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야쿠자 (문단 편집) === 지정 폭력단 === * [[야마구치구미]](山口組) - 국가공안위원회 지정 주요폭력단 2014년 [[포춘]]지에서 야마구치구미 연간 수익이 66억 달러로 전세계 범죄 조직 중 2번째로 큰 수익을 낸다는 기사를 냈다. * 고도카이(弘道会) - 야마구치 구미 산하 최대 파벌이다. 6대 회장 시노다 겐이치가 여기 출신이다. 재일교포가 다수파인 산하의 다카야마구미가 고도카이를 넘어 6대 야마구치구미의 중핵으로 자리잡고 있다. 시노다 이후 7대 야마구치구미 조장 후보로 3대 고도카이 회장이자 다카야마구미 2대 조장 출신인 다케우치 데루아키가 가장 유력하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 고쿠스이카이(國粹会) - 원래는 뿌리 깊은 우익 정치결사 야쿠자로 관동에서 상당한 세력을 자랑했으나 2005년 야마구치구미에 가입했다. 야마구치구미의 관동진출의 효시로 자주 거론된다. * 5대째 야마켄구미(山健組) - 야마구치 구미 산하 2대 파벌이자 다오카 카즈오의 오른팔이었던 야마모토 켄이치가 만든 조직. 무투파로 야마구치구미 내부에서 이름이 높았고 5대 회장 와타나베 요시노리를 배출했을 정도로 야마구치구미 내부에서 중핵조직이었다. 그러나 6대 회장 자리를 고도카이에게 내주고 난 뒤 조직내에서 나고야파에게 밀려 입지가 많이 약해졌다. 결국 고도카이의 전횡을 참다못해 2015년 야마구치 구미 분열 사태를 주도하며 조직을 탈퇴해 새로운 조직 고베-야마구치 구미를 창설하였다. 하지만 2021년, 고베-야마구치구미에서 이탈하여 1차 단체로 독립한 야마켄구미파와 고베-야마구치구미에 남아있자는 잔류파로 나뉘어져 분열하는등 자중지란과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2021년 9월 16일 결국 나카타 히로지 두목이 이끄는 700명 규모의 독립파 야마켄구미가 6대째 야마구치구미에 복귀해버렸다. 고베측에서는 주요 중핵조직이 이탈을 넘어 6대째로 복귀하는 최악의 결과가 오면서 전쟁은 6대째에 크게 유리해졌다. * 고베-야마구치 구미(神戸山口組) - 국가공안위원회 지정 주요폭력단 야마구치구미 분열사태로 인하여 고베의 야마켄 구미를 중심으로 야마구치구미를 이탈하여 새로운 조직을 창설하였다. 그리고 미국 재무부가 초대 회장 이노우에 구니오에 경제재재를 가했다.[[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2/31/0200000000AKR20161231037000009.HTML?input=1195m|#]] 야마구치 구미와 90차례 충돌했었다.[[https://youtu.be/IlS6czsQUHU|#]] 2016년 당시에는 조직원의 숫자가 7,000명이었다. 7년간의 항쟁으로 산하 주요 조직들이 대거 탈퇴하거나, 해산하거나 독립함으로서 위기에 빠진 상태이다. 2022년 3월 기준 조직원은 구성원과 준구성원을 합쳐 1000명 정도로 급감하였다. 그러나 2022년 9월 고베야마구치구미-이케다구미-키즈나카이가 대등한 관계의 동맹을 맺음으로서 다시 연계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고베 측은 키즈나카이의 오다 요시노리를 살해하려다 실패하고 대신 보디가드를 죽였는데, 이번에 그의 5주기 공양 때 고베 측 간부들이 대거 조문에 나서는 퍼포먼스를 보이기도 했다. 구원은 잊고 6대째 야마구치구미랑 싸우는 데 힘을 합치려는 모양새이다.[[https://news.yahoo.co.jp/articles/ac421e83082e79afd5d51f4b03193a0439c1eec4?page=1|#]] 하지만 그것도 잠시, 9월 21일 고베야마구치구미의 마지막 남은 중심축이었던 이리에 타다시 타쿠미구미 두목이 고베야마구치구미를 이탈하면서 고베측의 어려움과 난맥상이 또 다시 노출됐다.[[https://weekly-jitsuwa.jp/archives/79264|#]] 기사에 따르면 키즈나카이 보디가드를 조문하는 것을 이노우에는 마뜩치 않게 여겼고, 결국 이리에 타다시와 말싸움이 있었다고 한다.[[https://news.yahoo.co.jp/articles/9cab92c80f12fb7344b77f27571fb93e6a19bcf3|#]] * 잔류파 야마켄구미(山健組) - 고베 야마구치구미에 잔류한 인원들로 구성원은 약 500명 규모라고 한다. 5대째 야마켄은 700명, 잔류파는 500명이라고 하나 실상 양측 모두 숫자가 크게 부풀려져 있고 실수는 100~150명 정도라고 한다. 전성기 7,000명에 달하던 야마켄구미의 입장에선 정말 쇠락이 심각한 편. 가뜩이나 6대 야마구치구미로 복귀한 세력과 잔류파가 또 분열되어 일본 언론은 차후 쇠락은 필연적으로 보고 있다. 두목은 나카타 히로지를 봐서 공석으로 두고 두목 대행으로 모토미츠 시로우, 부두목에 아타에 노리카즈가 취임했다. 아타에 노리카즈는 2019년 고도카이 계열 조직원에게 칼로 습격 당해 큰 부상을 입었으며 두목 나카타 히로지가 이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직접 고도카이 조직원을 총격하여 체포된 상태였다. 그러나 나카타 히로지가 이끄는 5대째 야마켄구미는 결국 6대 야마구치구미로 복귀했고 죽을 뻔한 아타에 입장에선 이를 수용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2021년 8월 아타에 노리카즈는 자택에서 나오다가 자전거를 탄 히트맨에게 또 총격을 당했다. 다행히 다리를 스친 경상으로 목숨을 건졌으며 보디가드가 재빨리 차에 태워서 피신시켰다고 한다. 히트맨은 2km 가량을 집요하게 추적했으나 결국 히트에 실패하고 도주했다. 범인은 아직도 잡히지 않았다. 한편 나카타 히로지의 5대 야마켄구미는 모토미츠 시로우, 아타에 노리카즈를 비롯한 잔류파 간부들에 대해 절연,파문,제적 처분을 내렸다. * 키즈나카이(絆會)(전:닌교야마구치구미(任侠山口組)) - 고베야마구치구미 내에서의 회비를 포함 조직운영에 불만을 느낀 구성원들이 독립해서 나온 조직이다. 현 고베야마구치구미의 두목인 이노우에 구니오의 오른팔이었던 오다 요시노리(김정기)를 대표로 하는 조직으로, 상대적으로 젊은층들이 주축이 되고 있는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17년에 오다 요시노리를 노린 야마켄 구미의 암살시도가 있었고, 이 과정에서 오다 요시노리의 보디가드가 사망했다. 2020년 1월 갑자기 조직명을 키즈나카이라 바꾸고 야마구치란 이름을 버렸다. 현지에선 야마구치 삼국지에서 빠저서 독자생존을 모색하고 있다는 평이다. * 이케다구미(池田組) - 원래 고베야마구치구미 소속으로 2015년 분열당시 고베측의 주요 구성조직이었다. 두목 이케다 타카시[* 재일출신으로 한국명은 김효지]가 고베야마구치구미의 샤테이카시라를 맡을 정도였으나 쇠락해가는 고베측에 한계를 느끼고 2020년 7월 고베야마구치구미 회장 이노우에 쿠니오, 부회장 타쿠미구미 두목 이리에 타다시와 삼자회담 끝에 독자적으로 탈퇴를 결정하고 승낙을 얻은 뒤 독립하였다. [[오카야마현]] [[오카야마시]]가 본거지이며 아이치현에도 세력이 있다.조직원은 약 200명, 2020년 1월 7일 6대째 야마구치구미와의 총격전으로 특정항쟁지정폭력단에도 지정되었다. 키즈나카이와 정식으로 친척조직의 연대를 맺었다고 한다. 2022년 9월 8일 고베,키즈나카이와 함께 구원을 잊고 대등한 친척조직으로 3자 연합을 맺는 모습을 보였다. 2022년 10월 26일 이발소에서 이케다 다카시가 야마구치구미 계열의 조직원으로부터 나이프로 습격 당하는 일이 있었으나 보디가드가 막아냈다.[[https://news.yahoo.co.jp/articles/1cac305a303d3430770dee5bd6e750d5611bd522|#]] * 타쿠미구미(宅見組) - 5대 야마구치구미의 부두목이었던 타쿠미 마사루가 만든 조직으로 이번 분열사태에서 야마켄구미와 입장을 같이 하였다. 여담으로 타쿠미는 버블시절 금융과 부동산으로 2,000억 엔 정도의 재산을 갖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 자금력을 배경으로 5대 야마구치구미를 실질적으로 운영했고 야마구치구미의 금고지기라는 별명이 있었다. 한국계로 알려져 있는 현 2대 조장 이리에 타다시는 6대 야마구치구미 소속 당시 샤테이카시라로 실질적 서열 3위였으며 탈퇴 후 고베야마구치구미 부조장이 되었다. 2022년 5월 8일 이리에 타다시의 자택에 트럭이 돌진하는 사건이 있었으며 경찰은 폭력단의 항쟁으로 보고 있다.[[https://youtu.be/mKp80vCiGXg|#]] 9월 21일 마지막까지 고베측에 남아있었던 타쿠미구미마저 탈퇴하여 독자조직으로 남기로 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https://weekly-jitsuwa.jp/archives/79264|#]] * [[스미요시카이]](住吉会) - 국가공안위원회 지정 주요폭력단 가장 현대적인 형태의 야쿠자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 [[이나가와카이]](稲川会) - 국가공안위원회 지정 주요폭력단 고다마 요시오의 비호아래 전국적인 조직으로 성장해 현재에 이른다. 5대 회장이 재일교포 기요타 지로(신병규)이다. 4대째부터 조직이 분열될 조짐을 보였으나 5대째가 되며 기요타 지로의 야마카와일가가 중핵조직이 되어 조직을 장악한 상태. 6대 우치보리 카즈야가 승계를 하고 야마구치구미와 우호관계를 다지고 있다. * 아이즈코테츠카이(会津小鉄会) - 1868년 설립한 유서깊은 [[교토]]의 조직이다. 여기 4대 회장은 재일인 다카야마 도쿠타로(강외수)로서 조직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다카야마의 영도아래, 1993년경 조직원이 1,600명에 달하고 교토 외의 지역에도 큰 세력을 떨쳤다. 그러나 1997년 다카야마가 은퇴하고 5대 즈코시 토시츠쿠와 6대 바바 미츠쿠를 거쳐 쇠락세가 지속되었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조직원이 600명 이상 감소하고, 설상가상으로 2017년경 7대 회장 자리를 두고 조직간에 분열이 일어났다. 이는 야마구치구미 분열소동의 여파인데 6대 회장 바바 미츠쿠는 고베 야마구치의 이노우에 회장과 의형제 관계였고 부두목 하라다 노보루는 야마구치구미의 고도카이와 의형제 관계였기 때문이다. 야마구치가 분열만 안됐더라면 조용히 승계가 됐겠지만 바바 회장은 고도카이의 다카야마 키요시에게 후견인 관계를 끊어 달라고 통보했으며 이에 격노한 다카야마가 부두목 하라다 노보루를 사주하여 쿠데타를 일으키게 했다. 하라다 노보루는 6대째의 인감과 문서를 위조하여 조직 승계를 자칭하고 본부 사무실을 점거했으나 이후 들통나고 바바 회장의 조직원들과 고베측의 지원을 얻은 인원들이 격투끝에 본부를 탈환하고 하라다를 절연 처분했다. 그러자 이에 굴하지 않은 하라다 노보루는 야마구치의 지원을 얻어 독자적으로 7대를 자칭했다. 바바 회장은 은퇴하고 7대째 가네코 토시노리에게 회장 자리를 물려주었으나 야마구치와 고베 야마구치의 지원을 얻은 2개의 아이즈코테츠카이가 서로 정통이라고 다투고 있으며 조직원이 감소하고 현재 쇠락 중에 있다. 2021년 1월 극적으로 하라다 노보루와 가네코 토시노리측이 서로 합의하여 화해하고 분열되어있던 양 조직이 서로 통합하였다. 가네코가 회장이 되고 하라다가 다시 부두목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가네코는 고도카이의 다케우치 데루아키에게 양해를 구하고 야마구치구미 직참으로 있는 오우미잇가의 다카야마 요시유키[* 다카야마 도쿠타로의 친아들이다.] 의 중재로 분열을 끝냈다고 한다. * 교세이카이(共政会) - [[히로시마]]에 근거를 두고 있는 조직으로 영화 [[의리없는 전쟁]]의 텐세이카이의 모델이다. 1960년대에 있었던 히로시마 항쟁의 주역으로 혼다카이와 손잡고 조직에서 분리해나간 미노구미+야마구치구미와 대리전쟁을 치렀다. 1965년 야마구치구미 3대 두목 다오카 카즈오의 집에 다이너마이트를 던진 사건으로 유명했다. 이때 일화가 영화나 미디어로 많이 다뤄저서 히로시마 야쿠자가 유명해지는 계기가 됐다. 1970년대 후반에는 간사이의 아사노구미, 쿄우도카이와 협력 관계를 맺었고 한때 적대하던 야마구치구미와 공존노선을 맺기로 합의했다. 이후 1990년경 야마구치구미와 사카즈키고토를 나누고 우호 관계가 되었다. 1996년 이후 주변의 조직들인 쿄우도카이, 아사노구미, 고우다잇가, 신와카이와 오사회란 동맹을 맺고 있다. 현재 6대 회장 아라세 스스무는 고우다잇가의 스에히로 마코토와 의형제를 맺었다. * 도진카이(道仁会) - 큐슈 [[후쿠오카현]]에서 가장 큰 조직으로 2019년 기준 조직원은 약 450명이다. 사가현과 구마모토현에도 세력을 뻗치고 있으며 다른 큐슈조직인 타이슈카이,쿠도카이 등과 사사회란 동맹관계를 맺고 있다. 굉장히 흉폭한 항쟁으로 악명이 자자했는데 도쿄의 스미요시카이와 조직원을 상경시켜 싸운적도 있고, 야마구치구미와 크게 싸운적도 있다. 2006년 두목 승계 문제를 두고 분리해나온 무라카미일가를 중심으로한 규슈세이도카이와 큰 전쟁을 치렀다. 2007년경 3대 회장 오오나카 요시히사가 규슈세이도카이의 히트를 받고 사망했고 이에 무차별적인 보복에 나서 각종 중화기를 동원해 규슈세이도카이와 총격전을 주고 받았다.[* 이때의 사건으로 인해 큐슈는 [[수라의 나라]]라는 별명을 인터넷상에서 얻었다.] 2013년경 수류탄과 [[AK-47]]을 난사하는 항쟁을 종결하고 끝내 승리하였다. 현재 4대 회장으로 고바야시 테츠지가 두목으로 있다. * 나미카와카이(浪川会) - 도진카이에 반발해 독립한 규슈세이도카이가 나미카와카이의 전신 조직으로 도진카이와 자동소총과 수류탄 등의 중화기를 동원한 항쟁으로 유명했다. 이때 78세의 조직의 원로 간부가 수류탄을 들고 도진카이 본부를 습격해 한국 언론에도 자주 회자됐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79&aid=0002281521|기사]] 2013년경 도진카이와 화해하고 규슈세이도카이를 해체한 뒤 나미카와카이로 재탄생 했다. 회장 나미카와 마사히로(박정호)는 다카야마 기요시를 능가하는 현역 야쿠자 중 최고의 재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있다. 2016년 3월 29일에 있던 고베 야마구치구미의 관동회합이 그가 소유한 도쿄 다이토쿠 있는 빌딩에서 열리는 등 이번 야마구치구미 분열사태의 향후 행방에 큰 영향을 끼칠 인물로 주목받고 있다. 2019년 조직원은 200명 수준이다. * 쿠도카이(工藤會) - 기타큐슈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조직으로 무투파가 많기로 유명한 규슈 야쿠자들 중에서도 가장 무식할 정도로 무차별적인 폭력을 일삼는 조직이다. 위에서 스미요시카이와 대립한 도진카이와는 다른 규슈의 야쿠자 조직인 타이슈카이, 구마모토카이와 함께 사사회라는 동맹을 맺고 있다. 민간인에게 테러를 거침없이 저질러대는 조직으로[* 1988년에는 [[삼합회]]랑 경쟁하다가 [[산탄총]]과 [[덤프트럭]]으로 애먼 '''[[중화인민공화국]] [[후쿠오카]] [[영사관]]'''을 공격했고, 2000년엔 [[시모노세키]] 시장 선거를 도와주겠다며 당시 [[모리 요시로]] 아래에서 내각부 수석차관을 역임중이던 '''[[아베 신조]]'''에게 돈을 갈취하려다 아베가 이를 거부하자 아베의 의원 사무실과 자택에 [[화염병]]을 던진 전력까지 있다.[[https://www.japantimes.co.jp/news/2007/03/10/national/mob-boss-gets-20-for-abe-home-arsons/#.XBhf33QzaHs|#]]][* 사실 여기엔 반전이 있는데 아베 신조의 비서가 구도카이를 찾아가 상대방 후보를 비방하는 유인물을 살포할 것을 사주하고 입을 싹 닦자 빡친 쿠도카이측이 시모노세키의 아베 신조의 사무실과 집에 화염병을 투척한 것이다. 그러나 아베가 언론, 경찰 등에 압력을 넣어 이런 사실은 보도되지 못하고 애꿎은(...) 쿠도카이 조직원들만 깜빵에 갔다 와야 했고 2007년에 이르러서야 전모가 밝혀졌다. 이러한 내막을 몰랐던 일반 시민들은 정치인을 건드리는 건 야마구치구미도 못하는 짓인데 과연 쿠도카이답다는 반응이었다.] 2000년대에 와서 많은 조직들이 항쟁이나 폭력사건을 자제하고 돈으로 해결을 보는 데에 반해 '''2010년 이후'''에도 자동소총, 로켓 런처 같은 물건을 들여오거나 야쿠자 반대운동 관계자들을 암살하고 폭력단 추방을 외친 음식점에 수류탄을 던지는 등 무식한 짓을 계속하고 있는 조직이다. 심지어 쿠도카이를 담당하던 후쿠오카 현경의 간부가 은퇴하자 총으로 저격한 사건도 있다. 이에 따라 개정폭대법에 의해 유일하게 '''특정위험지정폭력단'''에도 지정되었다. 후쿠오카와 기타큐슈에서는 거의 공포의 조직으로 폭력단 수준을 넘어 '''[[테러조직]]''','''일본판 [[카르텔]]''' 이란 평가까지 받고 있으며 야쿠자 반대 운동가들에게 지속적인 테러를 가하여 조직원의 재판에 증인으로 지정된 사람들이 "잘 부탁할게."라는 조직원의 말을 듣고 죄다 증언을 거부하는 등 이상현상을 보이기까지 했다. 2016년 7월 일제 검거를 피해서 한국으로 도피한 [[재일교포]] 출신 간부가 [[필로폰]]과 일본에서 쓰던 [[토카레프]] 권총을 가지고 도망쳤다가 부산에서 검거되었다([[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7/19/0200000000AKR20160719094800051.HTML|日 야쿠자 중간 간부, 부산서 권총 갖고 은신하다 검거]] [[https://youtu.be/Vw9ud_foOVQ|뉴스 영상]]). 극단적인 폭력성으로 사실상 공공의 적으로 찍혀 2014년에 총재 노무라 사토루가 구속되고,[* 2021년 현재도 구치소에 수감중이다. 전 어협 조합장 사살사건, 어협 조합장 아들 테러사건, 전 경찰 간부 총격사건, 간호사 습격사건 관련으로 1심 재판에서 지정 폭력단 조직의 두목으로는 사상 최초로 사형이 선고 되었다.] 회장 다노우에 후미오도 구속됐다. 이후 계속된 검거 세례를 받아 조직본부가 세금 대납으로 매각되어 철거되는 등 과거보단 많이 쇠락했다. [[https://news.v.daum.net/v/20191124142101117|관련 기사]], 2012년에 [[알자지라]]에서 쿠도카이를 방문해서 간사장 기무라 히로시와 인터뷰를 한 영상이 있다. 상술했듯 지금은 조직 회관은 철거됐고 인터뷰한 기무라 간사장까지 검거됐다.[[https://youtu.be/ZWrSqQ4lvjw&t=0s|영상]] 한편 총재와 회장이 검거된 사건은 어협(수협)조합장 일가와의 일이 큰데 1998년 키타큐슈 어협의 개발 이권을 노리고 어협 조합장에게 접근했지만 거절 당하자 사살해버린 사건[* 이 어협 조합장은 야마구치계 폭력단 관계자로 젊은 시절 항쟁에서 쿠도카이 간부를 살해한 과거가 있었다. 가뜩이나 찍힌 상태에서 이권개입을 거절하자 살해했다는 추측이 유력하다.]과 이후 어협 조합장의 아들이 아버지를 이어 어협조합장이 됐는데 그에게 다시 접근해 어협 이권을 요구했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원수라 생각하고 쿠도카이를 무시해버렸다. 그러자 2013년에 후쿠오카에서 전 어협 조합장의 동생을 살해하고 2014년 어협 조합장의 아들[* 치과의사로 살해된 전 어협조합장의 손자]을 칼로 찌르는 테러를 감행했다. 그야말로 3대에 걸친 쿠도카이와의 악연인 것이다. 이외에도 2013년 유명 만두체인점 사장을 살해한 사건의 용의자로 후쿠오카 형무소에 복역하던 쿠도카이 조직의 간부가 체포[* 민간인 총격사건으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중이었다.]되어 현재 조사중이다. [[https://www.google.com/amp/s/www3.nhk.or.jp/news/html/20221028/amp/k10013873171000.html|#]] 이러한 극단적 폭력성으로 도쿄의 경찰청에 제대로 찍혀서 집중적으로 검거세례를 받아 많은 조직원이 이탈하고 생활고에 몰려 자살을 하거나 은퇴하는 일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 그렇지만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온 조직원들이나 전 조직원들이 총재와 회장에 대한 존경심을 여전히 늘어놓는등 쿠도카이의 조직력은 아직은 여전한 편이다. 2021년 8월 24일, 살인 등의 혐의로 결국 총재 노무라 사토루는 사형, 회장 다노우에 후미오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https://youtu.be/qpFGFaaQ-Ks|ANN뉴스]] 2022년 6월 넘버3인 키쿠치 케이고도 무기징역을 구형 받았다. 2022년 8월 노무라 총재 사형선고 1년 이후 일본 언론의 특집 보도에 따르면, 최근엔 쇠락세를 끝내고 관동지역에서 상당히 자금을 모으고 있으며, 약화됐지만 여전히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경계대상이라고 한다.[[https://www.youtube.com/watch?v=lb1ss2yp8pU|#]] * 사카우메구미(酒梅組) - 야마구치구미의 입김이 쎈 [[오사카]]에서 아즈마구미와 함께 독립조직을 유지하고 있는 바쿠도계 지정폭력단. 3대 조장 마쓰야마 쇼지로 시기에는 다오카 가즈오와 5분(동등한)형제 관계를 맺을 정도의 위세를 가졌으나 2014년 경에는 조직원이 약 40명으로 추정될 정도로 세가 상당히 약해져 있다. 1993년 오사카 공안위원회에 의해 지정폭력단으로 지정되었고 6대, 7대, 8대 조장이 한국계였으며 특히 7대 가네야마 고자부로(김재학)은 1988년 11월 [[칠성파]] 이강환과 6부 4부 사카즈키 의식을 치렀다. 이 때 축하금으로 동생이 되는 이강환에게 준 1억 엔 사용 문제가 발단이 되어 부두목급 김영찬이 신칠성파를 부두목 천달남이 영도파를 만들어 칠성파에서 갈라져나오게 된다. * 고우다 잇가(合田一家) - [[시모노세키]]를 비롯해 [[야마구치]] 현 전역에 세력을 갖고 있다. 후쿠오카 기타큐슈에도 세력을 가지고 있다. 전신은 카고토라구미로 초대 회장 보라 아사노스케는 시모노세키 시의원, 시의회 부의장을 역임하고 [[입헌정우회]] 출신으로 일본 국회인 중의원에 출마해서 당선됐다. 메이지-쇼와 시대의 [[정치깡패]]이자 협객으로 불렸으며 이때에도 재일교포 출신들이 부하로 많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1948년 카고토라구미 출신인 고우다 고이치가 카고토라구미를 계승하는 형태로 고우다잇가를 설립했다. 1970년대에는 반야마구치구미 동맹을 제창하고 간사이 21위원회의 주요 조직이었지만 1980년대에는 서일본 21위원회의 회원조직으로 야마구치구미와 딱히 적대하진 않았다. 5대 두목 야마나카 오오야스(이대강)이 재일 출신이었으며 현 7대 총장이 재일인 스에히로 마코토(김교환)이다. 하부 단체인 고자쿠라구미에도 재일 출신들이 많다. * 교쿠도카이(極東会)[*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여담이지만 이 조직의 산하 신세이카이(眞誠会)에는 예전에 아다치구를 근거지로 한 불량 청년부 조직 극청회(極青会)가 있었다.]] 그리고 극청회의 두목은 고작 18세 소년이었고, 그 소년의 할아버지는 야쿠자 출신 정치인, 고모부는 야쿠자 고위 간부고, 아버지는 증권사 사장, 어머니는 피아노 강사였으며, 여동생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느 한 불쌍한 여고생을 감금폭행살인한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러 20년을 선고받고 이미 출소하였다. 피해자가 겪은 일이 너무나 잔혹하여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사건이다. 범인들이 출소한 뒤 주범 한 명은 교쿠토카이와 관련이 있다고 하면서 한구레짓을 하고 다니고, 한 명은 신세이카이에 가입하여 야쿠자 생활을 했다고 한다.] - 원래 아메토쿠렌코카이를 원류로 하는 사쿠라이잇가 계열의 조직에서 활동하던 세키구치 아이지를 초대 두목으로 결성된 조직이다. 도쿄 [[신주쿠]]에 본부를 두고 [[이케부쿠로]] 일대에도 활동하는 일본 최대의 데키야계 폭력단이다. 도쿄와 간토에 세력권을 두고 우익 정치결사 활동도 하고 있으며, 2019년경 조직원은 450명에 이른다. 전 총재이자 회장이 마쓰야마 신이치(조규화)란 재일이었다. 2015년 은퇴하고 현재 6대 두목으로 다카하시 히토시가 회장으로 있다. 대만 [[흑사회]]인 사해방과 연계하고 있기도 하다. 2022년 5월 7일 은퇴상태였던 마쓰야마 신이치 총재가 향년 94세로 사망했다. * 마츠바카이(松葉会) - 전신은 세키네구미로 1936년 출범했다. [[자유민주당(일본)|자민당]]과의 연계로 세력을 불린 도쿄의 조직으로 조직원은 약 390명. 2009년 5대회장 마키노 구니야스(이춘성)의 은퇴 후 주류파와 반주류파로 대립해 후계자 갈등을 겪었다. 그 해 6대 오기노 요시로가 회장이 되었고, 2014년에 그가 총재로 물러나고 7대 회장 이토 요시마사가 회장이 되었으나 그에 반대하는 코지마 일가 5대 총장 오오츠카 시게아키가 추종세력을 이끌고 간토 세키네구미로 따로 떨어져 나갔다. 2018년 마키노 구니야스가 자연사로 사망하고 2020년 5월 오기노 요시로도 자연사 했다. * 간토 세키네구미(関東関根組) - 마츠바카이가 후계문제로 갈등을 겪자 독립해나온 조직. [[이바라키현]] 쓰치우라 시에 본부를 두고 있다. 구성원은 약 110명 정도이며, 5대 코지마 잇가 총장 오오츠카 시게아키를 두목으로 2018년에 지정폭력단으로 지정되었다. 보통 조직이 분리해나가면 전쟁이 터지는 경우가 많지만, 이면의 합의가 있었는지 간토 세키네구미는 마키노 구니야스와 오기노 요시로의 승인을 받고 독립조직으로 인정 받아 현재 마츠바카이와 평화상태에 있다. * 교큐류카이(旭琉會) - [[오키나와]] 유일의 지정폭력단으로 여러번 분열과 항쟁을 거치다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되었다. 전쟁 당시 흉폭한 사건이 많아 폭대법이 시행되는 계기가 되었다. 지정폭력단에 속하기는 하지만, 본토 야쿠자들과 여러모로 다른 면모들이 많기 때문에 똑같이 '야쿠자'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 소아이카이(双愛会) - [[치바현]] 이치하라시에 본부를 두고 간토 지역에 세력을 뻗치고 있는 지정 폭력단. 5대 두목 다카무라 아키라가 신명우란 이름의 재일출신이었다. 현 7대 두목은 시이즈카 아키라로 테라지마 일가 총장이었다. * 아즈마구미(東組) - 오사카에 본부를 둔 지정 폭력단. 각성제와 아동 포르노 판매로 유명했다. 조직원 숫자는 적지만 흉폭한 항쟁으로 소수 정예라는 이미지가 있다고 한다. 2018년에 아즈마구미 산하 세이유카이가 <야쿠자와 헌법>이라는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다. 폭대법에 시달리는 현대 야쿠자를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어 화제가 되었다. [[https://youtu.be/Ez7-yISNtI8|다큐멘터리 예고편 영상]] * 고자쿠라 잇가(小桜一家) - 큐슈 가고시마현을 기반으로 한 폭력단. 소규모 조직으로 가고시마현에 타조직의 진출을 허락하지 않지만 타 지역으로 진출도 안한다는 고자쿠라 [[먼로주의]]를 관철하고 있다. * 쿄우도카이(俠道会) - 히로시마의 소규모 조직으로 교세이카이, 신와카이 등과 동맹을 맺고 있다. * 신와카이(親和会) - [[시코쿠]] [[카가와현]]에 있는 소규모 조직으로 정상작전으로 해산된 혼다카이 계열의 조직이다. * 타이슈카이(太州会) - [[후쿠오카현]] 타가와시에 본부를 둔 지정 폭력단. 구도카이, 도진카이, 구마모토카이와 함께 사사회라는 공수동맹을 맺고 있다. * 후쿠하쿠카이(福博会) - 후쿠오카의 조직으로 조직원은 약 180명 규모이며 전신은 후쿠하쿠무츠미카이. 우메즈카이와 4대 야마구치구미 이즈구미 두목 이즈 켄지의 제언에 따라 후쿠오카의 여러 지역조직들이 뭉쳐서 탄생했으며 초대 후쿠하쿠카이 회장이자 2대 우메즈카이 두목인 우메즈 아키라 회장의 주도로 후쿠하쿠카이로 개칭하였다. 5대 야마구치구미 회장 와타나베 요시노리로부터 다이몬이 다른 사카즈키고토를 받고 친척 단체가 되었으며 지금도 큐슈 조직으로서는 예외적으로 야마구치구미와 유대가 깊다. 2대 회장인 와다 마사시로를 거쳐 3대 회장이 나가오카 토라오(김인순)이라는 재일이다. 나가오카 토라오 회장은 고령으로 2020년 6월 은퇴했으며 4대 현재 회장인 킨죠 쿠니야스(김국태) 역시 재일 출신이다. * 아사노구미(浅野組) - [[오카야마현]] 카사오카 시의 조직이다. 구성원은 약 60명, 교세이카이, 쿄우도카이,고우다잇가,신와카이 등과 함께 오사회라는 공수동맹을 맺고 있다. 현재 두목은 2015년 11월 취임한 5대 두목 나카오카 유타카. 6대 야마구치구미 부두목 다카야마 키요시가 후견인으로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