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야율찰할 (문단 편집) == 상세 == [[요세종|세종]]을 황제로 옹립해 총애받았고 여석렬군(女石烈軍)을 지휘하며 대궐을 드나들었다. 야율옥질[* 耶律屋質, 915 ~ 973. 요사에 '''系出孟父房'''이라고만 되어있을뿐 자세한 계보는 명확치않다. 맹부방은 야율살랄적(요 태조 아버지)의 형 야율암목의 방(房)으로 곧 야율욕질은 야율암목의 후손임을 알 수 있다.]이 야율찰할의 간사함을 세종에게 고했으나 듣지 않았다. 결국 951년 세종이 상고산에 왔을때 야율분도[* 耶律盆都. 야율인저석(耶律寅底石)의 아들이자 태조의 조카다.]와 함께 병사를 이끌고 태후와 세종을 암살한 후 황제에 즉위했다가 1년도 안되는 짧은 재위 기간 중 수안왕 [[목종(요)|야율술률]]에게 패하고 목숨을 잃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