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야포병 (문단 편집) == 약했던 이유 == 일본군의 야포병은 매우 약했다. 따라서 할힌골 전투에서 소련 육군 포병과의 교전에서 패배했으며 2차 대전 중 미군에게도 일방적으로 패배했다. 일본 육군의 야포병에서는 [[러일전쟁]] 이후 [[할힌골 전투]]까지 훈련, 투자, 발전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이는 일본 육군이 러일전쟁 후 군사 강대국과의 전투를 치러본 적이 없다는 점이 컸다. 유럽 국가들은 1차 대전을 겪으면서 [[참호전]]에서 포격을 통한 진로 개척에 크게 의존했다. 거기다 참호를 벗어나면 기관총 세례로 인해 [[관측반]]을 보내도 끔살당한다. 따라서 주요 강대국들은 관측이나 시험 사격 없이 좌표만으로 정확하게 사격할 수 있도록 실사격 훈련을 했다. 시험 사격을 한 다음에 제원을 수정해서 일제사격을 한다면 적 포병의 대포병 사격에 당할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군에서는 시험 사격을 한 다음에 제원을 수정한 뒤 사령부의 지시에 맞춰 일제사격을 하는 것이 야포병의 교리였다. 따라서 충분한 실사격을 해보기도 전에 시험 사격으로 위치가 노출되어 무력화되는 일이 잦았다. 야포병의 요청에 따른 항공 관측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반면 미군은 관측기를 동원해 일본군 야포병에게 화력을 쏟아부었다. 이 때문에 일본군들은 관측기의 성능에 대해 편집증적인 공포심을 갖게 되어 관측기가 뜰 때는 시끄러워서 발각될 지 모른다 싶어서 말 한마디 못 하게 하고, 그런 상황에서 아기가 울면 아기를 죽이기도 했다는 일화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