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양수청 (문단 편집) == [[태평천국 운동]]의 시작 == 배상제회가 [[태평천국]]으로 커가는 동안 양수청의 발언권은 커져갔지만 아직까지는 절대적이지 않았다. 양수청이 천부하범을 시전하자 비슷한 시기에 [[소조귀]]는 '''천형하범'''(天兄下犯)을 시전했는데 이는 [[예수]]가 자신의 몸에 [[빙의]]했다는 것이었다. 파편적으로 발견된 태평천국의 교리서 상으로는 소조귀가 양수청보다는 권력이 조금 더 높아서 둘은 협력하면서 동시에 상호 견제도 하는 관계였는데 차츰차츰 [[홍수전]]과 [[풍운산]]의 권력은 작아져 갔다. 그리고 이러한 국면이 급격히 바뀌는 계기는 바로 [[태평천국의 난]]의 시작이었다. 1851년 1월 1일, 근거지로 처들어온 청군을 무찔렀는데 양수청은 좌군을 이끌면서 나름 공을 세웠다. 반란은 일련의 과정들을 거쳐서 영안(永安)을 향했는데 양수청은 이동하는 군의 중앙을 맡아서 지휘했고 영안을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당연히 청나라는 영안을 공격했는데 이 때 성 외곽의 전투에서 [[소조귀]]가 중상을 입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이 부상을 계기로 소조귀의 천형하범이 끊어지는데 이것을 계기로 천부하범을 계속하던 양수청에게로 권력의 추가 쏠리기 시작했다. 1851년 12월 17일, [[홍수전]]은 소조귀의 상태에 대해서는 언급없이 각 왕들을 임명했는데 양수청은 동왕(東王)으로 봉해지고, 구천세(九千歲)를 받았으며 홍수전을 제외한 왕들의 지휘권을 쥐어주니 양수청은 실질적 1인자가 됐다. 또한 양수청은 천부하범을 통해서[* 실제로는 첩보망을 사용한 것으로 추측.] 영안성 내에서 주석능(周錫能)이라는 배신자를 잡아내는 등 절대적인 자리에 올랐고 실질적인 [[성령]]으로 여겨지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