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엘리사 (문단 편집) === 시대의 한계 === 현대 성서비평학 관점에서 보면 고대 히브리인들의 시대적 한계를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겠다. 무신론자들이 [[야훼|신]]의 윤리성을 비판할 때 가나안 정복과정에서의 학살과 함께 자주 인용되는 사건이다. 순수하게 [[신학/기독교|그리스도교 신학]]으로 보더라도, 알레고리를 모조리 무시하고 구약 시대 사람들이 생각한 윤리관념을 무작정 당대에 적용하려던 건 중세 때도 하지 않던 짓이다. 중세 신학에서는 이러한 것들을 당연히 알레고리로 해석하고 넘어갔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신학자들과 평신도/일반 성직자들 간에는 괴리가 컸고 근본주의적인 해석은 언제나 존재해왔던 것은 기억해야 한다.[* 심지어 아우구스티누스도 문자주의적 해석을 경계했을 정도로 항상 존재해 왔다.] 게다가 해당 구절은 기독교 내에서도 딱히 중요한 구절로 여겨지지도 않으며 자주 인용되지도 않아서 미화고 해석이고 할만한 것도 없다. 본 문서가 길어지며 해석 문단까지 붙은 것은 한국 인터넷이서 대머리 놀리기 밈으로 발굴된 영향이다. 사실 무엇보다 성경에 대해 고대문헌으로써 분석적 접근법을 거부하고 반기독교적 태도로 접근하는 것도 이 논란을 길게 만든다. 단군 신화를 보고 '고조선인들은 곰이랑 수간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해석하지 않고 '곰을 숭배하는 부족이 외부에서 온 이주민 집단과 결합해 국가를 세웠다'고 해석하는 것이 학문적 접근인 것이다. 이렇게 학문적인 방법으로 접근하여 원의도를 읽는다면 해당 구절의 의미는 '다시는 예언자를 대머리라고 놀리지 마라' 정도가 될 것이다. 고대 [[마르키온]]이 구약의 윤리적 논란을 지적했다고 하지만, 마르키온은 구약에 대해선 전반적 지식이 부족하여 신약만 추앙한 부류였고 당대 기독교 정통에서도 대단히 부정적인 판단을 받았기에 시대적 한계에 대해 그의 견해가 어떤 권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