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어컨 (문단 편집) === 대한민국 도입 === 대한민국에서 에어컨이 최초로 설치된 곳 중 하나는 다름아닌 경주의 [[석굴암]]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는 관련 업계에 꽤 알려진 일화인지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도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서 언급하기도 했다. 이 에어컨은 1960년대에 범양상선(현 팬오션)-범양냉방(현 귀뚜라미범양냉방)이 일본에서 수입한 것으로, 과거 [[일제시대]]에 일제가 석굴암을 해체, 재조립 하는 과정에서 당시에는 최신 건축 자재였던 시멘트를 사용하여 공사를 단행하였으나, 오히려 이로 인해 [[결로]]현상이 발생하게 되어 석굴암이 지속적으로 훼손되는 상태가 되었고, 1960년대에 다시 복원공사를 시도하면서 이슬 맺힘을 해결하기 위해 당시 청와대(현.대통령실)에도 없던 에어컨을 수입하여 석굴암에 설치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팟캐스트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있네]]의 "[[https://www.podbbang.com/channels/6205/episodes/24129504|격동 500년! S7E07 더위를 물리치고 인류를 구하다, 윌리스 캐리어]]" 편(2시간 부근)에서 [[곽재식]] 작가에 따르면, 그 이전 1950년대에 국회나 극장에 도입되었었다는 얘기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아래 [[대한극장]] 광고를 보면 1958년 개관 당시 이미 “완전한 '에어콘듸숀'의 냉난방 장치”가 완비되었다고 써 있다. 즉 1960년대에 한국에 최초로 에어컨이 설치되었다는 설은 신빙성이 낮다. 더군다나 석굴암에 에어컨이 처음 설치된건 [[https://theme.archives.go.kr/next/koreaOfRecord/seokguram.do|1966년 8월]]인데, 그보다 이른 [[http://115.84.165.213/photo/view/31163?only=true|1963년 1월]]경에 [[장충체육관]]에 에어컨이 설치된 사진 자료가 있는 만큼 석굴암이 최초가 아닐 가능성도 높다.[* 그 외에도 석굴암에 에어컨이 설치되기 이전인 1960년대 초중반에도 재벌~준재벌이라던가 지역유지 같은 한국의 극소수 부유층들이 어찌어찌하여 가정용 에어컨을 일본에서 들여와 썼다는 카더라 통신도 있다.] 이후 1960년대 말에 이르러 한국 최초의 에어컨 브랜드인 센츄리 에어컨(당시 사명은 경원세기)[* 사실 이때도 일본 다이킨사와 제휴해서 주요 기술을 전수받던 수준이었다.]이 나타났으며, 이어 1970년대에는 금성사(지금의 LG전자) 등 한국 가전 회사들이 한국산 에어컨을 개발해 출시하였다. 그러나 한국산 에어컨이 출시되었다고는 해도 1970년대~1980년대 중반까진 에어컨 자체의 가격이 너무나 비쌌다. 국산(금성사) 가정용 에어컨의 최초 출시 가격은 약 27만원이었으며 이는 당시 대기업 사원의 석 달 월급에 맞먹는 거금이었다. 즉 현재(2020년대) 기준으로는 천만원이 넘는 물건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서민 가정에는 대개 에어컨이 없었으며 선풍기 한 대로[* 당시엔 선풍기를 여러 대 보유한 가정조차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서민은 집에 선풍기가 한 대 있었다. 당시 선풍기는 상당한 고가품이었기 때문이다.] 여름을 났다. 게다가 당시 가정집은 에어컨같은 전력 소모량이 큰 전기제품을 사용할 것을 염두에 두고 지어지지 않았기에, 에어컨을 한 대만 가동해도 [[두꺼비집#s-2]]의 퓨즈가 나가거나 차단기가 떨어져 집이 정전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당시 개인주택이나 공동주택(아파트)은 에어컨 설치를 고려하지 않은 설계라 에어컨을 달려면 벽에 큰 구멍을 뚫거나 창문을 개조해야 했다. 지금 에어컨은 실내기와 실외기 사이를 냉매 파이프로 연결해주기만 하면 되지만, 당시 가정용 에어컨은 일체형이라 거대한 에어컨 본체를[* 대개 가로 1미터, 높이 60센티미터, 두께 60센티미터 정도의 입방체 형태였다.] 벽이나 창문으로 관통시켜(...) 정면은 실내, 후면은 실외에 위치하도록 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이 방식의 에어컨을 오늘날엔 창문형 에어컨이라 부르지만, 당시엔 창문 뿐 아니라 건물 외벽(!)에 구멍을 내고 설치하기도 헸다.[* 에어컨의 가정 보급이 본격화된 후에 지어진 옛날 아파트 중 하나인 [[압구정 현대아파트]](소위 구현대)는 이를 감안해 처음부터 외벽에 에어컨용 구멍이 뚫려 있었다. 다만 에어컨 구멍 밖에 발코니가 있었다. 즉 에에컨 후면에서 나오는 뜨거운 바람이 자기 집 발코니로 내뿜어지는 방식이었다.] 당시 스탠드형 에어컨은 크기와 용량이 크고 업소용이었으며, 벽걸이형 에어컨은 1980년대부터 판매되었다. 이렇게 벽체/창호 공사까지 해가며 에어컨을 설치했어도 전기료 때문에 마음대로 틀지도 못하는 것이 당시의 에어컨이었으며, 한여름에 더워서 에어컨을 틀자고 자녀가 졸라대면 "우리가 [[이병철]]네 집인 줄 아니?"라고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지금도 에어컨은 전기 먹는 하마지만 당시 에어컨은 효율이 나빠 전력 소모가 어마어마했다. 당시 가정에서 전력 사용을 측정하는 전기 계량기(전력량계)는 요즘같은 [[디지털|전자식]]이 아니라 유도형 전력량계로 [[아날로그|전력 사용을 바퀴의 회전으로 나타냈는데]], 평소에는 10분을 쳐다보고 있어도 한 바퀴 도는 것을 보기가 힘든 바퀴가 에어컨을 켜면 수초만에 한 바퀴 도는 무서운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당시 중산층을 중심으로 에어컨의 사용은 점차 늘어났고, 여름철에 일반 가정의 전력 소모가 급증한데다 [[오일 쇼크]]까지 겹쳐 전력 공급이 어려워지자 1973년에는 전기료 [[누진세]]가 도입되기에 이른다. 허나 이 전기료 누진세 덕분에 에어컨은 서민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물건이 되었고, 1980년대까지도 부유층 집안이 주로 사용하던 사치품이었다. [[관광호]]라는 그야말로 금수저도 범접하지 못할 수준[* 서울-부산간 운임은 당시 9급 공무원 초봉 본봉과 맞먹는 수준의 미친 가격이었고 지금이야 서민의 음식으로 변했지만 당시엔 커피, 토스트조차 갑부들이나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던 것을 겨우 구해먹던 시기였는데도 관광호 개업기념 행사에서 무료 제공되었다. 이정도만 봐도 에어컨이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 알 수 있을 정도.]의 기차에나 겨우 에어컨이 달려 나오던 시절이였다. 당시(1970년대~1980년대 중반)에는 일반 가정 뿐 아니라 공공 시설이나 업장에도 에어컨은 호사스런 물건이었다. 1970년 7월에 [[어린이회관(서울)|서울 어린이회관]][* 지금의 어린이회관이 아니라 [[남산(서울)]]에 있던 원래 어린이회관이다. 즉 현재 교육연구정보원 건물.]에 에어컨을 설치하자, 이 찬바람 나오는 기계를 구경하고 [[피서]]를 하겠다고 전국에서 수십만 인파가 몰려왔을 정도다.[* 수십만이라는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며 실제 수치다. 매일 입장객을 3만명으로 제한해야 했을 정도다. 결국 인파로 인해 어린이회관 전시물 중 다수가 파손되어 어린이회관 초유의 휴관 사태까지 일어났다.] 1970년대 중반까지는 서울 도심의 최고급 백화점에조차 에어컨이 없었으며 천장에 매달린 여러 대의 대형 선풍기로 실내 온도를 관리했다.[* 당시 [[신세계백화점]], 코스모스 백화점, [[화신백화점]] 등은 모두 창문이 있어 여름엔 창문을 열고 영업했다.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1985년 개점)도 원래는 전면부에 창문이 있었지만 통풍을 위해 열 수 있는 창문이 아니라 비상용이었다(정전, 화재 등). 현재는 대부분의 백화점들은 1층 쇼윈도와 최상층 전망창을 제외하면 대개 창문이 전혀 없고 에어컨으로만 내부 공기를 관리하는 방식이다.] 소형 업장에서는 스탠드식 선풍기나 벽걸이 선풍기가 그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 에어컨을 마련한 업소들은 은행과 극장 정도였다. 특히 극장은 창문을 열 수 없어 여름엔 에어컨이 필수품이었기에, 대한민국에서 대형 에어컨이 가장 먼저 널리 보급된 업종이 극장업이었다. 특히 당시 극장들은 신문에 영화 광고를 낼 때 반드시 자기네 극장에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음을 자랑하며(주로 "냉방 완비"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여름철에는 시원한 극장에서 에어컨으로 피서하며 영화를 관람할 것을 권유하곤 했다. 당시 업장 안에 에어컨을 설치한 가게들은 흔히 에어컨의 송풍구에 짧은 리본들을 매달아놓고, 에어컨에서 나오는 바람에 리본이 휘날리는 것을 보여주며 ‘우리 가게는 이렇게 에어컨이 켜져 있다’고 보여주곤 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냉방완비.jpg|width=100%]]}}}|| ||<:>{{{-1 '완전한 에어콘듸숀의 냉난방 장치' 광고}}} || 당시 은행이나 극장에 설치된 에어컨은 지금같은 중앙 냉방식이 아니라, 거대한 에어컨 한 대(대부분의 은행) 또는 두 대(대형 극장)가 실내 전체의 냉방을 담당하는 방식이었다.[* 중앙 냉난방은 천장에 여러 개의 구멍을 내고, 중앙 에어컨/히터와 구멍을 공조 덕트라는 관으로 연결해 찬/더운 공기를 공급하는 방식이다. 허나 공조 덕트는 건물을 지을 때 만들어 넣어야 하는 구조이므로 당시 건물들은 이 방식을 사용할 수 없었으며, 그냥 초대형 에어컨 실내기를 방안에 세워두는 방식을 썼다. 이 경우 실내기에 가까운 곳은 엄청나게 춥고 먼 곳은 별로 안 시원하다는 문제가 있다.] 그걸로는 어림도 없었겠다 싶겠지만 의외로 충분한 냉방이 가능했다. 우선 에어컨 자체가 덩치가 엄청나게 컸으며(킹사이즈 침대를 수직으로 세워둔 정도의 크기), 냉방 성능이 현대식 에어컨보다 오히려 더 강력했기 때문이다. 당시엔 [[냉방병]]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으며 에어컨은 무조건 추울수록 좋다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당시 에어컨의 냉기는 광고 문구 등에서 “북극의 찬바람”에 비교되곤 했는데, 실제로 당시의 에어컨은 오늘날의 에어컨보다 훨씬 추운 바람이 나왔으며 정면으로 맞으면 뼈가 시릴 정도였다. 당시 에어컨은 오늘날엔 금지된 물질인 [[프레온]]([[염화플루오린화탄소]])을 냉매로 사용해, 오늘날의 미적지근한 에어컨과는 냉방 능력의 차원이 달랐기 때문이다.[* 요즘도 가끔 공공기관이나 학교 등에서 오래된 범양社의 에어컨을 볼 수 있는데,(학교에서는 주로 체육관등의 넓은 실내공간에 한 두대 사용한다. 교실은 시스템에어컨) 이 오래된 범양에어컨 모델들이 바로 구형 프레온 냉매 에어컨이다. 가까이 가서 송풍구를 들여다보면 얼음이 얼어있는것을 볼 수 있다...] 차량용 에어컨 역시 당시에는 매우 드물었으며, 여름에 차내 냉방은 창문을 열고 달리는 방법 뿐이었다.[* 물론 당시에도 차량용 에어컨이 아예 없던건 아니었는데 조수석 글러브 박스 아래 쪽에 따로 설치 하는 형태였었으며 가격 자체도 고가에 속해서 부유층들 사이에서도 선뜻 장착하기 부담스러운 수준이었다.] [[현대 포니]], [[기아 브리사]] 모두 에어컨이 기본 장착되지 않았으며 고가의 옵션이었다. 택시에 에어컨이 장착된 것이 당시(1978년) 신문에 실릴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참고로 이 “에어콘 택시”는 택시 회사에서 에어컨을 전부 택시에 장착한 것이 아니라(당시 어떤 택시 회사도 그럴 돈 없었다) 한 개인택시 기사가 자기 차에 자비로 장착한 것이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택시에에어컨.jpg|width=100%]]}}}|| ||<:>{{{-1 대구에 『에어콘 택시』 등장}}} || 버스의 경우 창문 외에도 천장에 외부 공기를 받아들이는 수동식 해치가 설치되어 있어, 추울 때는 닫고 더울 때는 여는 방법으로 외부 공기를 유입시켰다. 원시적인 방법이지만 제법 시원했다.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외국에서 들여온 [[고속버스]][* 고속버스가 등장하기 이전인 1968년에도 외국인 관광객들을 유치할 목적으로 일본에서 도입한 [[http://115.84.165.213/photo/view/34092?only=true|이스즈 BU20P]] 관광버스 라던가 스웨덴에서 도입한 스카니아-바비스 관광버스 같은 차종에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었다.]는 에어컨이 장착되어 있었고, 그 당시 일반 시내버스나 시외버스에는 에어컨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열차의 경우 천장 해치는 없지만 내부에 소형 선풍기들이 설치되어 있어 창문과 함께 냉방 역할을 했다. 허나 오늘날의 에어컨에 비하면 냉방 효과는 미미했으며, 한여름에는 만원 버스나 열차 안에서 젊은 여성이 열사병으로 기절하는 일도 종종 발생했다. 지하철의 경우도 1호선 [[초저항]] 전동차까지만 해도 선풍기+창문개방이 냉방의 전부였으나 2호선 개통과 동시에 도입된 [[서울교통공사 2000호대 저항제어 전동차|2호선 전동차]]부터 에어컨 냉방화가 시작되었다. 1호선 초저항 전동차들도 1987년부터 에어컨 냉방화 개조를 받았다. 물론 2020년 기준으로도 에어컨은 결코 싼 가격은 아니지만 소득 향상과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특히 [[1994년 폭염]] 이후로는 언론에서도 에어컨의 필요성을 많이 다루며 에어컨 보급율이 크게 늘었고, 2010년 이후에는 [[2016년 폭염]], [[2018년 폭염/대한민국|2018년 폭염]] 등 매년 계속되는 폭염으로 인해 이제는 '''비싸도 이것만은 사는 준 필수품''' 비슷하게 되어 버렸다. 다만 덕분에 후술되어 있듯 전력을 위한 화석 연료 사용 등으로 인해 에어컨 사용이 지구 온난화에 일부 간접적 영향을 미치는 점도 있으니 아이러니. 또 에어컨을 가지고 있는 가정이 많아졌다고 해도 [[누진세]] 등 전기요금의 부담 때문에 펑펑 틀지 못하는 혹은 안하는 가정은 여전히 많은 편이다.[* 다만 이제 어지간하면 에어컨이 아예 없는 집은 찾아보기 힘들다. 몇년째 기록적인 폭염기 계속되는데다, 습기 문제도 있기 때문에 최대한 아껴틀때는 아껴틀더라도 어떻게든 에어컨 한대는 거실에 장만 해놓는다.]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대한민국 가정용 에어컨 보급율은 1980년대를 기점으로 수요가 늘어나기 시작해 1990년대 들어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인 것으로 추산된다. '벽걸이 에어컨' 등 이른바 1인용 가구의 영향도 있을듯.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