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엘아리쉬 (문단 편집) == 개요 == [[이집트]] 동북부 북시나이 주의 도시. 인구는 17만명으로, [[시나이 반도]]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카이로에서 동부쪽으로 약 300km 떨어져 있으며, 동쪽으로 40여 km를 더 가면 [[가자 지구]]의 남단인 라파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아리쉬 (عريش)는 아랍어로 '대추야자 나무로 만든 집'을 의미하는데, 일대에 즐비한 대추야자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이름처럼 척박한 시나이 반도에서 보기 드물게 큰 [[오아시스]]와 시가지를 관통하는 [[와디]][* 장마철에 일시적으로 생기는 사막의 강]가 위치하여 고대부터 주거지가 형성되었다. 해변 역시 아름다워 고급 리조트가 여럿 존재한다. 입지 덕에 고대부터 이집트 세력이 서아시아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였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절 건설한 리노코루라가 세워졌고, 후일 베두인들이 그 폐허에 정착하였다. 1118년에는 [[예루살렘 왕국]]의 [[보두앵 1세]]가 [[파티마 왕조]]령 이집트를 정복하려 출정했다가 이곳에서 병사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1560년 [[오스만 제국]]이 새 성채를 세우며 현대의 도시가 시작된다. [[나폴레옹 전쟁]] 때에 프랑스 군이 11일간 포위한 끝에 1799년 2월 11일 도시를 점령하였다. 다만 얼마 후 영국군의 도움으로 오스만 제국에 수복되었다. 다만 [[세계 1차 대전]] 당시 영국군의 포격으로 당시 성채는 파괴되었고, 그후 영국의 팔레스타인 원정 기지가 되었다. 한편 [[시오니스트]] 테오도르 헤르첼은 [[팔레스타인]] 이주에 대해 독일과 오스만 측이 반대하자 인구가 더 희박한 엘아리쉬 일대에 유대 국가를 건설할 것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1차대전 후 이집트에 소속된 엘아리쉬는 1956년과 1967-79년 [[이스라엘]]에게 점령당하였고, 1958년 12월에는 양국 공군 간의 공중전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2017년 11월 엘아리쉬 모스크에서 테러가 발생해 305명이 사망하였다. 2021년 2월에는 6명의 주민이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ISIS]]에 의해 살해되었다. 교육 기관으로는 엘아리쉬 대학과 시나이 대학이 있고, 도시 남쪽 교외에 엘아라쉬 국제공항이 있다. 휴양도시 성격이라 항구는 조촐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