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에티오피아 (문단 편집) == [[에티오피아/역사|역사]]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에티오피아/역사)]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악숨 왕국]]은 한때 [[마니교]]의 창시자 [[마니]](216년~274년, 3세기 살았던 인물)가 [[로마 제국]]·[[사산 왕조|페르시아]]·[[위진남북조시대|중국]][* 마니가 살던 시절 중국은 [[삼국지|분열기]]였다.]과 함께 4대 강국이라 했을 정도로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다만 실제 국력은 영토·인구·군사력·기술 등을 따졌을 때 저들에 비해 한참 부족했다. 악숨 왕국은 로마의 영향력 아래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군사 지원도 받았으며, 당시 페르시아에서 인도·중국으로 가는 길목이었던 [[홍해]][* 19세기에 영국이 [[수에즈 운하]]를 뚫은 것도 이 홍해 루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함이었으며, 현대 미국도 홍해를 중요하게 여기고, 중국 역시 이 곳을 핵심 이권이 달린 지역으로 여겨 최초의 해외 군사기지를 이 지역에 위치한 지부티에 건설하였다.]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와 인도·중국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했던 페르시아에 사는 마니가 악숨 왕국을 과대평가했을 수도 있다. (애초에 마니는 3세기 페르시아에 살던 인물이기에 그가 내린 평가가 무작정 정확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악숨 왕국은 당대 홍해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던 [[로마]]와 이해관계가 맞아 동맹을 형성하면서 국력이 신장되었다. 아프리카에서 식민 지배를 당하지 않은 국가로 유명하다. [[제1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에서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군에게 압도적인 패배를 당하면서 유럽 열강 주제에 오히려 배상금과 땅까지 뜯기는 등 이탈리아의 체면을 잔뜩 구겨줬던 사실은 에티오피아 내에서 유명하다. 다만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당시 이탈리아에게 패배하여 5년 정도 강점된 적이 있다. ~~비시 프랑스?~~ 이후 영국군 주도 연합군에 의해 이탈리아가 패배하면서 1941년 해방된 것이다. 그래도 강점되던 기간이 짧고 아디스아바바 함락 이후로도 이탈리아가 패망하는 순간까지 에티오피아의 [[이탈리아군의 졸전 기록|친황실 저항세력이 날뛰는걸 막지못해]] 완전히 식민화됐다고 보기도 어렵고,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 크게 비교되기 때문에 에티오피아는 식민 지배를 당하지 않은 것이라 여기는 사람이 많다.[*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라이베리아]]도 '식민지화를 받지 않은 아프리카 국가'로 함께 거론된다. 다만 독립성의 경우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1931년]] [[웨스트민스터 헌장]]으로 사실상 독립하기는 했지만 아직 대영제국에 속해 있다고 볼 수 있었으며 90년대 이전까지 소수의 백인 이주민들이 다수의 아프리카 흑인 토착민들을 누르고 통치하는 나라였으니 굳이 구분하자면 식민지라기보단 위성국에 가까웠다. 라이베리아의 경우, [[미국]]의 해방 노예들이 건너와 원주민 흑인들을 노예로 삼아 만든 나라로 미국의 비호를 받았기에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실제로 강점 기간 내내 이탈리아 군대는 에티오피아 전역을 장악하지 못하고 저항 세력의 게릴라전에 시달렸으며, 일부 지역은 1941년 영국군 주도 연합군이 에티오피아로 진격할 때까지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를 지지하는 에티오피아 저항 세력이 장악하고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1947년 이탈리아와 에티오피아를 포함한 연합국 진영 간의 '평화 협정(Treaty of Peace)'에서 이탈리아의 강점은 법률적으로 그 합법성이 부정되었고, 오히려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에 전쟁 배상금 성격의 배상금을 지급해야만 했다. [[아프리카]]에선 나름 독보적인 이런 위치 때문인지, 한때 에티오피아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는 아프로 내셔널리즘의 구심점이 되어 종교적 숭배 대상([[자메이카]]의 [[래스터패리교|라스타파리 운동]])으로 여겨질 정도였으며, 식민지에서 벗어난 아프리카 각국에서 새 국기를 제정할 때도 에티오피아의 국기 색(빨강, 노랑, 녹색)을 참고로 하는 경우가 아주 많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