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야훼/논란 (문단 편집) == 성경에 나오는 야훼의 모습에 대한 일부 진보 신학의 교리적 견해[* '일부' 라고 한 까닭은 [[예수쟁이|기독교 내부에서조차 강력한 비판을 받고 있는]] [[근본주의]]에서는 무조건 문자적으로 해석하기 때문. 이러한 관점을 취하고 있는 신학은 민중신학 및 해방신학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에큐메니컬 신학은 물론이고,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신학도 포함된다. '하느님 나라 신학'을 설파하는 [[숭실대학교]] 교목실장 김회권 교수의 관점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관점은 노선이 다양하여 하나로 묶기가 곤란하다. 진보적인 신학 노선을 취하는 경우도 있고,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과 같이 아주 급진적으로 나가는 경우도 물론 있다. 그러나 보수적인 신학 노선을 취하는 경우도 많아서 개신교계에서는 [[복음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경우에도 이러한 관점을 취하는 경우도 있고, 가톨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복음주의 신학 입장을 취하고 있는 김회권 교수가 [[신자유주의]]=[[사탄]]이라는 등식을 세워 놓고 저서나 설교, 채플, 심지어 수업시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리에서 신자유주의를 가루가 되도록 까는 것이나, 역시 보수적인 편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신자유주의]] 체제와 [[IMF]]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표현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1. 고난받던 히브리인의 개념을 특정한 민족이 아니라 그 지방에서 떠돌이 유목민이던 가난하고 힘없고 박해받던 사회계층이다.[* 히브리의 어원을 하비르(혹은 아비르)와 동일시 하는데 역사학자들도 대부분 하비르와 히브리와 동일 개념이라고 말해도 부인 못할 정도로 많이 닮아있음을 인정한다] 즉, 야훼는 이런 가난하고 힘없고 박해받던 사회 계층의 구원자, 해방자이다.[* 여기에 대해서 보충 설명을 덧붙이자면 다음과 같다. 에큐메니컬 진영의 들꽃향린교회 김경호 목사는 그의 저서 '야훼 신앙의 맥' 에서 다른 신들은 가난하고 힘없고 박해받는 민중들을 핍박하고 착취하는 지배 계층의 온갖 만행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짓 신이지만 야훼는 그렇게 핍박받고 착취당하는 민중들의 편에 선 신이라 주장했다. 한편 에반젤리컬 진영의 김회권 교수는 좀 더 구체적으로, 그런 불의한 체제 질서를 뒤집어 엎고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세상, 곧 하느님(하나님) 나라를 열어 주는 신이라는 뜻에서 야훼를 '체제 전복적인 창조의 하느님' 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야훼의 이러한 면모에 대해 반감을 가진 비종교인들은 예리코 성의 젖먹이 아기까지 다 죽이라는 야훼의 명령에 대하여 젖먹이 아기도 힘 없기는 마찬가지라고 지적을 하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가난하고 힘 없다는 뜻은 일종의 계급적 개념으로써 착취당하고 핍박받는 민중들을 뜻하는 것이다.[* 특히 예리코 성과 같은 가나안의 체제는 김회권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낡은 가죽부대'로써, 민중들을 핍박하고 착취하는 불의한 체제이다.] 히브리인들이 가나안의 여러 민족들에 대하여 잔인하고 살벌해 보이기까지 하는 정복 전쟁을 수행한 것은 낡은 가죽부대를 터트리기 위한 사회 운동이다.[* 2012년 3월 27일 [[숭실대학교]] [[채플]] 시간에 김회권 교수는 판관기(사사기) 제 4장을 주제로 설교하면서 '철병거' 로 대표되는 가나안 체제는 곡식, 곧 재물을 독점하는 불의한 체제였고, 그런 가나안 체제에 맞서 싸우는 히브리인들의 투쟁은 그런 체제를 때려 부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구약 율법서를 보면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경제적 공평과 정의를 실현하라는 내용이 많이 나와 있다. 그냥 자발적으로 실천하라는 것이 아니고 강제로 제도화하여 말이다. [[십일조]]를 거둬서 경제적 능력이 없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나눠 주라는 것이라든지, 농산물을 수확할 때 조금씩 남겨 두어서 누구든지 가져다 먹을 수 있게 하라든지 하라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예 50년마다 모든 사람에게 토지를 공평하게 나누어 주도록 함으로써 토지 가치의 공유와 생산 수단의 공평한 분배를 도모하고자 한 희년법과 같이 급진적인 제도까지 언급되어 있다. 또한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사회가 본격 [[국가 막장 테크]]를 탈 때 권력자와 부자들의 핍박과 착취 행위를 비판하면서 특별히 이러한 사회적 약자 보호, 경제적 정의 실현과 관련된 율법을 제대로 지키라고, 그러지 않으면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생각이니|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심판이 내릴 것이라고 부르짖고 있기도 하다. 대표적인 인물이 [[아모스]], [[이사야]], [[미카]], [[예레미야]], [[에제키엘]]. 2. 오직 야훼뿐(Mono Yawhism)이란 그 히브리인들의 사상을 다른 종교(우상)과 대결이라는 시각보다는 신격화된 인간의 지배에 대한 절대 부정이다.[* 그 당시 이집트의 신의 개념과 신격화된 왕의 개념을 보면 된다.] 또한 가나안의 사회는 [[북한|윗동네 막장 왕국]]의 [[주체교]]를 생각하면 되며, 당시 가나안에서 섬기던 이방 신들은 신격화된 인간의 지배를 정당화해 주는 장치였다. 가나안의 신들은 지배 계급의 옹호자 노릇을 하고 있었다. 가난하고 힘 없는 민중들을 핍박하고 착취하는 불의한 사회 구조, 체제를 '신의 뜻이다!' 라고 선포함으로써 민중들이 찍소리 못 하고 이런 핍박과 착취 체제를 받아들이고 순종하도록 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였던 것이다. 이러한 체제를 뒤집어 엎고, 모든 사람이 야훼 앞에서 평등하며, 소중하고 존엄하게 대접받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라는 것이 히브리인들에게 내린 야훼의 명령이다. 3. [[히브리어]] 샬롬(shalom)의 평화를 싸움이 없는 소극적인 상태가 아닌 평화를 위협하는 세력, 곧 정의를 무너뜨리는 세력과 적극적으로 싸우면서 찾는 역동적인 상태다. 여기서 '평화' 라는 것은 단순히 무력 충돌과 살육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정의가 구현되어 모든 사람이 야훼 앞에서 평등하게 더불어 살아가는 상태를 뜻한다. 히브리의 평화 개념은 반드시 정의를 동반한다. 정의의 기초 위에 평화가 설 수 있다는 이러한 사상은 현대 가톨릭에까지 이어 내려오고 있다. 즉 민중을 핍박하고 착취하는 불의한 체제는 겉으로 보기에 아무리 무력 충돌이 없고 평온해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평화로운 것이 아니며, 그런 불의한 체제가 뒤집어지고 정의로운 체제가 들어서야 그것이 진정한 평화다. 가령 출애굽 사건의 경우 단순히 야훼를 믿는 민족이 우상을 숭배하던 이집트인들을 물리치는 개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신이 억눌리고 착취당하는 히브리인들을 압제자인 이집트인들에게서 정의의 힘으로 해방시키는 역사인 것이다. 즉 민족과 민족의 대결이 아니라 가난하고 힘없는 자의 편에서 서는 신의 역사인 것이다.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이런 체제를 완전히 뒤집어엎고 공평과 정의(사무엘기 하권 8장 15절)의 기초 위에 생명과 평화(로마서 8장 6절)가 구현된 새로운 체제를 건설해야 한다. 구약에 나오는, 현대적 관점에서 보기에 잔인하고 살벌해 보이는 정복 전쟁은 사실 이러한 사회, 정치적 변혁 운동의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당시의 신들은 민족 신의 개념이어서, (모압인이었지만 야훼 신앙을 받아들이고 보아즈와 결혼한) 룻과 같은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면 이민족들이 야훼를 믿게 된 경우는 많지 않았으므로 히브리 공동체를 통해 구현되어야 할 야훼의 "공평과 정의에 입각한 생명과 평화의 대안적 세계질서"가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 아예 아무도 살려 두지 말고 다 죽여 버리라는 다소 극단적이고 살벌한 명령을 야훼가 내리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