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여대(삼국지) (문단 편집) === 초창기, [[형주 공방전]] === 처음에 군, 현리로 있었으나 전란을 피해 남쪽으로 오며 [[손권]]이 정권을 총괄할 때 막부로 가 그를 알현해 오현의 승이 된다. 여대의 법률처리와 질문에 대한 대답이 손권의 마음에 들어 녹사의 일을 맡게 되었다가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 여요현의 장이 되는데 회계의 다섯 현에서 여합과 진량이 소란을 일으키자 여대는 독군도위가 되어 [[장흠]]과 함께 그들을 토벌해 다섯현을 안정시켜 소신중랑장으로 임명된다. 211년에는 [[윤이]]와 함께 한흥 건성으로가 [[장로(삼국지)|장로]]를 유인하고자 하나 실패하고 212년에는 오나라로 돌아온다. 이때가 [[오범]]이 손권에게 [[유비]]가 촉을 얻을 것이라 주장했을 때로 여대는 촉에서 돌아오는 길에 백제에서 유비군을 둘러보고온터라 손권에게 병사의 반 이상이 죽어 촉을 얻기는 힘들 것이라고 보고했지만 오범은 여대가 본 것은 사람의 일뿐이며, 자신의 주장은 인간의 도리라고 했으며 과연 유비는 촉을 차지하는데 성공한다. 215년에 유비가 촉을 얻고 "양주(서량)를 얻으면 형주를 주겠다" 같은 자세로 나오자 이에 분노한 손권은 [[여몽]]을 시켜 장사 등 세군을 공격하게 하며 여대는 여몽의 명에 따라 손무 등 십여 장수를 통솔해 형주의 세군을 공격해 안성현, 유현, 영신현, 다릉현의 관리들이 음산성에 들어가 저항하는 이들을 공격해 즉시 항복시켜 세 군을 얻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또 다시 오탕과 원룡이 [[관우]]와 결탁해 반란을 일으키자 손권은 [[노숙(삼국지)|노숙]]을 시켜 공격하게 하며 여대는 예릉을 공격해 원룡을 붙잡아 참수해 이 공으로 여릉태수로 임명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