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양봉(삼국지) (문단 편집) === 처절한 도주 === 11월, 양정은 [[형주]]로 도망쳤고 황제의 어가는 홍농군 홍농현에 도착했으나, 서로 [[인질]]을 교환하고 [[헌제]]를 홍농현에 두자는 [[장제(후한 군벌)|장제]]의 제안을 거부하고 더 동쪽으로 향하였다.[* 《헌제춘추》 ; 《[[태평어람]]》92권 황왕부 제17 효헌황제에서 인용] 헌제 일행은 장제가 이각, 곽사와 손잡고 공격해오자 많은 사람이 죽고 치중을 잃는 가운데 간신히 조양간(曹陽澗)에 닿았다. 황제 일행은 하동군에 있던 옛 [[백파적]] [[이락]], [[한섬(삼국지)|한섬]], [[호재]], 그리고 남흉노의 [[거비]](去卑)[* 《후한서》동탁전, 《삼국지》무제기, 원굉의 《후한기》에서는 우현왕. 《후한서》헌제기에서는 좌현왕]에 구원을 요청해 적군에 대항했다. 이들은 추격군 수천 명을 참수하며 쫒아내기도 했으나 격전 끝에 거의 다 죽고 섣달에는 섬현까지 내몰렸다. 이렇게 되자 황제의 호위군인 호분(虎賁)과 우림(羽林)은 백 명도 남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밤에 몰래 십여 장(丈) [[높이]]의 [[강]]안 [[절벽]]을 내려가서 [[황하]]를 건너기로 했는데 사람들이 기어오르거나 뛰어내려 다치거나 죽고, 살아남은 자들이 배에 오르려고 하니 동승과 이락이 매달린 [[손가락]]들을 내리치며 배를 출발시켰다. 손가락이 잘린자들은 떨어져 동사, [[익사]]했고 잘린 손가락이 여기저기 널려 참혹했다. 이렇게 계속 사람들이 죽어나가 수십 명밖에 남지 않았지만 마침내 하동군 대양현(大陽縣)을 거쳐 안읍현(安邑縣)에 당도하였다. 하내태수 [[장양]]이 [[쌀]]을, 하동태수 [[왕읍]](王邑)이 [[비단]]을 공급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