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스노그라피 (문단 편집) == 소개 == '''Ethnography'''[* 어원은 사람들(people)을 의미하는 'ethnos', 그리고 쓰기(writing)를 의미하는 'graphien' 이 합성된 것이다. 즉, 에스노그라피라는 단어는 '사람들에 대해서 쓴 글' 이라는 뜻에 기원하고 있다.] 질적 연구방법의 하나로, '''어떤 하나의 [[문화]]를 기준으로 묶일 수 있는 민족집단에 참여함으로써 그들이 경험하는 일상의 의미를 생생하게 해석하는 연구방법'''이다. 김영천(2013)의 문헌에 따르면,[* 김영천 (2013). 질적연구방법론 II: Methods. 파주: 아카데미프레스.] "사회 집단과 공동체들의 일상적 세계들을 이해하고 기술하는 연구방법"(김영천, 2013; p.1)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은 질적연구의 가장 유서깊고 전통적인 논리이기 때문에, 해당 문헌에서도 1장에서부터 최우선적으로 에스노그라피를 소개했을 정도이다. 심지어는 때때로 질적연구가 곧 그 자체로 에스노그라피라는 식의 개념적 혼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연구방법의 개념적인 기준에 대하여 나미수(2005)는[* 나미수 (2005). 민속지학적 수용자 연구에 대한 비판적 성찰: 국내 연구사례에 대한 분석과 평가. 커뮤니케이션이론, 1(2), 68-105.] 자료수집의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연구의 목적이 '그 현지에 참여하는 생생한 경험' 을 통찰하고자 할 때 그것이 바로 에스노그라피라고 말했다. 하지만 질적 연구가 곧 그 자체로 에스노그라피가 되는 건 아니다. 예컨대 에스노그라피는 기호 분석이나 [[내용 분석]], [[담론 분석]]과 같은 '''텍스트 분석들과 대척점에 있다.''' 에스노그라피는 굉장히 다양한 이명(異名)들을 갖고 있어서 국내에서 번역상의 어려움이 있다. 에스노그라피는 '''[[문화기술지]]''', '''[[민속지학]]''', '''[[민족지학]]''', 심지어는 아예 뭉뚱그려서 '''참여관찰법'''과 동의어로 쓰기도 한다. 이 중에서 문화기술지의 경우 그다지 좋지 않은 번역어인데, 왜냐하면 이미 지(誌)가 '기록하다' 라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앞의 '기술' 이라는 단어와 의미의 중복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자 문화권]] 전반에서는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한국에서 에스노그라피가 민속지(民俗誌)와 민족지(民族誌) 양쪽 모두 번역이 가능한 반면, [[일본]]이나 [[중국]] 학계에서는 후자의 번역만이 가능하며, 특히 일본에서는 민속지와 민족지의 의미를 서로 달리하기 때문이라고... 영어권에서도 이름에 대한 논쟁이 존재하는데, 이 이름 때문에 [[인류학]]이 어떤 학문이고 어떤 활동을 하는지에 대한 오해만 유발된다는 것. [[https://toeuzen.tistory.com/45?category=614925|#]] 아무튼 이처럼 복잡한 속사정이 있기 때문에,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이름을 붙이는 것은 어렵다. 일단은 [[나무위키]]의 본 문서 한정으로 '에스노그라피' 라고 음차하기로 하되, 접두어 'ethno-' 에 한해서만 '민속-' 으로 번역하기로 한다. 하단에 소개되겠지만 자문화기술지의 경우 자민속지학(?), 자민족지학(??) 같은 번역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 경우에는 그대로 자문화기술지로 번역하겠다. 분류상으로 보더라도 에스노그라피는 '''[[인류학]]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특히 인류학적 전통에 강하게 의지하는 연구자들은 에스노그라피의 핵심이 '''현지 문화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강변하며, 과거에는 부족사회를 주로 탐구했지만 현대에는 그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으로부터 연구주제를 찾는 편이고, 심지어는 '위를 향한 인류학' 이라 하여 [[높으신 분들|인간사회 권력의 중심부]]를 또 다른 '현지' 로 이해하여 에스노그라피를 진행할 것을 독려하고 있는 추세이다. 사실 인류학이라는 학문이 항상 '미개인', '[[오지(지리)|오지]]', '비문명' 에만 관심을 가질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편견 및 고정관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김영천(2013)의 문헌에 따르면 그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에스노그라피의 연구 철학을 빌려서 활용하고 있다. 예컨대, [[국제관계학]], [[국제개발]], 의료, 관광, [[마케팅]], [[교육학]], 노인 연구, [[식품영양학]] 등에서 그 사례를 찾을 수 있다고. 따로 언급은 없으나 [[여성학]] 역시 [[1970년대]]부터 '페미니스트 에스노그라피' 같은 별도의 흐름을 만들 정도로 에스노그라피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단에서 다시 설명하겠지만 [[커뮤니케이션학]] 역시 수용자 연구(audience research)에 있어 에스노그라피를 접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한편 국내에는 미번역된 톰 뵐스토르프(T. Boellstorff)의 문헌에 따르면[* Boellstorff, T., Nardi, B., Pearce, C., & Taylor, T. L. (2012). Ethnography and virtual worlds: A handbook of method. New Jersey: Princeton University Press.] [[사회학]] 역시 에스노그라피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 경우 시카고 학파의 로버트 파크(R.E.Park)와 어니스트 버기스(E.W.Burgess) 등이 주축이 되었다고 하니 참고. 뵐스토르프는 자신의 책에서 '''에스노그라피의 역사'''를 포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에스노그라피에 대한 원시적인 관심은 '우리와는 다른 문화를 가진 그 사람들' 에 대해 인식하면서 출발했다. 이렇게 본다면 에스노그라피는 이미 [[호머]]의 《[[오딧세이]]》 와 [[헤로도투스]]의 《[[역사]]》 에서부터 예견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저서들은 사실 [[자문화중심주의]]의 기원이라고도 불리는데, 이 점에서 보면 결국 인류는 '다른 문화' 에 대해서 처음부터 관용적이지는 못했음을 보여준다.) 이후 에스노그라피 용어 자체는 [[1767년]]에 독일 낭만주의를 논하던 요한 쇠페를린(J.F.Schoepperlin)의 글에서 처음 나타났고, 학술적 의미로 활용된 것은 [[계몽주의]] 시대에 "지식을 어떻게 기술할 것인가" 에 대해 실증적으로 기술해야 한다던 [[백과전서파]](Encyclopédie)에게 반대하던 사람들을 지칭한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연구방법론]]으로서의 본격적인 시작은 역시나 '''[[식민주의]]''' 시대부터이다. [[오세아니아]]를 중심으로 서구 [[선교사]]들과 탐험가들이 활동하면서 현지인과 현지 문화에 대해 다양한 글을 남겼는데, 이 당시에 태동하던 초기 [[인류학]]자들은 이런 문헌만 가지고 현지 문화에 대해 평가하는 바람에 소위 '''"안락의자 학자들"'''(armchair scholars), 즉 필드워크는 한 번도 하지 않으면서 방구석에서 [[썰]]만 푸는 주제에 지들이 [[학문]]이라고 주장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아무튼 이처럼 방법론적인 한계를 드러내긴 했지만,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프랭크 쿠싱(F.H.Cushing), 제임스 프레이저(J.G.Frazer) 등이 남긴 《[[황금가지]]》 같은 문헌들은 당대 지성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다가 비로소 제대로 체계화되기 시작한 것이 바로 브로니슬라프 말리노프스키(B.Malinowski)의 [[파푸아뉴기니]] 연구이다. 말리노프스키는 [[호주]]에 살고 있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적성국가 출신이라는 이유로 [[트로브리안드]] 섬으로 사실상의 유배를 가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오랫동안 그 섬에서 현지 주민들을 참여관찰하게 되었다. 이것이 모태가 되어 현지에서 직접 참여관찰하는 인류학적 방법론으로서의 에스노그라피가 성립된 것이다. 일종의 [[전화위복]](?). 뵐스토르프는 이를 두고 현장 활동가(fieldworker)와 이론가(theorist)의 두 역할이 문화기술자(ethnographer)로 비로소 통합되었다고 평가한다. 그 이후에는 하단에 다시 소개하겠지만 "[[문화]]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에 대해서 클리포드 기어츠(C.Geertz)가 나타나서 큰 방법론적 공헌을 했으며, 현대의 에스노그라피 연구자들은 좋든 싫든 기어츠의 해석인류학적 관점에 영향을 받고 있다. 이렇다 보니 에스노그라피는 항상 '''[[연구윤리]]'''의 문제가 굉장히 강조되는 질적 연구방법이기도 하다. 질적 연구에서 연구윤리에 관련된 중요한 이슈들 중 상당수는 전부 초기 인류학자들과 에스노그라피의 시행착오로부터 나타났다(…). 김영찬(2015)은[* 김영찬 (2015). 질적 연구의 특성: 민속지학을 중심으로. 이여진, 한나래 편저, 미디어 문화연구의 질적 방법론 (pp. 37-74). 서울: 컬처룩.] 이에 대해서 '''문화적 민감성'''(cultural sensibility)이라고 부른다. 연구자는 연구대상과 그 문화를 존중하는가? 연구자는 그 문화에 충분히 동화되었는가, 아니면 거리를 두고 방관하고 있는가? 옛날 말리노프스키가 그랬듯이, 연구의 대상이 되는 집단에 대해 [[연구노트]]에 악담을 쏟아놓는 등의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았는가? 내가 이들을 왜 연구하는지에 대해 성찰하고 있는가? 연구 결과가 특정 세력에 의해 악용될 위험은 없는가? 연구대상자와 참여하던 중에 그가 범죄를 저지르는 걸 목격하면 계속 참여할 것인가, 아니면 막아설 것인가? 이를 요약하자면, 흔히 말하는 "저놈들 정말 연구대상이야"(…) 같은 관용적 표현들은 거꾸로 '''에스노그라피에서 [[극혐]]하는 연구 동기'''라고 할 수 있다. 연구대상을 존중하는 기본 자세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에는 에스노그라피가 굉장히 체계화되고 엄격한 학문적 가이드라인과 규율을 형성했기 때문에, 뵐스토르프가 소개하는 고전적인 류의 비판들, 즉 "비과학적이고 주관적이다, 단지 경험이나 일화일 뿐이다" 같은 비판들은 거의 극복한 상태이다. 뵐스토르프의 반론을 요약하자면, 에스노그라피는 갈수록 '''다양한 종류의 데이터'''를 '''막대하게 수집'''하고, 그 분석과 해석을 '''엄격하게'''(rigorously) '''적용'''하며, '''장기간에 걸친 참여'''를 점점 더 많이 강조하고, '''해석 결과의 타당화'''를 위해서 (즉 주관성이 결과 해석에 문제가 되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 왔다는 것이다. 게다가 현대에는 소위 '''계산적 에스노그라피'''(computational ethnography)라고 하여 에스노그라피의 [[연구투명성]]과 [[재현성]]을 제고하기 위해 [[질적 분석 소프트웨어]](CAQDAS), [[사회 네트워크 분석]](SNA), [[빅 데이터]], [[데이터과학|텍스트 마이닝]] 등을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Abramson, C. M., Joslyn, J., Rendle, K. A., Garrett, S. B., & Dohan, D. (2018). The promises of computational ethnography: improving transparency, replicability, and validity for realist approaches to ethnographic analysis. Ethnography, 19(2), 254-284.] 여기서는 민족배열(ethnoarray)이라고 이름붙은 자료 시각화 방식을 제안하는데, 이는 어떤 주제나 개념별로 2차원에서 시각화를 시도하는 히트맵(heatmap) 방식을 적용한 것이다. 이와 같은 "여러분도 [[데이터과학]] [[츄라이 츄라이]]"(…) 움직임이 어디까지 수용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지만, 중요한 것은 질적 연구자들이 자신들의 연구결과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꾸준히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는 점이다. 그 외에 에스노그라피에 대해 존재하는 해묵은 편견 중 하나로 '''"외로운 문화기술자"'''(lone ethnographer)라는 것이 있다. 질적연구 이론가인 노먼 덴진(N.K.Denzin)과 이본나 링컨(Y.S.Lincoln)에 따르면,[* Denzin, N. K., & Lincoln, Y. S. (2011). Introduction: The discipline and practice of qualitative research. In Denzin, N. K., & Lincoln, Y. S. (Eds.), The SAGE handbook of qualitative research (pp. 1-20). SAGE Publications.] 이는 현지 문화권에서 함께 생활하는 에스노그라피 연구자가 대개 한 명에 지나지 않던 전통적 에스노그라피의 특징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김영찬(2015)은 현대에는 어디나 협업이 활성화되어 있기 때문에 절대 자신의 연구를 혼자 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이 맥락에서 그는 [[내향적]]인 성격의 연구자일지라도 사교적인 사람과 협업한다면 얼마든지 에스노그라피를 수행할 수 있다고 격려하며, 사교적인 쪽이 필드워크를 맡고, 내향적인 쪽이 문헌검토를 맡으면 된다고 하였다. 에스노그라피에도 '''방법론적 한계'''는 당연히 존재한다. 가장 흔히 지적되는 것은 에스노그라피가 '지금 여기' 의 문화를 분석하는 데에는 좋지만 과거 역사 속에 있었던 문화나 사건에 대해서는 분석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국가적인 수준의 대규모 문화연구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Hammersley, M., & Atkinson, P. (1995). Ethnography: Practices and principles. New York: Routledge.] 하지만 김영찬(2015)이 반론하듯이, 에스노그라피 속에 포함되는 [[면접법]]이 그에 대한 부분적 대안이 될 수 있다. 면접의 진행을 [[구술사연구]] 내지 [[생애사연구]]의 방법론적 논리로 보완한다면, 과거 사건에 대해서도 에스노그라피를 통해 담아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얘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