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양원왕 (문단 편집) == 평가 == 선대 [[고국원왕]]에 못지 않게 난세를 보낸 [[군주]]. 내부에서는 추군과 세군의 왕위 계승 [[전쟁]], 간주리의 반란 등 [[내란]]이 연달아 터지면서 [[정치]]가 어지러워졌고 외부에서는 [[돌궐]], [[백제]]-[[신라]] [[연합군]] 등이 서북쪽과 남쪽에서 고구려를 공격하여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상황에 몰리고 말았다. 그나마 돌궐의 침공은 [[고흘]]의 활약으로 물리칠 수 있었지만[* 그나마 이는 잘 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당시 돌궐이 제대로 기세를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551년이면 아직 돌궐이 몽골 고원의 유연조차 멸망시키지 못했으나 몇 년 안지나서 유연을 통째로 무너뜨렸고 돌궐의 기틀을 닦은 3대 가한인 목간가한 시기가 바로 양원왕 재위기였다. 당시 목간가한은 카스피해까지 영토를 넓혔을 정도로 돌궐의 영역을 쭉쭉 팽창시키고 있었으니 그 기세가 사뭇 대단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 때 고구려가 패배했다면 고구려도 유연처럼 그저 돌궐 앞에 무너진 국가 1이 되지 않았으리란 법이 없다.] 551년 백제-신라 연합군에게 [[한강]] 유역을 내주게 되었고 이후 고구려는 한강 이북을 몇 차례 공략하기는 했지만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으며 고구려가 668년에 [[멸망]]할 때까지 대체로 [[임진강]]에서 신라와의 [[국경]]이 형성되었다. [br]사족이지만 그래서 보통 사극에서 나제동맹 시기가 나올 때 이 시기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업적이 적어서도 있지만 별로 유명하지 않은 군주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아들인 평원왕의 경우 [[평강공주]]의 아버지이자 [[온달]]의 장인이기에 자주 등장하긴 하지만 업적이 생략되는 경우가 다반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