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야쿠자 (문단 편집) === 한국계 === * [[선우영빈]] * [[박춘금]] - 무일푼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고베 등지에서 고용살이, 자전거 직공, 탄광갱부, 토목 노무자 등 육체노동으로 전전하면서 일본어를 배우고 야쿠자 거물로 성장. [[http://www.saramilbo.com/sub_read.html?uid=3145§ion=sectio|일본 중의원 2번 당선]] * 이기동 - 박춘금과 아울러 상애회 등 야쿠자 거물로 성장. [[http://ko.wikipedia.org/wiki/%EC%9D%B4%EA%B8%B0%EB%8F%99_(1885%EB%85%84)|위키백과 이기동]] * [[양원석]] - 일본 이름은 야나가와 지로. 피비린내는 유혈극을 많이 일으켰다. 야마구치구미 산하 조직 중 하나인 야나가와구미 초대 보스로 잔인하고 흉폭한 것으로 유명하다. 적대조직의 업소 개업일에 100여명이 모인 곳을 훈도시만 입은 샌드위치맨으로 위장 돌입, 8명이서 피바다를 만들어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는 날은 있어도 야나가와 구미에 피비가 내리지 않는 날은 없다"는 얘기가 만들어 질 정도. 그의 일대기가 "구름을 부르며 바람을 재우며"라는 논픽션으로 1990년에 나오기도 했다. 앞서의 일화는 허영만의 들개이빨이라는 작품에서도 [[http://blog.ohmynews.com/tetsu/314069|차용되었다.]] * [[허영중]] * [[정건영]] * 강외수(다카야마 도쿠타로) - 아이즈코테츠카이 4대 회장. 1986년 아이즈코테츠카이 3대 회장 즈코시 리이치가 총재 자리로 물러나면서 4대 회장에 올라갔다. 이나가와카이 5대 회장 자리에 신병규가 앉기 전까지 재일 한국인이 일본 4대 조직의 위치인 아이즈코테츠카이같은 조직의 두목의 자리에 앉은 유일한 사례였다. 1991년 폭력단 대책법이 통과되자 야쿠자계의 대표를 자처하며 폭력단 대책법에 반대하고 나섰다. 이때 여러 TV 프로그램과 토론쇼 나온 등의 여러 활동들을 했다. 또한 한국에서도 여러 활동을 해왔다. 1953년 재일대한민국민이 한국전쟁 파병을 위해 재일한국인을 모집할 때 지원했다. 그러나 수속을 마친 후 도쿄의 민단 본부로 향했으나, 도쿄에 도착했을 때는 휴전이 이루어져 참전하지 못 했다. 이후 계속 민단에서 활동, 1980년 민단 시가 오쓰 지부 고문으로 취임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위한 모금에 참여해 1989년 대한민국 체육부 장관 표창을 수여받았다. 이후 외수한일교류장회를 설립해 한국내 일본 미망인 26명의 자립을 돕는 등의 자선 활동으로 대통령 표창을 수여받았다. 야쿠자 은퇴 후에는 시가 한국상공회의소 상임고문, 민단본부 중앙위원을 역임했고, 2003년 국민 훈장 동백장을 수여 받았다. 2003년 6월 15일 간암으로 75세에 사망했다. * 강의행(다카야마 요시유키) - 아이즈코테츠카이 4대 회장 강외수의 아들로 현재 야마구치 구미에서 활동하고 있다. * 이춘성(마키노 쿠니야스) - 마츠바카이 5대 회장. 2009년 은퇴했는데 후계자 문제가 불거져서 마츠바카이가 주류파와 비주류파로 분열돼 대립했다. 6대 회장 오기노 요시로를 세우고 분열을 수습했다. 다만 7대 회장 자리를 두고 또 갈등이 생겨나 반대파가 간토 세키네구미로 따로 떨어져 나갔다. 이후 2018년 노환으로 사망했다. * 조규화(마츠야마 신이치) - 교쿠도카이 5대 회장. 전 총재. 2022년 5월 7일 향년 94세로 사망했다. * 신병규(기요타 지로) - 이나가와카이 5대 회장. 현 총재. * 김인순(나카오카 토라오) - 3대 후쿠하쿠카이 두목. 2020년 6월 고령으로 은퇴했다. * 김교환(스에히로 마코토) - 7대 고우다잇가 총장. 2009년 10월 취임했다. 2020년 6월에 교세이카이 회장 아라세 스스무, 6대 야마구치구미 와카가시라 보좌 안도 미키와 의형제를 맺었다. * 강홍문(하시모토 히로후미) - 3대 야마구치 구미 와카가시라 야마모토 켄이치에게 잔을 받아 야마구치 구미에 합류했다. 본래 야마켄구미의 3대 두목 대행 자리에 있었으나, 고도카이계로 권력이 넘어가는 움직임이 보이자 자신의 조직인 극심연합회(쿄쿠신렌코카이)를 분리해 야마구치 구미 직계 조직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후 6대 야마구치 구미에 2008년 필두 와카가시라 보좌 자리에 취임하고 2012년 4월 총괄위원장 직책에 올랐으며 미국에서 12월에 그의 미국 재무부가 미국내 자산을 동결당했다. 조직의 3인자였으나, 2015년 5대 두목 와타노베 요시노리의 무덤 참배 이후 갑자기 건강상의 문제를 핑계 잠적한 죄로 사제 직책으로 강등되었고 자신의 조직인 극심연합회를 해산하고 은퇴하게 된다. 여담으로 [[시마다 신스케]]의 야쿠자 친분 중 한명이었고 이때문에 시마다 신스케가 은퇴하는 이유가 되었다. * 김정기(오다 요시노리) - 재일교포 3세로 2017년 고베 야마구치 구미에 불만을 품고, 분열해 임협 야마구치 구미를 세운다. 이후 조직의 이름을 키즈나카이로 변경한다. pmc를 설립하겠다고 말하는 등 두 야마구치와 차별성을 두려고 노력하고 있다. * 김신일(긴 신이치) - 폭주족 도쿄연합 멤버였으며 야마구치구미 3차 단체인 이치렌카이의 총장이었으나 한국에서 유학온 기독교인 아내를 만나 은퇴하고 목사가 되었다.[[https://www.christiantoday.co.jp/articles/26858/20190524/ex-yakuza-theological-student-2.htm|#]] * --[[김재훈(종합격투기)|김재훈]]-- - 본인이 야쿠자 출신 격투기 선수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신뢰도는 떨어진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