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양피지 (문단 편집) === 역사학에서 === 현존하는 양피지 도서 중에는 이전 내용을 지우고 그 위에 덧쓴 것들도 많은데, [[고대 로마]] 시대에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 쓰여진 양피지를 재활용해 쓰기까지 했다. 그러나 학자들에게는 로마 문헌도 중요는 하지만 이전에 쓰인 그리스 문헌이 훨씬 더 중요하므로 지워진 그리스어 내용을 복구하고자 노력한다. 이렇게 재활용한 양피지를 전문용어로 팰림프세스트(Palimpsest)라고 한다. 가장 유명한 팰림프세스트의 사례라면 아마 아르키메데스가 쓴 글일 것이다. 수학 이론을 적어놓았는데 누가 그걸 지우고 기도서로 재활용한 것. 또한 셜록 홈즈 시리즈의 '[[금테 코안경]]' 편에 홈즈가 팰림프세스트를 연구하는 장면이 초반부에 나온다. 양피지 기술이 처음 유럽과 서아시아에 퍼졌을 때부터 가장 많이 쓰였던 분야는 역시 종교계에서 경전을 작성할 때였다. 제지술이 중국과 이슬람을 걸쳐 유럽으로 전파되기 전까지 파피루스와 함께 서사재로 병용되었다. 파피루스 쪽이 양피지보다 값이 쌌고, 자유롭게 필요한 만큼만 잘라 쓰기 편하였으므로 외교문서 등에서는 파피루스를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책을 저술할 때도 파피루스에 초고를 써 두고 퇴고를 거쳐 양피지에 옮기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교황청에서는 오랫동안 양피지 사용을 거부했는데, 페르가몬이 [[요한묵시록]]에서 '사탄의 왕좌'로 낙인 찍혔기 때문이었다. 양피지를 처음 교황청에서 작성하는 문서에 도입한 것은 1023년, 베네딕토 8세 때였다. 잉크의 산도, 농도 조절을 잘못할 경우 강한 산성 때문에 글을 쓸 당시에는 별 이상이 없어 보이더라도, 수백 년이 지나면서 양피지가 지나치게 부식되어 글자 부분이 양피지에서 아예 떨어져 나가는 경우도 생겨 박물학자들의 고충이 크다. 중세 유럽의 [[성직자]]들은 양피지 문서에 글을 쓸 때마다 자신들이 사탄의 육체에 상처를 낸다고 믿었다. 사탄은 무지로 사람을 유혹하는데, 자신들이 양피지에 글을 씀으로써 참된 지식을 전파하여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이끈다고 여겨서 그런 생각을 가졌던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