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야쿠자 (문단 편집) == 이미지 == 보통 야쿠자라고 하면 정형화된 이미지를 가진 일본의 [[범죄 조직]]부터 떠올리지만, 일본 본토에서는 야쿠자라는 단어의 용례를 자국에 한정시키지 않고 범죄 조직 전반에 걸쳐 적용시키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즉 한국의 [[조폭]], 이탈리아와 미국의 [[마피아]], 미국의 [[바이커 갱]], [[갱스터]], 중국의 [[삼합회]], 남미의 [[카르텔]] 등을 전부 야쿠자라는 표현으로 퉁칠 수 있다는 것. [[만화]]나 [[영화]]에서는 [[의리]]를 중시하고 잘못한 놈이 [[할복]]을 하는 등 [[사무라이]]의 후손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 사무라이의 후손이 야쿠자가 되려면 몇 대째 등성조차 못하고 극도로 몰락해서 낭인이 되거나 대죄를 지어 할복이 아닌 참수형을 당해 폐문쯤은 당해야 가능하다. 야쿠자가 사무라이의 후손이라는 설은 일본의 각종 매체에서 몰이해로 인해 잘못 알려진 사실들이다. 진짜 사무라이의 후손들은 메이지 유신 이후 대부분 군대나 경찰에 입대하거나 정부관료로 일했고 다이묘나 주요 유신지사 급은 화족으로 편입되었다. 걸핏하면 [[손가락]] 잘라대는 유비츠메 의식이 있는 건 사실이다. 손가락 하나를 모두 자르는 게 아니라 손가락 한 마디씩 자르는 의식이다. 보통 잘 안쓰는 왼손 새끼 손가락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매체 등에서는 아무나 잘라대지만 실제로는 직책에 따라 가치가 다르고 잔을 받지 않은 조직원이나 일반인의 손가락은 전혀 가치가 없어서 자른다고 봐주지 않는다. 일본 야쿠자 하면, [[공구리(도시전설)|드럼통에 넣어서 바다에 빠뜨린다]]는 [[카더라]] 전설이 유명하다. [[파일:external/c.huv.kr/86d74749dc9564231908adb835415e70ce761684.jpg]] 공구리 대신 고열로 처리한다는 뜬소문도 있으나, 이는 사실이라고 하기 어렵다. 일단 3,000°C라고 하면 단순히 '뜨겁네'라고 인식할 수준이 아니다. 3,000°C라는 온도 자체가 산업에서 거의 쓰이지 않을 정도로 만들어내기 힘든 초고열이다. 그냥 가스레인지 켰다가 끄듯이 만들 수 있는 온도가 아니라는 것.[* 그래도 감이 오지 않는다면 용접할 때 순간온도가 대략 그쯤 된다고 보면 된다. 참고로 가스레인지 불꽃 온도가 약 1,400~1,600°C 정도 된다.] 저만한 온도를 내기 위해서 드는 시간만 해도 오래 걸리고, 식히는 데는 더 오래 걸린다. 한 번 쓰고 마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극심한 비효율이다. 해당 온도를 견디기 위한 용기 또한 내열성 벽돌을 써야 하는데 애초에 3,000°C를 버티는 내화물 자체도 드물 뿐더러 엄청나게 비싸다. 참고로 알루미늄 녹는점 600°C, 철 녹는점 1,500°C. 3,000°C면 [[텅스텐]]쯤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 온도는 어떻게 유지할 건가? 3,000°C면 가스레인지로는 못 만들고, [[포스코]] 같은 [[제철소]]에서 쓰는 전기 고로를 가져와도 어렵다. 애초에 철의 녹는점도 아니고 끓는점, 즉 기체가 되는 온도가 3,000°C이다. 참고로 전기 고로도 3,000°C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다. 무엇보다 [[아스팔트]]는 200°C 가량에서 만들어진다. 다만 굳이 가능성을 논해 보자면, 작가가 치밀한 취재를 한 후 만화를 그리기로 유명한 [[사채꾼 우시지마]]의 에피소드 중 야쿠자 조직에서 폐기물 처리 기업을 운영하면서 그곳에서 시체까지 처리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래서 그 기업운영을 나메리카와라는 등장인물이 도맡아하고 시체를 흔적도 없이 만든후 처리하는 장면이 나오며, 비슷한 애니메이션인 [[휴먼버그대학교]]에서는 [[아모우구미]]가 오오카와 석재공장의 아스팔트 시설을 빌려서 시체를 처리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당연히 일반 가정에서는 만들지 못하는 온도니 그런 전문 기업을 아예 운영하는 야쿠자의 스케일을 볼 수 있다. 또, 실제에서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닌게, 시멘트 소성로의 경우 3,000°C까지는 아니지만 약 2,000°C까지는 온도가 올라간다. 즉, 시멘트 회사를 가지고 있거나 거래한다면 가능한 일이라는 얘기다. 애완동물 장례업을 등록한 후, 평소에는 애완동물을 화장하다가 때가 되면 사람을 태워서 처리한다는 루머도 존재한다. 역시나 루머인 만큼 신빙성은 낮다. [[미국]]에서 이 야쿠자를 영화계로 의식하기 시작했는데, 우후죽순으로 야쿠자 영화가 만들어졌다. 로버트 미첨의 '''<야쿠자>'''나 [[마츠다 유사쿠]]의 '''[[블랙 레인]]''' 등등 말이다. <블랙 레인>은 세계적으로 대박이 나서 마츠다 유사쿠를 세계적인 배우로 만들어줬다. 그 전에 마츠다 유사쿠는 야쿠자 영화의 주연이나 조연으로 나왔다. 안타깝게도 <블랙 레인>이 개봉된 지 얼마 안 되어서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반대로 야쿠자를 쓰레기로 보면서 야쿠자의 현실을 은근히 꼬집던 일본 영화감독 [[이타미 주조]]는 1992년 영화 <민보의 여자>에서 호텔 경영을 두고 야쿠자들을 적나라하게 현실적으로 묘사해 실제로 야쿠자들에게 폭행당했다. 그 이후로도 야쿠자들의 압력으로 온갖 고생을 하다가 1997년 어처구니 없는 불륜 사건에 휘말려 사회적 매장을 당했고 자신의 억울함을 증명하겠다면서 스스로 투신하여 64살로 자살했다. 그런데 이 자살이 여러가지로 굉장히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아서 지금도 곧잘 재조명된다. 외국 저널리스트들 중에는 아예 자살이 아닌 야쿠자에 의한 살인이라고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 대표적 인물로 [[음모론]] 전문가 겸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사우스웰이 있다. 덕분에 [[일본 만화]]에서도 야쿠자가 악랄하게 나오면서 그래도 좋은 놈도 있다고 넌지시 조금이나마 좋게 나오는 것도 이런 영향이 크다는 분석까지 있다. [[일본 만화]] [[가면전사 아쿠메츠]]를 보면 폭대법을 만들어 야쿠자를 조이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말단 부하가 잘못하면 조직의 간부, 심지어는 보스에게 책임소재를 묻는 법으로 보인다. [[데즈카 오사무]]도 실화를 바탕으로 [[대부의 아들]]이라는 작품을 그렸는데 여기서는 야쿠자의 아들과 친구를 한 주인공 데즈카의 이야기, 약골 데즈카를 보호해주고 체력을 단련시켜주고 대신에 데즈카가 그린 미소녀 만화를 받게 되는 이야기이다. 조폭관련 이야기인데 아련하다. 특히 마지막에 야쿠자 아들은 [[카미카제]]의 이슬이 되고 성장한 데즈카는 그것을 회상하는 장면이 명장면. 야쿠자의 아들은 특공하는 순간에도 데즈카가 준 그림을 허리에 차고 있었다. 야쿠자의 세계에서는 인정보다는 의리를 더 가치에 둔다고 한다. 노래도 "인협의 세계에서는 인정보다는 의리~"라는 노래도 있다. [[쇼와잔협전]]에서 나온 카라지시보탄이라는 노래다. 이 영화가 나올때는 한창 야쿠자를 [[협객]]으로 그리는 임협물이 유행할 때였다. '''물론 수틀리면 서로 죽이고 죽는 세계라서 전혀 의미가 없다.''' [[일본 문화]]에서 본격적으로 야쿠자를 리얼리즘에 기반하여 다루게 된 것은 영화 [[의리없는 전쟁]] 이후다. 그 전까지는 다소 낭만적으로 그리는 풍조가 있었는데, 이 이후 오히려 리얼하게 그려내서 "피도 눈물도 없는 야쿠자 세계"를 묘사했다며 야쿠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얻었다. 이 영화가 역으로 영향을 준 사례도 꽤 있다고 한다. 일본의 [[공산주의]] 계열 학자인 미야자키 마나부는 야쿠자의 아들이지만, [[전공투]]에 참가하여 투쟁한 사람이다. 이 사람이 쓴 야쿠자 관련 서적인 <야쿠자, 음지의 권력자들>에 의하면, [[재일교포]]들 중 일부는 야쿠자와 관련이 있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건 사실이다. 실제 야마구치구미가 관동에 진출하는데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것이 당시 관동지방에서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던 재일교포 야쿠자 조직이라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 사실 1960년대 일본 청년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야쿠자 영화다. 특히 [[좌익]] [[학생운동]]가들이 야쿠자 영화를 많이 봤는데, 자기들만의 룰, 의리, 파벌간의 대립, 배신, 음모, 그럼에도 버릴 수 없는 우정같은 것을 다루고 있었기 때문에 묘하게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 다만 보다 정확히는 그냥 당시에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야쿠자물 자체가 유행이었다. 애초에 과격한 액션과 야한장면이 많이 나오는 영화들에 당시 젊은이들이 거기에 안빠지면 이상한거기도했다. [[전공투]] 시대의 학생운동가들은 서브컬쳐에 영향을 많이 받았고, 야쿠자 영화도 많이 봤다고 한다. 근데 아이러니한게 현실의 야쿠자들은 '''대부분 [[우익]]이며 역사를 보면 1947~1949년엔 일본 공산당과 좌파인사 숙청에 참여했다.''' 예나 지금이나 아직도 대부분 극우계열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사실 세계적으로 극좌와 극우는 서로 비슷한 면이 꽤 많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