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제키엘 (문단 편집) === [[인신공양]] 떡밥 === [[인신공양#s-2.3|해당 항목]]에서도 확인되지만 오늘날 많은 독자들이 당황할 부분은 20장 25~32절이며, 특히 26절, 31절이다. >그래서 그들은 여러 가지 예물을 우상에게 바쳤다. 제 속에서 나온 첫 새끼까지 바쳤다. 내가 그들을 이런 것으로 부정하게 만들어 벌을 내린 것은 그들로 하여금 내가 야훼임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 >에제키엘 20장 26절([[공동번역 성서|공동번역]]) >바로 지금도 너희는 예물을 바치고 자식들을 불에 살라 바치면서 모든 우상들과 어울려 몸을 더럽히고 있다.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의 물음에 대답해 줄 것 같으냐? 주 [[야훼]]가 하는 말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너희의 문의를 받아주지 않으리라. >에제키엘 20장 31절([[공동번역 성서|공동번역]]) 성서 주석학적으로 본문이 1차적으로 의도하는 것을 살펴보자. 분명히, 성경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저지른 [[인신공양]]의 예가 수없이 많이 담겨 있으며, [[아브라함]]이나 [[입다]]를 제외하더라도 에제키엘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이들을 참조해 볼 때, 당대에는 심지어 [[야훼|하느님]]을 섬기는 방식으로서 인신공양이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생각 역시 공공연하게 퍼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상' 숭배도 같이 언급되는 걸로 봐선 당시의 이스라엘 지경 내의 이방 신들에게 자식을 바쳤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히스기야의 아들인 므낫세왕.] 이건 하느님이 인신공양을 요구했다는 말과는 문장 수준에서 의미 자체가 다른 말이다! 혼동하지 말자. 당시 하느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하느님이 인신공양을 좋아했을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생각했다는 뜻이다. 실제로 거의 대다수의 [[그리스도교]] [[사제(성직자)|사제]]나 신자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인신공양을 행했다는 것, 그리고 성경에 그러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에 대해 부정하지 않고 있다. [[http://blog.naver.com/dadaoang?Redirect=Log&logNo=30014207830 | #]] 따라서 적어도 그 주제에서만큼은 더 이상 이견의 여지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본문이 인신공양을 긍정적으로 보는지 여부를 살펴보자. 일단 본문에서는 인신공양이 야훼의 명으로 나오지만, 또한 분명하게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에제키엘에서 하느님은 인신제사를 부정하게 만드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고, 그렇기에 그런 일을 한 이스라엘 족속을 버려 물음에 대답해주지 않겠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에제키엘에서는 인신 제사에 대해 하느님이 매우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게 확실하다. 인신공양이 이렇게 묘사되는 이유는 히브리 성경의 말하기 방식 때문이다. >기근이나 질병, 전쟁과 같은 온갖 재앙들도 모두 하느님께서 직접 또는 사자{{{-2 使者}}}를 통해서 주시는 것으로 믿었다. 사람이나 가축에게 생긴 질병이나 장애도 하느님이 보내신 것이라 설명한다.{{{-2 (시편 106,15)}}} 예를 들어 불임인 한나를 두고 "주님께서 그의 태를 닫아 놓으셨다"고 한다.{{{-2 (1사무 1,5)}}}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의 탈출을 거부했을 때에는 하느님께서 몸소 이집트인들에게 열 가지 재앙을 보내신다. 가축병과 사람에게 내린 종기{{{-2 (탈출 9장)}}}, 맏배의 죽음{{{-2 (탈출 12장)}}}이 모두 하느님께서 내리신 질병과 죽음이다. 주님께서 질병과 장애도 다스리시는 분이라고 믿었기에 엘리사는 주님꼐 기도하여 적군의 눈을 멀게 하였고{{{-2 (2열왕 6,18)}}}, 주님의 천사는 소돔에서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였다.{{{-2 (창세 19,11)}}} 8세기 예언자 아모수는 아시리아의 침공을 예견하며 이렇게 외쳤다. "성읍에 재앙이 일어나면 주님께서 내리신 것이 아니냐?"{{{-2 (아모스 3,6)}}} 이스라엘 백성에게 재앙을 가져오신 분은 하느님이지 아시리아 군대가 아니다. 아시리아는 주님의 도구일 따름이다. 오직 하느님만이 모든 축복과 저주, 상과 벌의 근원이시다.{{{-2 (아모 3,12-15 참조)}}} >이와 같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든 것이 주님 뜻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믿음은 인간이 저지르는 잘못조차 하느님께서 섭리하신 일로 표현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실수로 사람을 죽인 경우 "하느님이 그의 손에 걸리게" 하셨다고 설명한다.{{{-2 (탈출 21,13)}}}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가겠다는 모세의 청을 완고하게 거부한 이유도 주님에게서 찾는다{{{-2 (탈출 4,21; 7,3; 9,12; 10,20.27; 11,20; 14,8.17 등). 곧 이런 식이다. "주님께서는 파라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다. 그리하여 그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내보내지 않았다."{{{-2 (탈출 10,20)}}} >---- >-송혜경, [[https://www.pauline.or.kr/bookview?code=01&subcode=15&gcode=bo1005133&cname=|《사탄, 악마가 된 고발자》]] 25-26쪽 간단히 말해서, 히브리 성경의 말하기 방식에 의하면, 실수로 사람을 죽였다면 그것은 "하느님이 그의 손에 걸리게"{{{-2 (탈출 21,13)}}} 하신 것이고, 불임은 "주님께서 그의 태를 닫아 놓으셨"기 때문이며{{{-2 (1사무 1,5)}}}, 풍년이든 흉년이든, 나라의 부강이든 쇠망이든, 건강이든 질병이든 모두가 야훼에게 돌려진다. 따라서 인신공양이라는 재앙의 원인은 당연하게 야훼에게 돌려진다. 물론 야훼가 의도하지 않는 악행을 백성이 저지른다는 이야기는 히브리 성경에서 자주 나오는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재앙이 터졌을 때 그 원인을 야훼에게 돌리는 것은 히브리 성경의 관점에서 이상하지 않은 말하기 방식인 것이다. 그러나 불임의 원인이 야훼라고 해서 불임이 긍정적인 것은 절대로 아니듯이, 에제키엘서 본문이 동시대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1차적인 의미는, 인신공양을 긍정적인 것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다음은 가톨릭 주석이다: >25 나는 또 그들에게 좋지 않은 규정들과 지켜도 살지 못하는 법규들을 주었다.^^27)^^ 26 그리하여 그들이 태를 맨 먼저 열고 나온 아들들을 불 속으로 지나가게 하면서 나에게 바친 그 제물들로, 나는 그들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28)^^이는 그들을 질겁하게 하여,^^29)^^ 내가 주님임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 >---- >27) 이스라엘이 생명의 원천인 하느님 율법을 거부하므로, 주님은 그들 성향에 맞추어 그것을 죽음의 율법으로 바꾸어 주셨다.{{{-2 ([[https://en.wikipedia.org/wiki/Moshe_Greenberg|그린버그]])}}} 이는 생명의 율법을 거부하는 백성에게 죽음의 율법을 대신 내리고 질겁하게 하시어(26ㄴ절 참조) 하느님 율법의 소중함을 깨우치게 하시려는 목적이다. 우상숭배자와 타협한 예언자가 혹시라도 우상 숭배자에게 하느님 이름으로 신탁을 내려주게 되면, 그건 주님이 그에게 거짓 메시지를 주신 것이다. 그를 거짓 예언자로 만들어 징벌하시기 위함이다. 또는 본 절을 시편 81,12-13의 기록처럼, 고집스러운 이스라엘을 제지하지 않고 내버려 두셨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 >28) 앞 절에 언급된 죽음의 율법이 인신제를 가리킴을 알 수 있다. "태를 맨 먼저 열고 나온 아들"을 제물로 바친다는 말은 '맏배 봉헌 규정'을 떠올리게 한다. 본디 사람의 맏아들은 짐승의 맏배와 달리 대속해야 했다.{{{-2 (탈출 13,14)}}} 그런데 여기서는 죽음의 율법에 맞게 하느님이 맏아들을 희생시키는 이스라엘을 내버려 두신다. 모세오경에는 광야 유랑 동안 이런 사건이 발생했다는 기록이 없지만, 본 신탁은 초창기부터 이어진 백성의 탈선을 강조하기 위해 역사적 정확성은 고려하지 않은 듯하다. > >29) 하느님이 이스라엘에게 이런 잔인한 관습을 허락하신 이유는 반항만 하는 백성을 벌하시려는 데 있다. "그들을 질겁하게 하여" 생명의 율법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다. 이는 하느님이 파라오의 마음을 완고하게 만들어 이집트를 벌하신 다음{{{-2 (탈출 11,9-10)}}} 당신이 주님이심을 깨닫게 하신 일과 유사하다.{{{-2 ([[https://en.wikipedia.org/wiki/Moshe_Greenberg|그린버그]])}}}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을 거부하자 그의 마음을 더욱 완고하게 만드신 다음 그 버로 이집트 맏배를 치셨듯이, 생명의 율법을 거부하는 이스라엘 백성도 맏아들을 잃는 벌을 받게 하신다. 또는 25절 주해에 제시된 두 번째 해석에 따라 풀이할 수도 있다. 이스라엘이 생명의 율법을 거부하므로, 하느님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죽음을 자초하고 그 죽음에 질겁하도록 내버려 두셨다. >---- >-김명숙, [[https://www.pauline.or.kr/bookview?code=01&subcode=06&gcode=bo1004371&cname=|《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33: 에제키엘서》]], 바오로딸, 2018, 228-229쪽[* 저자인 김명숙 박사는 [[https://en.wikipedia.org/wiki/Moshe_Greenberg|라삐 모셰 그린버그(Moshe Greenberg)]]가 강의한 히브리대학교(예루살렘)에서 구약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다음은 개신교 주석이다: > 하나님께서 장자를 예물로 드리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을 더럽히신 이유는 무엇인가? > > 1) 그것은 그들로 멸망케 하여 하나님을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셨기 때문이다. > 2) 즉 그들로 하여금 가증스럽고 잔인한 행위를 하도록 방임하심으로써 스스로 파멸에 이르도록 하시는 것이다. > 3) 또한 그렇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심판자가 되시며 주관자가 되신다는 것을 알리시기 위함이다. > > 《성경연구시리즈 9: 예레미야~에스겔》, 강병도, 기독지혜사, 1997, p.476 > 여기에는 여호와의 법에 대한 에스겔의 독특한 표현들 가운데 하나가 나온다. 즉 형벌을 내리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 볼 때 그에게 법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녀를 제물로 바치도록 오도하는 악을 직접 부추기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그것이다. 여기서는 그것과 똑같은 표현이 사용되고 있는 계약책의 한 대목 곧 출애굽기 34장 19~20절이 상정되고 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즉 "모태를 깨고 나오는 모든 것, 다시 말해 암컷의 첫새끼, 곧 만물은 나의 것이다" 가 그것이다. 달리 해석할 길이 없는 절대적인 것처럼 들리는 이 규정은 그것의 실행을 위해 소와 양의 맏배만이 제물로 바쳐질 수 있고... ''( 중략 )'' ...장자도 대체 동물을 바침으로써 꼭 같이 몸값을 치루어야 한다. > > 비록 현재 형태의 이 세부 규정이 나중에 비로소 법률 본문에 삽입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언제나 본 규정에 대한 유효한 해석으로 효력이 있었다는 것도 의문의 여지가 없다. 장자를 제물로 바치는 행위가 널리 행해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이스라엘의 관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구약 성서는 바로 장자에 대한 자랑과 기쁨을 보도하고 있다. 예를 들면 창세기 49장 3절이 그러한 경우이다. ( 구약성서의 인신제사에 대해서는 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 I, S, 88~90 을 참조하라 ! ) > > 그런데 만물을 제물로 바치는 것에 대한 이 절대적인 것 같은 본 규정이 예컨대 [[출애굽기]] 22장 28절에는 "너는 너의 장자를 나에게 바쳐야 한다" 로 되어 있을 뿐 세부 규정에 의해 보충되고 있지 않은데, 특정한 상황에서 인간 장자를 제물로 바칠 필요가 있는 듯이 보이는 경우 이처럼 그 규정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라고 촉구할 수 있었다는 것도 꼭 같이 납득이 된다. 가나안의 관념에 따르면 예컨대 전쟁에서 극도의 위기에 빠진 것과 같은 경우가 바로 그에 해당한다. ''( 중략 )'' > > 그러나 이와 같은 가나안의 관념은 주전 8~7세기에 아시리아 지배하에서 혼합주의가 점점 더 만연해짐에 따라 야훼 예배와 바알 종교의 자연숭배가 상당한 정도로 동화되기 시작하던 그때에 비로소 이스라엘에게는 위험스러운 유혹이 되었다. 이방 군주에 의한 착취와 농민의 전반적인 빈곤화로 인해 극심한 압력을 받을 때 인간 장자를 제물로 바치는 것이 성난 신을 달래는 가장 효과적인 처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신의 자비를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 중략 )'' > > 이 당시에 사람들은 예레미야 2장 34절, 3장 24절, 7장 31절, 32장 25절에도 언급되는 이 끔찍한 제사를 정당화하기 위해 장자를 제물로 바치는 것에 대한 절대적인 듯한 법 규정을 증거로 끌어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에스겔도 이와 같은 법의 오용을 알고 있었다. ''( 중략 )'' 하나님은 그의 법 자체 내에 걸림돌을 두었다. 전도된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이 걸림돌로 인해 제사에서 경건한 행함을 식별해 낼 수 있다고 믿게 되지만, 이 제사는 무섭기 짝없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을 주지 않는 무익한 계명은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법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뜻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스라엘은 길을 잃었을 때 그 법에 걸려 찢기우고 상처를 입으며, 이로써 자연 숭배는 생명에 전적으로 적대적이라는 것이 판명된다. 이 계명을 끌어대는 사람은 하나님의 보응이 복종하지 않는 백성에게서 이 계명을 통해 구체화되었다는 판단만을 얻을 뿐이다. > > 《국제성서주석 에스겔, Walter Eichrodt, 한국신학연구소, 1994, pp.321~323》 > 에스겔은 선치 못한 율례와 능히 살게 하지 못할 규례와 그들로 멸망케 하는 율법의 예로 구체적으로 장자를 화제로 불살라 바치라고 한다. 같은 책망이 이스라엘 역사를 알레고리로 말하는 16장과 23장에 또 나타난다. ''( 중략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 는 말씀에 근거한다. ([[출애굽기]] 13장 1~2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장자 대신에 우양의 제물로 대속하라고 가르치셨다. (출애굽기 13장 11~13절, 34장 20절, 민수기 18장 15~17절) 특히 제사 전통에서는 레위인을 하나님이 모든 이스라엘 초태생 대신으로 취하신다고 말한다 ([[민수기]] 3장 12절, 8장 14~19절) 성경에서는 사람을 화제로 제사드리는 것을 철저히 금하신다. ([[신명기]] 18장 10절, 12장 20~32절, [[레위기]] 18장 21절, 20장 1~5절) > >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에서는 아들을 불살라 화제로 드리는 풍속을 가나안 땅에 들어간 뒤에 주변 국가에서 배우게 된다. ''( 하략 )'' > > 《에스겔의 예언과 신학 연구》, 권오현, 한마음세계선교회 출판부, 2007, p.344 이에 따르면, 하느님은 이미 창세기 및 출애굽기 때부터 초태생에 대한 자랑과 기쁨이라는 관점을 갖고 있으며, 그리고 권오현에 따르면, 이에 더하여 초태생을 대신하여 드려질 우양의 제물을 통한 대리적 제사 ㅡ 즉 인신공양이 아닌 대리 제물 ㅡ 그리고 근본적으로 초태생을 대신할 존재인 "레위인" 을 배정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 즉 "장자를 드리라"는 애매모호한 명령은, 기본적으로 위와 같은 법령들에 의해 부연되고 있으나, 종교혼합주의가 당연시되는 소위 "타락한" 환경에서는 이것이 무시되고 문자주의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즉 기존의 율법에 가나안의 사고관이 융합되어 인신공양이라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는 것. 이것이 곧 "여호와가 자기 법 내에 걸림돌을 두는" 방식이라는 것이고 이것이 이 대목에 대한 Eichrodt의 이해이다. 더불어, 강병도에 따르면 하느님이 "시켰다" 고 표현하는 것들은 사실 "방치, 방임" 에 더 가까운 개념으로, 이렇게 함으로써 스스로 파멸에 이르도록 내버려 두었다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결국 강병도는 이것이 하느님이 적극적으로 "명령했다, 하도록 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렇게 하는 것을 "내버려 두었다"에 가깝다고 주장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