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르진잔 (문단 편집) == 역사 == 고대에는 아킬리세네라 불렸고, 기독교 이전 [[아르메니아 왕국]]의 성지인 에레즈가 있었다. 384년 [[로마 제국]]과 [[사산 제국]]은 아르메니아를 분할한다는 아킬리세네 조약을 맺었다. 중세에는 에케기아츠, 유스티니아노폴리스, 켈트제네 등으로 불렸다. 9세기 말엽 대주교구가 설치되었으나 [[만지케르트 전투]] 후 [[룸 셀주크]]령이 되었고, 1243년 [[몽골 제국]]에 의해 파괴되었다. 이후 재건되었으나 루브룩에 의하면 1254년 대지진으로 1만 이상이 사망했다 한다. 1500년 여름, 에르진잔에서는 7천의 [[키질바시]] 부대가 [[이스마일 1세]]의 부름에 답하여 [[사파비 왕조]] 건국의 주체가 되었다. 이후로도 쉬아 튀르크 부족들이 아르메니아 인들과 공존했으나 전자는 [[찰디란 전투]] 직전 [[오스만 제국]]군에 의해 학살되었다. 이후 오스만 령이던 에르진잔은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겪으며 튀르크계 주민이 다수가 되었고, [[1차 대전]] 발발 후 튀르키예 제3군의 사령부가 되었다. 하지만 1916년 7월 [[러시아 제국]]군이 튀르키예군을 격파하고 도시를 점령하였다. 1917년 [[러시아 혁명]]과 함께 [[볼셰비키]]에 속한 러시아 병사들은 에르진잔과 툰젤리에서 이른바 '에르진잔 소비에트' 결성을 시도했으나 본국의 혼란으로 군대가 철수하며 무산되었고, 마침내 1918년 2월 오스만 군이 일대를 수복한 후 반격으로 전환한다. [[튀르키예 공화국]] 수립 후 안정을 누리던 에르진잔은 1939년 12월 27일 규모 7.8의 [[1939년 에르진잔 지진|에르진잔 대지진]]으로 32962명이 사망하는 비극을 겪었고, 기존 시가지는 완전 파괴되어 2km 북쪽에 현재의 도심으로 이전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