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양무호 (문단 편집) === 운용 비사 === [youtube(ZM3yDZ23fwE)] ▲인천시에서 방영한 양무호와 [[광제호]]에 대한 짤막한 비화 거금만 날리고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들여온 양무호는 한번도 [[한민족]]의 바다를 지키는 군함으로 쓰인 적이 없었다. 애초에 이 배는 [[대영제국]]의 민간회사에서 석탄운반선으로 사용하던 팰러스(Pallas)호를 슬슬 퇴역시기가 되어서 일본에게 팔아넘기고 대한제국이 군함이 필요하다고 해서 급하게 무장을 올린 것이라 제대로 된 군함이 아니었다. 게다가 군함 도입 이전 설립한 해군사관학교도 무산되어 정작 군함을 다룰 사람이 많지 않았다. 앞서 말한 대로 양무호는 움직이는데 40톤의 석탄이 필요하고 고장이 잦아 유지비용이 막대하게 들어 임무는커녕 인천항에 정박만 시키는 날이 많았다. 또한 무장도 고작 80mm 함포 4개, 5mm 기관총 2개가 전부였는데 당시 양무호와 비슷한 크기의 군함들을 살펴보면 양무호의 무장은 굉장히 빈약한 편이었다. 군기(軍器)와 포탄들은 '''적당히''' 배치하도록 했고 여기에 한술 더 떠서 포탄들도 대부분이 공격용인 고폭탄, 철갑탄이 아닌 '''예포용 포탄'''이었다. 그 와중에 함내식당은 서양식 고급 장식품들로 꾸미고 주방에는 서양식 고급 조리기구들을 배치했으며 침실은 서양식 고급 장식품들로 장식해 놓았기 때문에 사실상 예포 쏘고, 함내식당에서 고급 서양 요리 먹고, 서양 장식품들로 화려하게 꾸며진 침실에서 잠 자는 행사용 배였다. 그나마 [[신순성]]이라고 항해술을 배워온 사관이 있었고 이 사람이 양무호의 함장으로 내정되긴 했으나 실질적으로 양무호를 몰고 제대로 된 임무를 할 기회가 없었다. 이 신순성이라는 군인은 이후 일본에서 들여온 군함 광제호에 기용되었다가 나중에는 상선 항해사로 일하게 된다. [[러일전쟁]] 발발 후 제물포 해전 당시 인천에 정박해 있었지만 별다른 개입은 하지 않았다. 결국 제 구실 한 번 못하고 1907년 일제에 의해 무장해제된 후 선원실습선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러일전쟁]] 때 일본이 이 배를 징발해 지원함으로만 썼는데, 잠시 신형 엔진으로 교체해 쓰다가 전쟁이 끝난 후 기술유출을 염려해 다시 원엔진인 구형엔진으로 교체해 대한제국에 돌려주었다고 한다. 한일합방을 앞둔 1909년에는 일본 하라다상점(原田商店)의 계열 해운사인 하라다 기선에 4만 2천 엔에 매각되었고[* 이후 1933년 11월 하라다 기선은 大阪商船三井船舶 주식회사에 합병되었다.] 1913년에는 하라다 기선에서 팔마재벌(八馬財閥)의 팔마상점(八馬商店)에 매각되었다. 당시 팔마상점 선박부는 양무호를 포함해 중고상선 11척을 차례로 구입해 선대를 증강중이었다. 이후로 양무호는 화물선으로 소소히 쓰이다가 제1차 세계대전 중 1916년 9월 13일에 상하이를 출항하여 항해 중 해난사고에 의해 제주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싱가포르로 이동 중에 침몰했다는 기록도 있는데 제주도 근해에서 침몰했다는 일본 기록이 남아있다. 이 기록이 사실이면 제주도 근해에서 양무호를 찾아 인양하는 것도 언젠가는 가능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