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스토니아/역사 (문단 편집) == 중세 == 중세 에스토니아는 오늘날의 탈린을 중심으로 한 북부 해안지대와 오늘날의 타르투를 중심으로 한 남부의 역사가 다르게 돌아갔다. 오늘날 에스토니아의 남부는 [[리보니아 검의 형제기사단|리보니아 그리스도 기사 수도회(Fratres militiae Christi Livoniae)]]와 1227년 정복되어, 토속 신앙을 믿고 있던 추디-에스티인들에게 기독교가 전파되었다. 에스티인들은 [[농노]]가 되었으며, 십자군의 통치지역 아니랄까봐 [[투르코폴]] 비슷하게 리보니아 기사단의 화살받이로(...) 징집되었다. 키예프 루스의 영향권 안에 있던 '''[[타르투|유리예프]]'''가 붕괴된 후 추디-에스티인들의 상당수가 동쪽의 [[프스코프]]로 이주하였다. 16세기까지 토속 신앙을 믿던 이들은 [[루스 차르국]] [[차르]] [[이반 4세]]의 이교 척결 정책으로 인해 강제로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한 이후 [[러시아인]]과 동화되었다. 추디-에스티인들은 기독교로 개종하기는 했지만 이들은 [[라틴어]]나 [[교회 슬라브어]]는커녕 [[독일어]]나 [[러시아어]]도 제대로 읽고 쓸 수 없었고 중세에는 [[에스토니아어]]로 번역된 [[성경]]도 없었다. 중세 에스토니아인들은 세례를 받기는 했지만 기독교도로의 변화는 표면적인 것에 그쳤으며 그동안 보전해왔던 토속신앙에서 비롯된 의식이나 관습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1219년 [[덴마크군]]을 이끌고 에스토니아 북부를 침공한 [[덴마크 국왕]] [[발데마르 2세]]는 [[탈린]]을 중심으로 덴마크령 [[에스토니아 공국]]을 세웠다. 덴마크령 에스토니아 공국의 역사는 에스토니아 원주민들의 저항은 물론 종종 같은 기독교인이라면서 친한 척 하던 리보니아 검의 형제기사단이 종종 배신을 때리고 쳐들어오는 통에 바람 잔잔할 날이 별로 없었다. 1346년 [[발데마르 4세]]가 재정난을 타파[* 덴마크는 발데마르 4세의 백부 [[에리크 6세]]의 환장할 통치로 [[파산]]한 상황이었다.]하고자 [[튜튼 기사단]]한테 돈 받고 팔면서 한동안은 에스토니아 전역이 북방 십자군의 영토였던 적도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