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야마구치구미 (문단 편집) == 일화 == 타오카 카즈오가 두목이던 시절에 연예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으며 [[토에이]]에서는 타오카 카즈오와 야마구치구미를 소재로 하여 <야마구치 3대>, <삼대계승>, <제패> 등의 영화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야마구치 3대>와 <3대 계승>에서는 [[타카쿠라 켄]]이 타오카 카즈오를 연기하였고, <제패>에서는 [[미후네 토시로]]가 타오카 카즈오를 연기하였다. 1989년에 제작된 [[TBS 테레비]] 드라마 <미소라 히바리 이야기>[* [[미소라 히바리]]의 후견인이 타오카 카즈오였고, 거기다가 미소라 히바리의 남동생 가토 테츠야도 야쿠자와 연관되어 있었다. 그래서 미소라 히바리의 야쿠자 연관설은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혔다.]에서는 [[기타노 다케시]]가 타오카 카즈오를 연기 하였다. 타오카 카즈오는 <삼대계승> 촬영 당시 직접 촬영 현장을 방문하여 타카쿠라 켄을 격려하기도 하였다. 타오카 카즈오와 타카쿠라 켄은 영화가 제작되기 전에도 이미 친분이 있었는데, 타카쿠라 켄의 결혼식에도 타오카 카즈오가 초대되어 참석했을 정도였다. 타카쿠라 켄은 야쿠자 영화로 톱스타가 되기 전에 [[미소라 히바리]]의 상대역으로 유명했는데, 미소라 히바리의 소속사 사장이자 후견인이 타오카 카즈오였기 때문에 서로 안면이 있었고, 친분이 있었다. <야마구치 3대>와 <삼대계승>은 당시 기자들이나 비평가들에게는 야쿠자를 미화한다고 욕을 바가지로 먹은 작품이다. 타오카 카즈오가 시나리오, 감독 선정 등 이 영화의 제작에 깊게 관여했다. 영화 상영 이후 토에이의 자체적인 관객 조사 만족도에서는 관객의 92%가 타오카 카즈오의 휴먼 드라마에 감동했다는 [[충공깽]]스러운 데이터가 나왔다. 결국 [[의리없는 전쟁]]에 웃도는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상당히 크게 성공했다. 그런데 <삼대계승> 이후 더 이상의 속편이 나오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야쿠자 미화로 계속 욕을 먹는것에 토에이가 부담을 느꼈으며, 또한 속편이 계속 진행될수록 타오카 카즈오와 깊이 연관되어 있던 [[미소라 히바리]]가 영화에 등장해야 하는데, 남동생 가토 테츠야 덕분에 야쿠자 연루설로 크게 곤욕을 치루고 있던 미소라 히바리가 속편 제작을 허락치 않았다는 [[카더라]]가 있다. 이렇게 야마구치구미가 연예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을때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고 중 하나가 1953년에 일어난 배우겸 가수 츠루타 코지가 야마구치구미 조직원들에게 습격, 폭행을 당한 일명 <츠루타 코지 습격 사건>이다. [[최무룡]]과 [[김희갑]]이 [[임화수]]에게 구타당한 사건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사건이 언론을 통해 연일 보도되는 바람에 외려 광고효과(?)가 되어서 이 때까지만 해도 지방의 듣보잡 조직이던 야마구치구미는 당당한 전국구 스타 조직(?)으로 거듭나게 된다. 사건의 내용은 1953년 1월 6일 저녁 츠루타 코지가 동료배우들과 식사를 하고 있었다. 현장에는 약 10명 정도가 있었다. 이 때 야마구치구미의 야마모토 켄이치 주도하에 4명이 츠루타 코지를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위스키 병, 벽돌 등으로 후려치고 도주한다. 츠루타 코지는 구급차로 병원으로 이송되어 머리와 손에 11바늘을 꿰매는 중상을 입었다. 경찰의 조사에 따르면 사건 발생 동기는 이러하다. 몇 달 전 1952년 가을 타오카 카즈오가 츠루타 코지의 매니저에게 [[미소라 히바리]]와 츠루타 코지의 조인트 공연을 제안하지만 거절 당한다. 이에 타오카 카즈오는 앙심을 품게된다. 그리고 야마모토 켄이치가 나서서 츠루타 코지 매니저의 태도와 언행이 오만불손하다며 본보기를 보이겠다며 자신포함 네명의 조직원과 츠루타 코지를 습격한 것이라고. 이 사건으로 습격한 조직원 4명은 기소되었고, 타오카 카즈오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의 판결을 받는다. 그리고 츠루타 코지의 매니저는 사건 발생 2년 후 음독 자살을 하고 만다. 나중에 타오카 카즈오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당시 츠루타 코지의 매니저의 태도에 빡치긴 했지만 나는 습격을 지시하지 않았고 조직원들이 마음대로 저지른 짓이다."라고 적었지만 경찰 반응은 '''"[[개소리 집어쳐]]!"''' 한편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갑자기 습격을 당한 츠루타 코지는 타오카 카즈오에게 사과와 해명을 요구했고, 두 사람은 서로 만나서 긴 대화를 나눈 끝에 결국 화해 했는데, 츠루타 코지가 [[대인배]]스럽게 용서를 해줬기 때문에 이후 타오카 카즈오는 츠루타 코지를 함부로 못 건드렸다고 한다. 1992년 배우이자 감독이였던 [[이타미 주조]]가 <민보의 여자>라는 영화를 찍는다. 내용은 갈취 피해를 당하는 호텔을 도와 형사+여변호사가 야쿠자에 대항한다는 작품. 이에 야마구치구미 산하 고토구미 소속 조직원이 이타미 주조를 칼로 습격한 사건이 일어난다. 당시 폭대법이 시행된지 얼마 안된 시점이라 이 사건은 크게 사회문제화 되었다. 시민사회에서 야쿠자에 대항해 싸우자는 움직임이 커진다. 이타미 주조도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는 등 반 야쿠자 풍조가 더 강해져 야쿠자의 자충수라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이후에도 야쿠자들은 이타미 주조를 끝없이 괴롭힌다. 그러다가 결국 이타미 주조 감독은 석연찮은 자살을 한다. 당시 이타미 주조는 불륜을 벌이고있단 의혹이나 SM 클럽 다닌다는 의혹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정작 본인은 의혹에 대해 부정한데다 신작 계획이 잡혀 있어서 자살할 상태가 아니었다는 얘기가 많다. 이 사건을 통해 사회적으로 야마구치구미에 대한 공포가 더 심해진다. 이후 고토구미는 각종 사건에 휘말리다가 2008년 연예인들과 골프회동을 한게 주간지에 폭로되었고, 그것으로 트집을 잡혀 절연 제명되어 해산되었다. 물론 고토구미와 고도카이간의 내부 권력 다툼이 원인이 되어 트집 잡힌 후 해산됐다는 평가가 나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