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양양(A) (문단 편집) == 선수 경력 == '''쇼트트랙 역사상 최고의 여자선수로 불리는 전설적인 선수다.''' 1997년 [[전이경]]과의 공동으로 세계선수권 우승을 한 이후 2003년 최은경에게 저지당할 때까지 '''세계선수권 6연패(1997-2002)'''를 했다. 이는 [[빅토르 안]]의 6회 우승과 타이기록이며 연속우승으로는 역대 최다 기록이다. 양양(A)가 올림픽+세계선수권에서 획득한 메달은 총 55개로(금메달 34개/은메달 15개/동메달 6개) '''남녀통합 역대 최다 (금)메달리스트'''다.[* 현재 [[빅토르 안]]과 메달수 (55개)와 금메달수 (34개) 타이를 이루고 있다. 빅토르 안이 세계선수권이나 올림픽 (금)메달 하나를 더 추가하면 이 기록이 깨질 수 있었으나 빅토르 안이 2019-20시즌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하면서 무산되었다.] 500m부터 3000m 슈퍼파이널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목에서 최강의 모습을 보여준 올라운더였다. 전성기 시절엔 아웃코스를 이용하여 한번에 선두로 치고나가는 화려한 플레이를 주로 선보였으나 복귀이후엔 상대적인 체력열세를 노련하고 탁월한 경기운영으로 적절하게 커버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한 예로 전성기였던 나가노와 솔트레이크에선 주로 뒷쪽에 있다가 후반부에 한번에 스피드를 내서 치고나가는 플레이 위주였던 반면, 복귀이후인 토리노에선 초반부터 선두권을 유지하며 적절한 체력안배와 견제위주의 플레이가 많았다.] 실력과 세계선수권에서의 압도적 업적에 비하여 올림픽 메달이 상대적으로 적은데(금2/은2/동1) [[전명규]] 감독이 지도하던 [[대한민국]] 대표팀의 인해전술식 집중 견제작전 때문에 매번 올림픽에서 아쉬운 결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1997년 이후 [[전이경]]과의 대결에서 줄곧 앞섰으나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는 한국팀의 단체 견제를 막아줄 수 있는 동료 없이 혼자 헤쳐나가는게 지나친 부담감으로 컨디션 난조를 보였고, 라이벌 전이경이 중요한 순간에 강한 모습을 보여서 개인전에선 빈손으로 돌아갔고 계주 은메달에 그쳤다. 나가노 올림픽의 충격으로 은퇴하려고도 생각했다고 하나 마음을 다잡고 복귀하여 4년 간 세계 여자 쇼트트랙을 평정했다. 전이경은 올림픽에서만 승리하고 나머지 세계선수권과 아시안게임 등에서는 양양을 별로 이기지 못했다.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는 500m와 1000m에서 금메달을 땄으나 1500m에서 [[최은경(쇼트트랙)|최은경]]의 견제와 [[고기현]]의 깜짝 등장으로 메달은 따내지 못했다. 2003 세계선수권에서 7연패가 무산된 뒤 2003-04 시즌을 스킵하면서 휴식을 취했고, 복귀한 2004-05 시즌에는 나이에 따른 체력저하와 [[진선유]]라는 괴물의 등장으로 장거리보다는 단거리에 집중했다. 2005-06 시즌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만 30세의 나이로 1000m 동메달을 따고 은퇴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