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양녕대군 (문단 편집) === 역대 종주(宗主) === 양녕대군의 종가는 차남 함양군 이포의 가계로 이어진다. 장남 [[순성군|순성군 이개]]가 [[참척|양녕대군보다 먼저 사망하였기 때문이다.]] 예법대로라면, 순성군이 일찍 세상을 뜬 경우, 그의 장남(오천군)이 종가를 물려받는 것이 맞다. 그러나 몇 가지 사정이 있었다. 양녕대군이 순성군보다 불과 5일 뒤에 세상을 떠나면서, 오천군의 입장에서는 조부-부친상을 한꺼번에 치러야 했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또한 함양군이 순성군 대신 양녕대군을 모시고 살았는데, 부양한 아들이 상주가 되는 것이 당시에는 용인되었다. 따라서 자연스레 종가도 함양군의 후손들이 물려받았다.[*A 출처: [[http://www.sejongki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722|〈양녕대군가, 지덕사 600년 종통 잇는 봉사손의 50가지 인생 풀 스토리〉, 《세종대왕신문》 2023.02.13.]]] 성종 대를 거치며 성리학적 예법이 완전히 자리잡자, 순성군의 후손들은 자신들이 장자 계통이니 종손 자격을 회복시켜줄 것을 연산군에게 건의하였다. 그러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후 9대손 이형까지 종가 직계가 내려오다가, 이형이 후사가 없어 양녕대군의 3남 [[서산군|서산군 이혜]]의 8대손인 이인망이 봉사손으로 입적되었다. 그런데 이형과 항렬이 같아 문제가 되었고, 이때 순성군의 후손으로 다시 종통을 세우자는 논의가 등장하였다. 그러나 당시 임금이었던 [[숙종(조선)|숙종]]은 이인망을 파양하되, 이인망의 아들 이한보를 이형의 [[양자(가족)|양자]]로 입적하게 하여 항렬 문제를 정리하였고, 이후 이한보의 후손들로 지금까지 종가 직계가 이어진다.[*A] 따라서 현재 양녕대군의 종가는 혈통상으로 서산군의 후손들이다. * 1. 양녕대군 이제(讓寧大君 李禔) * 2. 함양군 이포(咸陽君 李𧦞) * 3. 부원군 이진(富原君 李鎭) * 4. 구산군 이계남(龜山君 李繼男) * 5. 이의손(李義孫) * 6. 이상(李祥) * 7. 이팽년(李彭年) * 8. 이일증(李一曾) * 9. 이수겸(李守謙) * 10. 이형(李炯) * 11. 이한보(李漢輔)[* 양녕대군의 3남 서산군의 9대손으로, 10대 종주 이형과는 혈연상 19촌 숙질간이다.] * 12. 이제형(李齊衡) * 13. 이정윤(李靖胤) * 14. 이지광(李趾光) * 15. 이원규(李遠揆) * 16. 이해선(李海善) * 17. 이승보(李承輔)[* 고종 시기 경복궁 영건도감 제조와 이조판서를 역임하였다.] * 18. 이근수(李根秀)[* 사간원 대사간을 역임하였으며, 이승만이 유년 시절에 수학했던 도동서당의 주인이었다. 다만, 항렬은 이승만보다 한 항렬 낮아서, 33촌 조카 뻘이 된다.] * 19. 이병주(李丙胄) * 20. 이재기(李在基) * 21. 이황(李鍠) * 22. 이정원 - 현재 봉사손 [[분류:양녕대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