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양진 (문단 편집) === 간교에 당해 [[짐새|짐독]]을 마시고 죽다 === 124년 안제가 [[태산]]으로 순행하자 번풍은 황제가 없음을 이용해 저택을 더욱 크게 지었다. 태위부(太尉部)의 고서(高舒)란 자가 번풍등이 거짓으로 조서를 쓴 것을 알아내어 안제가 다시올 때를 대비해 상주문을 썼다. 번풍은 매우 두려워하였는데 마침 태사(太史)가 별이 거꾸로 되어있다고 하자 번풍은 거꾸로 양진을 참소하였다. >조등이 죽은 후로 양진은 깊이 원망하고 분노하였사옵니다. 또한 등(鄧)씨의 옛 관리로써 원한의 마음을 가지고 있사옵니다.[* [[등즐]]이 양진을 무재(茂才)로 천거한 것을 억지로 이어붙인 것이다.] 안제는 순행을 마치고 돌아오자 태학(太學)에서 길일이 될때까지 기다리고 밤에는 사람을 보내 양진의 태위 인수를 거두게 하니 양진은 문을 닫아 빈객들을 거절하였다. 그러자 번풍은 경보에게 참소하도록 하였다. >양진은 비록 대신(大臣)이오지만, 죄를 내린것에 불복종하옵고 원한을 품고 있사옵니다. 안제는 이에 양진을 파면시키고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양진은 낙양 성 서쪽에 있는 기양정(幾陽亭)이란 곳에[* [[자치통감]]에서는 석양정(夕陽亭)이라 나온다.] 이르자 의분에 복이 받쳐 한탄하며 여러 아들과 문생들에게 말하였다. >죽음이란 것은 선비에게 있어서 항상 있는 것이다. 나는 은혜를 입어 높은 관직에 있었지만 간신의 교활함을 미워하면서도 죽이지를 못하였고 황제의 총애를 받는 여인이 나라를 기울이고 어지럽히는 것을 미워하였지만 금하지 못하였으니 무슨 면목으로 다시 해와 달을 보겠는가? 내가 죽으면 잡목(雜木)으로 관을 짜고 포(布)로 한번만 쌀 것이며 몸만을 덮고, 조상의 무덤 옆으로 운반하지도 말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 이러고서 양진은 [[짐새|짐독]]을 마시고 자살하였다. 이 때 양진의 나이가 70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