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야쿠자 (문단 편집) === 정치권과의 유착 === 야쿠자 조직 가운데 아예 우익 정치결사를 표방하고 있는 조직들도 많으며 뿌리부터가 우익단체에서 시작한 조직들도 많다. 이를 [[일본의 우경화#s-3.1.3.|임협계 우익단체]]라 하는데 많은 가선우익이나 전통적인 보수우익 단체들이 야쿠자와 연관되어있다. 모든 야쿠자는 우익인데 애초에 [[사카즈키고토]]부터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에게 맹세하는 의식이고 [[천황]]제에 반대하는 야쿠자는 없다. 이런 현상은 이미 야쿠자들과 정계가 연계되기 시작한 1800년대 말부터 있었지만 특히 [[아시아주의]]를 제창한 도야마 미츠루(頭山満)의 현양사([[겐요샤]]), [[흑룡회]] 등을 보듯이 그 뿌리는 유서깊다.[* 다만 막부시기의 야쿠자들은 당시 권력의 중심이었던 막부에 기생해서 돈을 벌고 있었기때문에, 많은 조직들이 친막성향을 보여, 존왕양이운동 당시에는 천황을 옹위하는 세력들과 적대관계를 형성하고있었다. 이러한 경향이 뒤바뀐건 시미즈노 지로쵸라는 악명높은 야쿠자가 존왕양이파를 지원해서 막부를 옹호하던 야쿠자조직들을 정리하고 큰 세력을 얻은 이후이다. 즉 본질적으로 야쿠자 조직들은 천황제에 찬성한다기보다는 천황제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일본의 중심권력층을 지지한다고 보는게 타당하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고 미군정을 거치면서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이 활성화되는데, 특히 1960~70년대 [[안보투쟁]] 시대가 되면 좌파계열 노조와 학생운동권이 일본 사회를 뒤흔들 정도의 막강한 세력으로 성장한다.[* 당시 [[일본 신좌파]]중 일부는 안보투쟁 패배 이후 대중들한테서 고립되자,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외골수로 극단적인 이념에만 열광하는 테러조직으로 변질되버렸다. [[요도호 공중 납치 사건]]과 [[아사마 산장 사건]]으로 전 일본을 충격에 빠트린 [[적군파]]가 대표적이다.] 이러자 일본의 보수우익 세력들은 이들을 분쇄하기 위해 야쿠자들을 적극적으로 [[정치깡패]]로 활용했다.[* 이미 미군정이 소위 역코스 정책을 채택한 1947년부터 미국의 묵인아래 대기업들은 노조탄압과 '레드 퍼지'에 야쿠자들을 동원하고 있었다. [[마피아]]도 이탈리아와 미국 모두에서 지역 유지나 자본가들이 소작쟁의나 노동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용역깡패 노릇을 하면서 큰 역사가 있다.] 오늘날 일본 최대의 야쿠자인 야마구치구미 또한 고베항의 항만노조를 견제하려던 [[자유민주당(일본)|자민당]]의 실력자 고노 이치로의 후원하에 급성장하였으며 [[고다마 요시오]], 다나카 세이겐 같은 인물들이 정치권과 야쿠자를 연결하던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한국의 군사정권시기 동아시아 [[반공]] 동맹을 맺으려는 미국의 후원과 한일 우익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재일교포 야쿠자들이 우익활동을 하면서 [[조총련]]을 감시, 견제하고 한국 정부에서 훈장을 받은 사례도 있다. [[양원석]]이나 [[정건영]]의 사례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이렇게 정치권, 특히 [[자유민주당(일본)|자민당]]과 유착한 야쿠자들은 그 대가로 많은 이권과 특혜를 받았고 범죄를 저질러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등 야쿠자 세력이 일본으로 뻗어나가는데 큰 일조를 했다. 하지만 이들이 저지르는 행동이 너무 과격해지고 [[이토 잇쵸]] [[나가사키시]] 시장 총격사건을 보듯이 범죄로 문제가 많아지자 일본 정치권은 야쿠자를 규제할려고 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그 결과물이 폭력단 대책법(폭대법)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