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엘리사 (문단 편집) === [[예후]]의 역성혁명 === 벤하닷 2세와의 전쟁 이후, 북이스라엘 왕 여호람과의 사이가 벌어진 엘리사는 본격적으로 여호람을 비롯한 오므리 왕조의 일가들을 모조리 숙청할 계획에 돌입하게 되는데, 먼저 그는 다마스쿠스에서 머물던 도중 아람 왕 벤하닷 2세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마침 엘리사가 다마스쿠스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벤하닷 2세의 신하 하사엘이 예물을 들고 찾아와 왕의 병이 나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엘리사의 반응은 이러했는데, 먼저 한 대답은 '병은 낫겠지만 그는 죽을 거야'였다. >열왕기하 8장 11-13절(공동번역성서) >그리고 나서 하느님의 사람은 하자엘이 어리둥절해 할 정도로 얼굴을 굳히며 탄식하다가 마침내 울음을 터뜨렸다. "선생님, 어찌하여 우십니까?" 하고 하자엘이 묻자 엘리사가 대답하였다. "나는 그대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장차 어떤 악한 일을 할지 그것을 알고 이렇게 우는 것이오. 그대는 이스라엘 요새에 불을 지르고, 젊은이들은 칼로 쳐죽이고, 어린아이들은 메어쳐 죽이며, 임신한 여인의 배를 가를 것이오." 하자엘이 "소인은 개보다도 나을 것이 없는 몸입니다. 그런데 어찌 그렇게 엄청난 일을 저지른다고 하십니까?" 하고 말하자 엘리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야훼]]께서 보여주신 환상 가운데서, 그대가 아람의 왕임을 보았소." 이 말을 들은 하사엘은 그 즉시 벤하닷 2세에게 돌아가 왕이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준 뒤, 이튿날 이불을 물에 적신 후 왕의 얼굴에 덮어서 벤하닷 2세를 질식사시켜 암살하고 스스로 아람 왕에 등극한다. 새로이 왕위에 오른 하사엘은 아람의 세력을 크게 키우면서 북이스라엘 침공에 더욱 박차를 가했는데, 길르앗 라못에서 아람의 계속된 공세를 막던 여호람(요람)은 부상을 입게 되었고, 장군 [[예후]]에게 전권을 위임한 채 이스르엘로 물러났다. 이 당시 남유다의 왕은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북이스라엘 왕 여호람과는 동명이인)[* 참고로 여호사밧이 죽고 이 사람이 등극하자마자 에돔이 반기를 들었다. 이후 에돔은 이 양반의 증손자인 아마샤 대에 이르러서야 다시 남유다에 복속된다.]의 아들이자, 이세벨의 딸인 아달랴의 아들 아하시야로 여호람에겐 조카였다. 그는 삼촌인 여호람이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 병문안 차 이스르엘로 찾아왔는데, 엘리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길르앗 라못에 주둔하고 있던 예후에게 자신의 시동을 보냈다. 시동은 예후를 은밀히 만난 뒤 그에게 기름을 부으며 이렇게 말한다. > 열왕기하 9장 7-10절(공동번역성서) >내가 이세벨의 손에 죽은 예언자들뿐 아니라 나의 모든 종들의 원수를 갚으리라. 그러니 너는 네가 섬기던 아합의 가문을 쳐부수어라. 내가 아합 가문에 속한 사내 녀석들은 종이든 자유인이든 씨도 남기지 않고 쓸어버리리라. 그리하면 아합의 온 가문이 망하리라. 나는 아합의 가문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가문이나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가문처럼 만들리라.[* 여로보암 왕조와 바아사 왕조도 가문이 이렇게 멸족당했다.] 이세벨의 시체는 묻어주는 사람이 없어, 이즈르엘에 있는 제 땅에 버려져 개들이 뜯어먹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젊은이는 문을 열고 도망하였다. 즉, 엘리사는 '''오므리-아합 왕조의 몰살을 북이스라엘의 새 왕, 예후에게 지시'''한 것이다. 예후가 이 사실을 모여있던 자신의 측근들에게 밝히자 그 즉시 측근들은 자신의 옷을 벗어서 예후의 밑에 깔고 나팔을 불면서 예후를 왕으로 모시며 오므리 왕조 토벌을 적극 지지한다. 예후는 즉시 여호람과 아하시야가 있던 이스르엘로 회군하였는데 하필 이스르엘은 아람 원정에서 대패하여 요양 중인 여호람 왕과 문병 온 아하시야가 있는 곳이었고, 예후가 온다는 소식을 들은 두 왕이 직접 병거를 타고 그를 맞이하러 나갔다. 하지만 이미 반역을 천명한 예후는 두 왕이 나타난 것을 보고 '이게 웬 떡이냐!' 를 외쳤고 여호람이 "좋은 소식 좀 있수?" 라고 묻자 "님 엄마가 끌어온 우상들 때문에 온 나라가 무당집이 됐는데 무슨 놈의 좋은 소식?" 이라고 되받아쳤고, [[응 니 애미]] 드립을 듣고 낌새를 눈치챈 여호람이 마차를 돌려 도망치자 활을 쏴서 여호람을 쏘아 등을 꿰뚫었다. 여호람을 관통한 화살은 그의 염통을 뚫고 나왔으며 그는 병거 위에서 그대로 즉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여호람이 죽은 곳은 다름 아닌 그의 부친인 [[아합]]이 나봇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포도원이 있던 곳이었다. 죽은 여호람의 시체는 본보기로 그 포도원에 던져졌다. 엘리야가 승천하기 전에 아합에게 했던 예언의 앞구절이 적중한 것.] 거기에 멋모르고 숙부 따라 나온 남유다 왕 아하시야는 식겁하여 도망쳤지만 역시 므깃도에서 발각되어 예후에 손에 척살당했다.[* 부상을 입고 도망가다가 죽었다고도 한다.] 한편 그 당시까지 살아있던 아합의 아내 이세벨은 예후가 반란을 일으켜 여호람과 아하시야를 죽였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는데,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차분히 창 아래에서 예후를 내려다보며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느냐.'라고 쏘아붙였는데 이는 오므리 왕조의 창건자이자 아합의 부왕인 오므리의 손에 의해 7일 만에 권좌에서 내쳐진 반란자, 시므리에 빗대어 예후를 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후가 "내 편이 될 자 누구냐!"라고 외치자 이세벨의 곁에 있던 내시 두 세명이 이세벨을 붙들어 그대로 창문 바깥으로 집어 던져버렸고, 그 피가 담벼락과 말에게 튈 정도였다. 예후는 이세벨의 시체를 짓밟아 훼손시킨 후 이스르엘 땅에 매장했는데, 매장될 때 이미 이세벨의 두개골과 손바닥 외엔 남는 게 없었으며, 매장된 시체마저 개들에 의해 뜯어먹히는 바람에 그 시체가 이세벨이라고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것이 엘리야가 했던 예언 뒷구절의 적중이었다.] 예후의 숙청은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예후는 아합의 아들 70인을 모시던 자들에게 편지를 보내 그들이 모시던 왕자 70인의 목을 바치게 하였고, 남유다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 42인 또한 하나 하나 찾아내서 참살함으로써 오므리 왕가 일족을 모조리 청소했다. 그리고 이세벨이 추진하고 있던 페니키아 계의 바알 사제 집단 역시 모조리 잡아 숙청함으로써 오므리 왕조의 흔적 역시 말끔하게 지우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오므리 왕조의 잔재는 끝내 없어지지 않았는데 남유다로 시집간 아합의 딸 아달리야는 이 소식을 접하고 자신이 남유다 여왕이 된 후 다윗 왕조의 씨를 말려버리려 하다가 끝내 요아스를 옹립한 세력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러나 그 요아스가 자신의 '''외손자'''였으며 요아스의 후손들이 남유다가 멸망할 때까지 유다의 왕위를 이어나갔기에 요아스부터는 오므리 왕조의 혈통이 흐르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배후는 바로 엘리사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