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양진 (문단 편집) === 모야무지(暮夜無知)와 사지(四知) === >양진은 결국 나이가 50이 되어서야 출사하였다. 당시 [[대장군]]이던 [[등즐]]은 양진의 소문을 듣고서 무재(茂才)[* 전한(前漢) 때부터 생긴 각지방에서 재능이 뛰어난 사람을 군태수(郡太守)가 관리후보로 조정에 추천하는 제도로 본래는 수재(秀才)였지만, [[광무제]]의 이름이 수(秀)였기에 [[피휘]]되었다.]로 천거하였다. 4번을 더 승진하여 형주자사(荆州刺史)와 동래태수(東萊太守)를 역임하였다. > >동래군(東萊郡)으로 가는 도중 창읍(昌邑)에 잠시 머무르게 되었는데 창읍의 현령(縣令)이던 왕밀(王密)[* 양진이 형주자사(荊州刺史)를 지내던 시절 무재로 천거한 인물이다.]이 와서 반갑게 맞이하였고, 이야기가 무르익자 금 10근을 바치면서 자신을 무재로 천거해 준 은혜를 갚는 것이라 말하였다. 양진은 거절하였지만, 왕밀이 "지금은 한밤 중이라 아무도 아는 자가 없습니다."[* 모야무지자(暮夜無知者)] 라고 하자 양진은 "하늘이 알고(天知), 귀신이 알고(神知), 내가 알고(我知), 자네가 아는데(子知), 어찌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가!"[* 원문은 "天知, 神知, 我知, 子知, 何謂無知!" 여기서 신(神)은 하늘에 대응하는 지(地)로 대체되어 땅이 알고(地知)라고 표현되기도 하며, [[자지|발음 때문]]인지 너를 의미하는 부분의 한자인 자(子)를 여(汝)로 바꾸어 여지(汝知)로 설명한 글도 자주 보인다.] 라고 하였고, 왕밀은 그 말에 부끄러워 하면서 떠났다. 어찌 보면 결국 아무도 몰랐을 것 같은 이 일도 200년이 지나서 쓰인 [[후한서]]에 쓰여 있는 것을 보면 양진의 현명한 처세는 정답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