쿄우토우카이 두목, 키라 히로후미 - 2대 신와카이 두목, 시오시마 마사노리 - 6대 소우아이카이 두목, 바바 미츠구 - 6대 아이즈코테츠카이 두목, 모리타 후미야스 - 4대 아사노구미 두목, 요시무라 미츠오 - 9대 사카우메구미 두목, 신병규(기요타 지로) - 이나가와카이 5대 두목, 김인순(나카오카 토라오) - 3대 후쿠하쿠카이 두목, 김교환(스에히로 마코토) - 7대 고우다잇가 두목, 이시이 켄지 - 5대 교세이카이 두목대행.] 이때에 지금은 원수가 되버린 고베 야마구치구미의 두목 이노우에 구니오도 축하 노래를 부르는 모습도 있다.[[https://www.youtube.com/watch?v=hPRgGy0MUcA|#]]. 혁신 이후 야마구치구미는 다시금 내홍을 겪기 시작한다. 2008년 고토구미 처분 문제에 연루되어 7개 조직의 구미쵸들이 절연 처분을 받는 등 고도카이를 중심으로 한 집행부에 반항하던 조직들이 숙청된다. 이 사태 이후 고도카이에 눌려 더욱 더 세가 약화되가던 칸사이계 조직들이 2015년부터 야마켄구미, 타쿠미구미를 중심으로 뭉쳐 고도카이와의 갈등을 드러냈다. 1997년 타쿠미 마사루의 죽음 이후 고도카이는 경제적으로 급격히 성장하기 시작했다. 금융 관련 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는데 특히 한국의 IMF 금융위기 당시 나고야계 재일교포 자금이 한국 사채시장에 엄청나게 진출하던 때와 시기상 겹친다. 그러면서 조직의 규모가 야마켄구미를 압도하기 시작한다. 6대 구미쵸로 츠카사 시노부가 취임한 후 고도카이가 야마구치구미 안에서 중핵 조직이 되며 조직 내 중요 요직을 싹쓸이한다. 또한 야마켄구미 산하에서 알짜 수익 사업인 연예 흥행사업을 관리하던 쿄쿠신렌고카이를 독립 직계로 승격시킨다. 이렇게 되자 야마켄구미를 중심으로 하는 기존 사업들이 붕괴되어버린 관서계 조직들의 입장에서는 불만이 커질 수 밖에 없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7dnlHbKra6s|조직 분열에 관한 KBS 보도 영상]] 2015년 8월부터 표면화되기 시작한 이러한 갈등은 9월에는 본격적으로 야마켄구미를 중심으로 하는 13개 조직의 이탈로 이어진다. 이렇게 이탈한 조직들에 신조직 하나가 합류해 총 14개 조직이 연합해 '고베야마구치구미'가 새롭게 만들어진다. 고베야마구치구미가 공식적으로 세워지자 야마구치구미 본가는 이 사태를 주도한 야마켄구미와 타쿠미구미 및 이에 동조한 세력들을 바로 절연-파문하였다. 이제 고베야마구치구미의 규모는 준구성원을 포함해 조직원수가 6,100여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과거 비슷한 사례였던 야마-이치 항쟁 때 큰 규모의 폭력과 사상자가 났던 만큼 일본 사회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며, 분열 이후 반년동안 이들이 관련된 사건만 20개 도도부현에서 50건 가까이 발생한다. 서로의 조직 사무실에 총을 쏘가나, 차량으로 적대 사무소 건물을 돌진하는 폭력 사태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 경찰]]은 코베야마구치구미를 지정폭력단으로 지정하고 야마구치구미와 고베야마구치구미를 대립항쟁중폭력단으로 지정, 경계태세에 들어간다. 분열 이후 2015년 10월, 6대 야마구치구미 3차 단체 카케노구미 조직이 이적 문제로 사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같은 달에는 6대 야마구치구미 산하 쿠라모토구미 카와치 토시유키 구미쵸가 자살했는데 이에 대해 타살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11월에는 6대 야마구치구미 산하 아이오우카이 히시다 타츠유키 구미쵸가 맞아 죽는 사건도 벌어졌다. 그 외에는 특별한 사상자 없이 두 조직 다 암묵적인 휴전체제에 돌입한 양상이었다. 하지만 고베야마구치구미는 6대 야마구치구미와 비교해서 그 사업 내용이 전통적인 깡패 사업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자금 동원력에서 6대 야마구치구미에 비해 절대적 열세라서 항쟁이 장기화에 접어들수록 불리했다. 그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결성 초기부터 (엄청난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 박정호[* 고베야마구치구미 구미쵸 이노우에 쿠니오와 나미카와카이 카이쵸 나미카와 마사히로(박정호)는 쿄다이 사카즈키를 나눈 의형제 관계였다.]의 나미카와카이와 결연을 시도하는 움직임을 노골적으로 보였다. 2016년 3월 29일에 있던 고베야마구치구미의 관동 회합이 박정호가 소유한 도쿄 [[다이토구]]에 있는 나미카와카이 관동 본부 빌딩에서 열리기도 했다. 하지만 나미카와카이는 분열사태에 중립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일각에선 야마구치구미 내 한국계 야쿠자와 부락민 출신 야쿠자의 대립이 표면화된 것이라는 분석이 대두되지만 6대 야마구치구미와 고베야마구치구미 모두 주요 직책에 한국계가 포진해 있으므로 억측일 가능성이 높다. 그보다는 고도카이를 위시로 한 나고야계 조직들에 주요 사업을 상실한 기존의 파벌들이 돈벌이를 되찾기 위한 움직임으로 추정했다. 특히 야마켄구미는 쿄쿠신렌고카이로로부터는 연예 흥행사업을 되찾고, 타쿠미구미는 오하라구미로부터 금융사업을 되찾기 위해, 서로 손잡고 고베야마구치구미를 결성을 주도했다고 보는 추정이 더욱 유력하다. --역시 깡패는 돈이 의리-- 2016년 5월 하순 6대 야마구치구미 구미쵸 츠카사는 5대 이나가와카이 카이쵸 신병규의 자택을 방문해 코고베야마구치구미와의 화해 중재를 의뢰했다. 코베야마구치구미는 화해의 대가로 츠카사를 총재로 승격시키고, 형무소에 수감 중인 타카야마 키요시 와카가시라를 은퇴시키며, 7대 구미쵸 자리를 공석으로 하는 대신 코베야마구치구미 이노우에 회장이 7대의 와카가시라로 취임하는 것을 요구했다고 알려졌다. 경시청이 특별감시를 하는 동안, 두 조직은 이렇게 화해를 향해 물밑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2016년 5월 31일, 고베야마구치구미 산하 이케다구미[* 이케다구미의 구미쵸 이케다 타카시(김효지)는 코베야마구치구미의 샤테이카시라로 이케다구미는 코베야마구치구미 내에서 발언권이 센 조직이다.]의 와카가시라 타카키 타다시가 6대 야마구치구미 고도카이 산하 타카야마구미의 구미원[* 야마모토 히데유키(32)가 경찰에 출두 자수했으나 사용 총기가 다른 점 등 정식 기소하기에 증거가 부족한 상태이다.]에게 총격을 당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고베야마구치구미는 보복을 금지한다는 공문을 즉각적으로 산하 조직에 날렸지만, 급속히 진행되던 화해 분위기는 없던 일이 되게 생겼다. 그리고 2016년 7월 27일 밤, 중립을 지키던 나미카와카이 산하 무라카미잇가와 6대 야마구치구미 직계 이즈구미[* 후쿠오카를 거점으로 하는 조직으로 구미쵸 아오야마 치히로는 6대 야마구치구미 서열 5위의 샤테이카시라를 맡고 있다.] 산하 하라타구미의 조직원들끼리 후쿠오카 하카타의 번화가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이후 이즈구미는 나미카와카이에 화해의 뜻을 전달했지만 나미카와카이는 화해의 대가로 하라타구미 마츠모토 카츠히로 구미쵸의 한쪽 팔을 요구하며 이즈구미의 모든 제안을 거절했다. 그리하여 후쿠오카 하카타서는 화해의 가능성은 없고 항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경계에 들어간다. 2016년 9월 5일, 일본 효고현 신고베역에서 모습을 들어낸 시노다 겐이치에게 싸인을 요구하는 고베야마구치구미 조직원들과 충돌했으나, 사건 당시 주변에 경찰들이 쫙 깔려있었기에 충돌없이 현장에서 빠져나왔다.[[ https://www.youtube.com/watch?v=|SBS 뉴스]] 일련의 항쟁이 2016년 후반에 들어서면서 점차 감소했으나, 2017년 4월 30일 야마켄구미의 부조장이었단 오다 요시노리[* 본명 김정기. 젊었을 때는 재일교포 관련 정치조직도 결성했지만 곧바로 야쿠자가 되었다. 현 고베야마구치구미의 두목인 이노우에 구니오와는 감옥에서 만나 거의 친자관계에 가까울 정도로 친밀하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임협 야마구치구미를 결성하면서 사실상 갈라진 관계가 되었다.]를 대표로 고베야마구치구미의 일부 조직원들이 독립하여, 임협 야마구치구미를 결성한다. 본래 임협 단체 야마구치구미라는 명칭이었으나 임협 야마구치구미라는 이름으로 바꿨다. 임협 야마구치구미는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고베야마구치구미 상층부가 분열 당시의 목적인 야마구치구미에 대한 '개혁정신'을 잃었다고 비난했다. 내부 이권 싸움으로 갈라진 거라 이렇게 표현하는 것도 우습지만, 일단 고베야마구치구미는 야마구치구미의 개혁을 내세우면서 결성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야마구치구미는 개혁안을 제시하는데, 자기들 조직은 기존의 조직들과는 달리 대표만 존재할뿐 사카즈키 식 관계로 묶이지 않은 평등한 조직을 내세운다고 밝혔다. 이 기자회견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주로 고베야마구치구미 내에서 보수적이고 나이가 많은 상층부와 상대적으로 개혁적이고 과격파에 속하는 젊은 층간의 갈등이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내부적으로 젊은 층의 조직개혁안이 무시된 채, 일방적으로 상층부가 아래에 요구하는 과도한 회비 압박 등이 불만이 쌓인 주요 요인이라고 한다. 애초에 고베야마구치구미의 등장 자체가 총본부와 나고야계 조직 간 이권 다툼, 즉 조직 내 회비와 관련된 문제에 원인이 있었는데, 이게 고베야마구치구미내에서도 똑같이 벌어진 것이다. 이후 같은 해인 2017년 9월 오다 요시노리를 노린 총격사건이 발생했으나 보디가드만 사망하고 요시노리는 살아남는다. 이 사건의 배후로는 고베야마구치구미의 중핵 조직인 야마켄구미로 추정된다. 총격사건의 대상인 오다 요시노리는 야마켄구미의 주요 간부였고, 임협 야마구치구미 결성 당시 직설적으로 야마켄구미를 비난하였다. 임협 야마구치구미의 결성으로 결국 2017년 기준 야마구치구미는 야마구치구미, 고베야마구치구미, 임협 야마구치구미라는 총 3개의 단체로 분열되었다. 2017년, 6대 야마구치구미가 분열의 원인으로서 기존에는 조직마다 월 65만 엔씩 걷던 [[상납금]]을 10만 엔으로 줄이고, 새롭게 사무실을 개업하는 조직에게는 지원금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6대 야마구치구미에서 고베야마구치구미로 탈퇴가 가속화되어 2018년에 와서는 두 조직 간 상호균형이 맞춰지게 되었다. 분열 사건의 원인이 된 시노다 켄이치의 조직이 있는 츄부 지방은 90% 가량의 조직이 야마구치구미에 잔류하였지만, 이에 반발한 관서지역은 절반가량의 조직이 고베야마구치구미로 이적했다. 2019년 10월 18일 수감 중이던 조직의 no.2 다카야마 키요시가 출소하였다. 이로써 야마구치구미가 조직을 재정비를 하고 앞으로 행보를 보일지 각계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https://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56&aid=0010754836&date=20191020&type=1&rankingSeq=7&rankingSectionId=104|기사]] 같은 해 11월에 야마구치구미 조직원이 고베 야마구치구미 간부를 [[M16 소총]]으로 30발을 사격해 사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32&aid=0002977652|#]],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3&aid=0003490231|#]] 2020년 1월에는 임협 야마구치구미가 조직명을 갑자기 '키즈나카이'라 바꾸고 야마구치란 이름을 버려 주목을 받았다. 일본 현지에서는 임협 야마구치구미가 상대적으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야마구치구미라는 이름을 걸고 독립했지만, 야마구치구미와 고베야마구치와 달리 이렇다 할 세력을 끌어모으지 못하면서 양 세력 사이에서 생존이 어려워졌다 보니 아예 야마구치 삼국지 구도에서 빠져 독자생존을 모색하려 한다는 평을 받게됐다. 임협 야마구치구미를 이끌고 있는 오다 요시노리는, 야심차게 고베야마구치구미에서 독립했음에도 이렇다 할 성과도 내지 못하는데 폭력조직의 수장으로서 불필요하게 매스컴에 노출되는 것만 반복한다는 평을 받는다. 입협 야마구치구미 소속원은 약 400명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이곳에 속한 2차 단체만 해도 30곳은 넘다 보니 실질적으로 각 2차 단체는 많아봐야 20~30명 규모의 소규모 조직들이라 수익구조가 매우 취약한 것도 약점. 실질적으로 폭대법 이후 큰 돈을 굴릴 자본이 없는 소규모 조직들부터 대부분이 말라죽었다는 걸 고려해보면 임협 야마구치구미의 상황은 상당히 안 좋을 수밖에 없다. 야마구치구미와 고베야마구치구미는 모두 쿠도카이에 이어 두번째로 '특정 위험 지정폭력단'으로 지정됐다. 이로써 조직에 대한 일본 경찰의 감시가 더 심해졌고 6대째나 고베 측이나 모두 손발이 묶여 항쟁에 어려움을 겪는 상태가 됐다. 거기다 2020년 당시 [[코로나 19]]가 일본에 퍼지자 양측은 사실상 무기한 휴전에 들어갔으나 2020년 5월 30일 고베야마구치구미에 소속된 이케다구미의 오카야마 사무실이 습격당해 간부와 조직원 한 명이 총상을 입었다. 이 날 이케다구미에서는 2016년 야마구치구미 쪽 조직원에 습격당해 사망한 간부의 추모회가 열리는 중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48EqRaGFNM|사건 당시 CCTV가 공개됐는데 그야말로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활극이었다.]] 이렇게 야마구치구미가 고베야마구치구미가 계속 공격을 해도 고베 측은 별다른 보복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으며 조직원들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전망이 있다. 고베 측의 중핵 조직인 야마켄구미도 위태로운 낌새가 보이고 현재 전쟁은 6대째 야마구치구미의 우세 속에 있다는 것이 전반적인 일본 언론의 평가이다. 2020년 8월 고베 야마구치구미의 중핵조직인 야마켄구미가 분열하여 탈퇴하자는 조장파와 고베 잔류파로 나뉘어져서 분열했다. 현 조장인 나카타 히로시가 고베 야마구치의 두목인 이노우에 구니오와 결정적으로 사이가 틀어젔으며 고도카이 조직원 습격 사건으로 감옥에 있는 상태에서 탈퇴를 결정했다고 한다. 직계 부하두목(직상) 50명 가운데 20명이 나카타 히로시를 따라 고베를 탈퇴했으나 나머지 30명은 고베 야마구치에 잔류하는등 분열과 혼란이 거듭되고 있으며 일본 언론은 고베 야마구치구미의 해산도 전망하고 있다. 또 5월에 습격 당한 이케다구미도 고베 야마구치를 탈퇴해서 독자조직이 됐다. 또 키즈나카이도 해산 움직임이 있었으나 부하들이 두목 오다에게 해산반대를 주장해 해산하진 않았다고 한다. 여러모로 6대째 야마구치구미에 유리한 상황이다. 2021년 7월경 [[2020 도쿄 올림픽]]과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인해 항쟁은 소강상태가 됐다. 다만 독자조직을 선택한 독립파 5대째 야마켄구미의 니시카와 요시오 부두목이 6월 6일 코로나19로 사망했고, 이를 틈타 고도카이쪽에서 야마켄구미의 분열을 노리고 각종 교란정보를 뿌리는 모략전을 감행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각 간부들이 지병과 생활고, 경제난으로 항쟁을 할 여유가 없다고 한다. 올림픽 자숙이 끝나면 항쟁이 재개될 것이라는 일본 야쿠자 전문가들의 전망이 나오고 있다. 2021년 고베-야마구치구미의 중핵 조직인 야마켄구미가 분열과 자중지란을 거듭하던 와중에 고베측에서 탈퇴해 독립을 선언했으나 9월 16일 결국 6대째로 복귀를 결정했다. 이리하여 고베측은 중핵조직[* 심지어 이노우에 구니오의 출신 조직도 야마켄이었다. 야마켄의 현재 두목인 나카타 코지는 그의 부하였는데 그를 배신하고 야마구치구미로 붙어버렸다.]이 이탈을 넘어서 6대 야마구치구미로 복귀함에 따라 전세가 크게 불리해졌으며 점점 6대째의 승리로 전쟁은 귀결되가고 있는 모양새이다. 고베야마구치구미 두목 이노우에 구니오의 집에 발포한 사건으로 6대째 두목 시노다 켄이치의 집이 가택수사 받았는데, 시노다 켄이치가 직접 집 밖으로 나와 화제가 되었다.[[https://www.youtube.com/watch?v=rSS3_AJa54E|영상]] 한편 야마구치구미 고도카이 소속 조직원들의 고베측에 대한 공격이 계속 되고 있는데, 실행범만 처벌하고 윗선은 처벌하지 않는 것이 감지되고 있다. 미조구치 아츠시 기자는 이런 이유가 고도카이의 다카야마 기요시가 [[아베 신조]]나 [[자민당]]과 관련이 있는 경찰, 검찰 간부들과 밀접하게 연계됐었기 때문이라는 설을 제시했다.[[https://www.nikkan-gendai.com/articles/view/news/310140|#]] 2022년 9월 8일, 고베야마구치구미-이케다구미-키즈나카이가 대등한 관계의 동맹을 맺음으로서 다시 연계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고베 측은 키즈나카이의 오다 요시노리를 살해하려다 실패하고 대신 보디가드를 죽였는데, 이번에 그의 5주기 공양 때 고베 측 간부들이 대거 조문에 나서는 퍼포먼스를 보이기도 했다. 구원은 잊고 6대째 야마구치구미랑 싸우는 데 힘을 합치려는 모양새이다.[[https://news.yahoo.co.jp/articles/ac421e83082e79afd5d51f4b03193a0439c1eec4?page=1|#]] 특히 산하 주요 간부들이 그간 많이 이탈하여 위기에 빠진 고베측은 이번 연대로 그나마 무너져가는 모습을 수습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9월 21일 고베야마구치구미의 마지막 남은 중심축이었던 이리에 타다시 타쿠미구미 두목이 고베야마구치구미를 이탈하면서 고베 측의 어려움과 난맥상이 또 다시 노출됐다.[[https://weekly-jitsuwa.jp/archives/79264|#]] 10월 26일에는 6대째 야마구치구미 측에서 이케다구미의 두목 이케다 다카시를 이발소에서 습격했다가 실패한 사건이 일어났다. 곰 퇴치용 스프레이를 뿌려 교란하고 서바이벌 나이프로 공격 했으나 이케다 두목의 보디가드가 막았다고 한다. 고베 측의 주요 중핵조직인 야마켄이 분열하여 힘을 잃자, 반 6대째 파벌 중 자금원이 가장 크다고 평가되는 이케다구미를 집중적으로 노리는 것 같다.[[https://news.yahoo.co.jp/articles/b980ce95a221511134547ef4e8496df0764e4eb7|#]],[[https://news.yahoo.co.jp/articles/05e2958b6ef88731ae6a0db6834a3b2b6a37743a|#]] 2022년 12월 21일, 고베야마구치구미에서 이탈한 교유카이(侠友会) 회장 테라오카 오사무 전 부두목이 6대측의 다카야마 기요시 부두목을 만나 사죄하고 조직 해산과 은퇴를 결정했다. 중재는 [[이나가와카이]] 회장 우치보리 카즈야가 맡았으며, 해산된 교유카이 조직원들은 6대측으로 복귀한다고 한다. 이로서 고베측은 점점 해체의 위기에 몰리고 있다.[[https://www.youtube.com/watch?v=spV0AyqO0zw|#]]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