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엄항섭 (문단 편집) === [[대한민국 임시정부]]시절 === 본래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국에서 일했던 그는 [[상해임시정부]]에 들어가게 된다. 그의 가장 [[노가다]]에 가까운 업적은 그 시절에 [[김구]]의 백범일지를 [[등사기]]로 일일이 인쇄한 것이다(...). 등사기가 무엇인가, [[복사기]]의 조상으로 한 장을 일일이 인쇄해야 하고 글자를 일일이 칼로 파야 했다. 그것도 [[한자]]를 말이다. [[파일:external/pds.joins.com/htm_2011032815042430003010-001.gif]] 왼쪽부터 김구, 박찬익, 이동녕, 엄항섭 이후 김구를 극진히 대우하였고, 김구의 생활비를 조달하기도 했다. 임시정부가 와해될 위기에 처했어도 임정을 떠나지 않고 김구를 보좌하면서 김구의 최측근이 된다. [[파일:external/ddaa152e3fcf32c86d0716dec7ee8283849116ded6bdb108798d891496cf605f.jpg|type=w646]] 결혼식. 엄항섭과 부인 연미당의 결혼식(1927). 결혼식에 참석한 [[김구]]·[[안창호]]·[[이동녕]]·[[이시영(정치인)|이시영]] 등의 임시정부 요인들의 모습이 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