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트루리아 (문단 편집) == 기원 == 금발벽안으로 구성된 원시 인도유럽인들이 기원전 3000년경에 우크라이나 동부 초원이나 캅카스 북부 지역에서 유럽으로 유입되기 전에 [[백인|코카소이드]]이자 에트루리아인의 조상인 Tyrsenian이 바스크인, 미노아인의 조상인 Vasconic, Eteocretan과 함께 [[석기 시대|신석기 시대]]인 기원전 8000년경부터 농경 생활로 남서유럽 전체에 살고 있었으며 이들은 현대의 남유럽인이나 중동인[* 북아프리카와 레반트 지역이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은 데다가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있는 이베리아 반도와 [[이탈리아]] 남부의 경우에는 중세 시기엔 아랍인의 직접적인 지배도 받았다. 그러다가 레콩키스타 등으로 아랍인은 쫓겨나거나 스페인인에 동화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중해 연안의 중동 국가들은 라틴족과 역사적으로나 유전적으로 동질성이 짙어 [[흑발갈안]]이 많다.]처럼 [[흑발갈안|검은색 계열의 곱슬머리를 가지고 있으며 피부와 눈은 금발벽안인 사람에 비해 약간 까무잡잡했다.]] 그러나 원시 인도유럽인이 위 세 민족보다 금속 도구를 가장 빨리 발명했고 전차를 가장 먼저 활용했기 때문에 금발벽안이 유럽 전체에 퍼질 수가 있었으며 이들의 쓰던 언어는 고대에 멸종되어 바스크어만 현대에까지 전해진 상태이다. [[파일:Italy-Villanovan-Culture-900BC.png]] 사료가 적고, 기록이 확실하지 않아 여러모로 논쟁이 많다. 기원전 900년~기원전 700년부터 기원전 700년~기원전 600년까지 [[이탈리아 반도]] 중북부에 있었던 [[https://ko.wikipedia.org/wiki/%EB%B9%8C%EB%9D%BC%EB%85%B8%EB%B0%94_%EB%AC%B8%ED%99%94|빌라노바 문화]](Villanovan culture)가 기원으로 강력히 추정된다. 빌라노바 문화는 [[이탈리아]] 중북부 등을 중심으로 성립된 초기 [[철기 시대]] 문화로 후기 [[청동기 시대]](기원전 1300년~기원전 700년)부터 있었던 중앙 유럽의 [[https://en.wikipedia.org/wiki/Urnfield_culture|언필드 문화]]의 분파이다. 빌라노바 사람들은 이탈리아 반도에 철기 기술을 전수했으며 [[https://en.wikipedia.org/wiki/Proto-Villanovan_culture|빌라노바 문화 이전]]부터 내려오던 장례법으로 화장을 지냈고 시신을 태운 재를 독특한 이중 원추 모양을 한 유골 항아리에 담아 묻었다. 유골함은 토기 혹은 청동제였다. 향후 빌라노바 문화는 에트루리아 문명이 근동, [[그리스]]와 구별되는 독특한 요소를 가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아나톨리아]]의 [[리디아]]에서 유래한 종족이라고 하나, 디오니시오스는 에트루리아인은 [[이탈리아]]의 토착민족이라고 언급한다. 2007년의 유전자 조사 결과 에트루리아인들은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기근을 피해 이주해 왔다는 주장이 나왔는데, 이는 [[캅카스]] 등지에서 주로 확인되는 Y 염색체 [[하플로그룹]] G의 비중이 높다는 데 근거한 것이다. 그 반면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3566088/|2013년 자료]]에서는 mtDNA 분석 결과 아나톨리아인과의 유전적 연관은 6~7천 년 전에나 있었으므로 에트루리아 문명과의 연관은 없을뿐더러, 고대 에트루리아인의 유전자가 아나톨리아인보다는 현대 유럽인과 더 가깝다고 보았다. 이 두 해석의 차이는 근본적으로 Y 염색체에 의한 하플로그룹 분석과 mtDNA에 의한 하플로그룹 분석의 성격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 Y 염색체는 부계로 유전되는 반면, mtDNA([[미토콘드리아]] DNA)는 모계로 유전된다. 임신과 육아 등의 문제 및 [[신석기 시대]] 이후 사냥-채집 역할의 분화로 인해 정복이나 이주 등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일반적으로 남성이기 때문에, Y 염색체 자료는 정복이나 이주 등을 더욱 민감하게 반영하는 반면 mtDNA 자료는 비교적 보수적이고 토착적인 성향을 많이 반영한다. 특히 유럽에서 [[동기 시대|순동기]]~[[청동기 시대]] 이주해온 [[하플로그룹]] R 계통의 Y 염색체 자료에 비해 mtDNA 자료가 신석기 시대 이후 정착한 토착 유럽인의 체질을 더욱 많이 반영한다는 것은 에트루리아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 걸쳐 일반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두 자료는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수의 외래 정복자가 우위를 점하였으되 실제 구성원 다수는 토착민이었다는 해석을 지지하는 상보적인 자료일 수도 있다. 그것이 아래 언어 자료의 현황과도 부합하는 면이 있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