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양봉(삼국지) (문단 편집) == [[삼국지연의|연의]] == 제13회에 [[황보력]]을 참수하려던 [[이각]]을 말리는 것으로 첫 등장하는데 직위는 기도위다. 이각의 전횡과 푸대접에 송과와 함께 내부에서 이각을 기습하려 하지만 일이 누설되어 송과는 잡혀 죽고 자신은 패하여 종남산(終南山)으로 도주한다. 이후 [[장제(후한 군벌)|장제]]의 중재로 [[헌제]]는 홍농으로 가게 되는데 양봉은 이를 보호하려고 천여 명으로 달려간다. 거가가 화음현에 이르러 [[곽사]]가 헌제를 도로 데려가기 위해 추격해온 순간 양봉이 도착하고 휘하의 [[서황]]이 곽사의 장수 [[최용]](崔勇)을 고꾸라트리고 양봉은 곽사군을 물리친다. 이튿날, 곽사가 또 다가와 이들을 포위하면서 위기에 빠진 순간 [[동승(삼국지)|동승]]이 나타나 구해준다. 이후 이번엔 곽사가 이각과 연합해 몰려오니 동승과 함께 동간(東澗)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지만 섬북까지 쫓겨 옛 백파적 [[한섬(삼국지)|한섬]], [[이락]], [[호재]]에게 구원을 청한다. 이락은 위양(渭陽)에서 대패하고 호재는 전사하며 이 와중에 어가는 간신히 [[황하]]를 건너 안읍현에 도달한다. 동승과 양봉이 헌제를 모시고 [[낙양]]으로의 환도에 나서는 동안 이락은 따르지 않고 남아서는 이각, 곽사와 협동해 헌제를 협박하려 한다. 동승,양봉, 한섬이 이를 알고는 속히 기관(箕關)으로 향하고 이락도 이각·곽사를 기다리지 않고 진군한다. 제14회, 양봉이 서황을 출마시켜 이락을 쓰러트린다. 헌제가 낙양에 이르러 [[조조]]를 불러들이고, 조조는 이각과 곽사를 크게 깨트린다. 양봉과 한섬은 권력을 쥔 조조를 염려해 대량(大梁)으로 나가지만, 조조가 [[허도]]로의 천도를 행하자 양봉과 한섬이 그 길목을 가로막는다. [[허저]]와 50여 합을 겨뤄도 끄떡 않던 서황은 친구 [[만총]]의 권유에 조조에게로 귀순한다. 사실 정사에서의 서황은 양봉이 격파된 후 조조에게 귀순한다. 양봉이 1천 명의 [[기병]]으로 이를 추격하는데 조조의 복병에 당하고 한섬도 합세하지만 패배하여 둘은 [[원술]]에게로 도망간다. 제17회, 원술이 20여만 명을 동원해 일곱 길을 따라 [[여포]]가 있는 [[서주]]로 진공한다. 양봉은 제7로군을 맡아 준산(浚山)으로 전진한다. 한섬은 제6로군이다. [[진등]]은 [[한나라]]로 귀환하고 싶어하는 한섬과 양봉의 마음을 이용한다. 한섬은 진등의 설득에 넘어가 내통하고 양봉에게도 전달한다. 서주로 곧장 향하던 [[장훈(삼국지)|장훈]]의 제1로군을 여포·한섬·양봉이 협공해 무찌른다. 뒤이어 오던 칠로도구응사(七路都救應使) [[기령]]도 쳐부순다. 여포는 한섬을 기도목(沂都牧)으로, 양봉을 낭야목(瑯琊牧)으로 천거하고는 서주에 두려는데 [[진규]]의 '두 사람이 산동에 웅거하면 1년 내에 산동의 성곽이 몽땅 여포에 속할 것'이란 말에 둘을 기도와 낭야에 있게 했다. 사실 진규의 본심은 둘이 여포에게 협조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에 여포를 속인것이다. 이후 둘은 약탈을 벌이다 [[유비]]가 마련한 술자리에 가서 [[관우]]와 [[장비]]에게 피살된다. 그 [[머리]]는 수춘 전투에 앞서 유비가 조조에게 헌상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