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여기사 (문단 편집) == 개요 == 女騎士 Female Knight 여기사 [[성별]]이 [[여자]]인 [[기사(역사)|기사]]. 전근대에는 [[여성]]의 사회 참여가 많지 않았고 그 중에서도 [[전쟁]]은 [[남성]]들만의 영역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여기사가 없었을거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중세]] 이래로 [[그리스도교]] 문명권은 타 문명에 비해 여성의 지위가 높은 편이었고, 특히 [[서유럽]]은 자유민=전사=귀족 작위이라는 관념이 있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작위가 여성에게 주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던지라,[* 게르만족에게는 여성의 작위 상속을 인정하지 않는 [[살리카법]]이 있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잘 지켜지지 않았다. 또한 애초에 살리카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지역 역시 많았다. 사실, 모든 게르만족이 여성의 작위 상속을 인정하지 않은것도 아니고, 여성의 작위 상속 금지는 프랑크족만의 법이였다. 자세한 것은 [[살리카법]] 항목 참조.][* 확실한 것은 중세 유럽은 동시대 타 지역에 비해 여성의 가문 상속 비율이 높은 편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타 지역에 비해 높았다는 것이지 결코 남성과 유사한 대접을 받았다거나 여성의 인권이 현재만큼 높았던 것은 아니다. 중세를 현대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드물게나마 여성이 기사로서 종군하는 경우가 생겼다. 또한 [[가톨릭]]의 [[십자군 전쟁]] 시기는 [[이슬람]]에 대한 공격성이 하늘을 찔렀고 기사단은 곧 [[수도자]][* 남성 [[수도자]]는 수사(修士)고, 여성 수도자는 수녀(修女)다.]들이었으므로 여성 성기사도 나타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여기사단으로는 자귀 기사단(Orden de la Hacha)이나 영광스러운 성 메리 기사단(Order of the Glorious St. Mary) 등이 있었다. 유명한 [[튜튼 기사단]]과 [[구호 기사단]]에도 여기사가 봉직하는 전통이 있었다. [[네덜란드]]에는 [[국왕]]이 직접 창설한, [[귀족]] 여성이나 [[자격]]을 입증한 [[평민]] 여성만이 입단할 수 있는 [[기사단]]이 있었고, 영국의 [[가터 기사단]]도 68명의 귀족과 [[왕족]] 여성의 입단을 허용하였다. 대부분은 [[행정]] 업무나 [[기사단]] 내의 규율 유지,[* 판관 및 중재역을 뜻한다. 일종의 사내 [[경찰]] 같은 직위다.] 부상자의 [[간호]] 등 보조적인 역할을 맡았고 교육받은 [[귀족]] [[여성]]에게 작위를 수여하기 위한 명예직인 경우가 많았으나, 실제로 여기사들이 일선에 나가 싸운 경우도 많았다. [[십자군 전쟁]]에 종군한 자귀 기사단이나, [[바르셀로나]]에서 [[무기]]를 들고 [[갑옷]]을 입은 채 성벽 위에서 [[이슬람]] 대군에 맞서 용맹히 싸워 자손들에게 [[기사(역사)|기사]] [[작위]]를 물려줄 수 있는 특권을 얻고 평생 [[세금]]을 면제받은 여성들로 이루어진 토르토사 기사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이쪽은 토르토사의 군대가 빠진 틈에 빈집털이 온 무슬림 군대를 여성 수비대가 격퇴하고, 여자들 싸우는 동안 뭐 했냐는 욕을 먹던 영주가 수비대에게 기사 칭호를 뿌렸다.) 앞서의 [[튜튼 기사단]]이나 [[구호 기사단]]을 비롯해 성 요한 기사단, [[성전 기사단]], [[몰타 기사단]], [[로도스 기사단]] 등 여러 이름있는 [[기사단]]도 십자군 전쟁에서 직접 무기와 [[방패]]를 들고 싸워 스스로 큰 공훈을 세운 여성들을 발탁하여 정식 기사로 서임, 작위를 수여했다. 영광스러운 성 메리 기사단은 볼고나 백작이 여성을 위한 [[가톨릭]] 기사단을 창설하려는 큰 뜻을 품고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허가를 받아 창설하였으며, 오직 여성만으로 이루어진 유일한 종교 기사단이었다. [[의무병]]이나 [[행정]] 또는 명예직이 아닌 실제 일선에서 싸운 여기사들은 강인하고 기골이 장대한 [[인간 흉기]]였을 것이다. [[기사(역사)|기사]] [[가문]]의 자제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기사가 되기 위한 코스를 밟으며 정식 [[훈련]]을 받은 경우라면 말할 것도 없고, 그렇지 못한 경우라 하더라도 일선에서 종군하며 무훈을 세우려면 웬만한 [[남성]]과 대등하거나 능가하는 [[체력]]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남성 동료들과 전혀 다름없는 대우와 함께 깊은 존경을 받았으며, 남성 기사와 동일한 [[의무]]와 [[명예]]를 짊어졌다. [[얼음과 불의 노래]]의 [[타스의 브리엔느|브리엔느]]는, 작품의 모든 것이 그렇듯이 외모에서 성품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고증]]을 거쳐 창작된 인물인 것이다.[* 물론 [[웨스테로스]]가 현대인의 [[편견]]보다 훨씬 [[여성]][[인권]]이 높은 편이었던 [[현실]] [[중세]]보다 가부장적이라 여성이 [[작위]]를 받을 수 없었고, 동료들에게도 존중받지 못하고 끝까지 멸시받는다는 차이는 있지만 인물상 자체만 놓고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여기사가 되는 케이스는 크게 전공을 세우거나, 혹은 [[여성]]의 입단을 허가하는 [[종교]][[기사단]]에 입단하는 케이스로 나눌 수 있다. 전공을 세운 여성들이 기사단에 편입된 경우는 최초의 여기사단 중 하나인 자귀 기사단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1149년]] [[바르셀로나]] [[백작]]이 [[이슬람]] 세력과 치열한 [[전쟁]]을 벌일 당시에 토르토사 성에 살던 여성들은 이슬람 군에 맞서 용감히 싸웠고 그 결과로 토르토사 성을 지켜냈고 바르셀로나 백작은 그 공로를 인정해서 당시 [[전투]]에서 공을 세운 여성들을 모아 [[기사(역사)|기사]] [[작위]]를 수여하고, 그들의 여성 자손들에게 그 기사 작위를 물려줄 수 있는 특권 및 면세권을 하사했다. 이 밖에도 개인적으로 전투에서 용감히 싸워 기사 작위를 받은 여성들도 드물지만 가끔 등장한다. 예를 들어 [[십자군 전쟁]]에서도 일부 여성들은 직접 [[무기]]와 [[갑옷]]을 들고 [[사라센]] 군과 싸운 사례가 존재한다. 여성만을 받아들인 종교기사단은 "영광스러운 성 메리 기사단"이 대표적이다. [[1261년]] 볼고나 백작이 당시의 [[교황]] 알렉산데르 4세의 허가를 받아 세워진 이 기사단은 단원 전부가 여성으로 이루어진 가톨릭 기사단이었다. 그러나 이 여 기사단은 1588년 당시 교황이던 [[식스토 5세]]가 폐지하게 된다. 이 밖에 [[남자]] [[기사단]]에도 [[여성]]의 입단이 허용되는 곳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기사단은 [[튜튼 기사단]] 및 [[구호 기사단]]이 있다. 튜톤 기사단에 입단허가가 난 여기사들은 대게 [[전투]]에 나가기 보다는 [[행정]]업무나 기사단 내의 규율 유지, 부상자의 [[간호]] 등 보조적인 역할을 맞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구호 기사단 같은 경우에는 아예 여기사들로만 이루어진 기사단이 따로 존재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스페인의 산 티아고 기사단에서도 여기사의 입단을 허가했다. [[네덜란드]]의 [[귀족]] 여성이나 [[자격]]을 입증한 [[평민]] 여성만이 입단할 수 있는 기사단과 [[영국]]의 [[가터 기사단]]도 귀족여성의 입단을 허가했다. 실존했던 여기사하면 [[잔 다르크]]를 떠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잔 다르크는 분명히 [[전투]]에 직접 나서기는 했지만 여기에서 언급되는 여기사들과 달리 [[귀족]]도, [[전투원]]도 아니었기에[* [[샤를 7세]]한테 자신를 도와준 보답으로 [[귀족]] [[작위]]를 받긴 했지만 거의 명예작위나 마찬가지였고, 잔 다르크는 [[포로]]로 붙잡혀서 [[종교]][[재판(법률)|재판]]을 받을 때 [[전투]]에서 [[도검|칼]]이나 [[창(무기)|창]] 등의 [[무기]]를 들고 직접 적군을 죽인 적은 없고 적군도 [[사람]]이기에 그들을 죽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 [[깃발]]만을 휘둘렀다고 스스로 증언하였다.] 엄밀히 말하면 [[기사(역사)|기사]]도 아니다. 이러한 여기사의 전통은 [[근세]]로까지 면면히 이어져, [[서양|서양권]]에서는 [[여성]] [[콩키스타도르]](콩키스타도라)나 여성 [[전열보병]] [[장교]]에 대한 기록도 간간이 찾아볼 수 있다. 한편 [[아시아]]에서는 [[인도]] 등지에서 '[[기사(역사)|기사]]'는 아니어도 [[여전사]]들을 찾아 볼 수 있다. [[왕실]] 여인네들의 [[경호]]업무 등을 수행했다. 한반도에서도 [[가야]] 시대 고분에서 장기간 전투훈련을 받은 젊은 여성의 유골이 여럿 발견되어 여전사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