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양봉(삼국지) (문단 편집) === 황제 탈출 === 7월, 곽사가 거기장군에, [[양정(삼국지)|양정]]이 후장군에, 양봉이 흥의장군(興義將軍)에, [[동승(삼국지)|동승]]이 안집장군(安集將軍)에 임명되어 헌제를 호위하였다. 장제는 표기장군이 되어 먼저 섬현(陝縣)으로 돌아갔다. 8월, 경조윤 신풍현(新豊縣)을 지나다가 곽사가 헌제를 우부풍 미현(郿縣)으로 빼돌리려 하자 양봉이 양정, 동승과 함께 이를 저지하였고 곽사가 신변에 위험을 느끼고 이탈하였다. 10월, 곽사의 부하 [[오습]], 하육(夏育), 고석(高碩)이 불을 지르며 다시 헌제를 데려가려 하는 것도 격파하고[* 《[[자치통감]]》61권 한기 제53 헌제 흥평 2년.] 홍농군 화음현(華陰縣)에 이르렀다. 그곳에 주둔하던 영집장군(寧輯將軍) [[단외]]가 여러 물품을 제공하며 헌제를 맞이하려 하였는데 단외는 양정과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탓에 혹시 변고가 생길지 몰라 [[말(동물)|말]]에서 내리지 않고 읍했고, 양정과 친했던 [[시중]](侍中) [[충집]]이 이를 빌미로 ‘단외가 역심을 품었다’고 모함하였다. 태위 [[양표]], 사도 [[조온]], 시중 [[유애]](劉艾), 상서(尙書) [[양소]](梁紹) 등이 단외의 마음을 보증했지만 [[동승(삼국지)|동승]]과 양정까지 '곽사군이 단외의 진영에 들어갔다'고 [[거짓말]]하는 바람에 헌제는 노숙했고 양정, 양봉, [[동승(삼국지)|동승]]은 십여 일간 단외를 공격하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단외는 헌제에 대한 지원을 계속하며 다른 뜻이 없었다는 것을 보이니 전투는 끝났다. 한편 이각과 곽사는 헌제를 보낸것을 후회하고 단외를 구한다는 핑계로 헌제를 쫒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