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여대(삼국지) (문단 편집) === 형주 방위 === 231년에 남쪽 영토가 맑고 안정되자 설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대를 불러 장사 구구에 주둔하게 했으며, 마침 무릉의 소수 민족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반준]]과 함께 진압했다. 234년에는 [[반장(삼국지)|반장]]의 군대를 이끌고 육구에 주둔하게 했다가 후에 포기(적벽근처)로 임지를 옮긴다. 235년에 여릉의 이환, 노합과 회계의 수춘, 남해의 나려 등의 도적이 일시에 반란을 일으키자 [[유찬#s-2]]과 [[당자#s-2]]를 지휘해 시작하자마자 수춘의 항복을 받아 그를 토벌에 이용하며, 236년에는 유찬이 이환, 당자가 노합을 사로잡아 이들을 처형했다. 238년에 이들의 진압을 완료하고 육구로 돌아왔다. 손권이 다음과 같은 조서를 내려 여대를 칭찬한다. >나려는 험난한 곳에 기대어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 머리가 잘리는 데로 이르게 되었고, 이환은 흉악하고 교활하며 이미 투항했었지만 또 모반했다. 앞뒤로 이들을 토벌하려고 했지만 여러 해 동안 붙잡지 못했다. 그대의 계략이 아니었다면 누가 그들을 잡을 수 있었겠는가? 그대의 충성스럽고 용맹한 절개는 이 일에서 더욱 빛났다. 원흉은 이미 제거되었고 크고 작은 도적들은 두려워 떨고 있으며, 그 나머지의 작은 무리들은 땅을 쓸 듯 소멸할 것이다. 오늘 이후부터, 국가는 영원히 남쪽을 돌아보는 근심이 없을 것이고, 세 군은 안정되어 걱정하다 놀라는 일이 없을 것이며, 또 복종하지 않던 백성들을 얻어서 부세와 노역을 공급받게 되었으니, 깊이 찬탄하고 감복할 만하다. 상은 그 달을 넘지 않는 것이 국가의 통상적인 규정이다. 적합한 법령을 만들어 그대가 결정하라. 239년에 [[반준]]이 죽자 그를 대신해 형주의 공문서를 결제했으며, [[육손]]과 함께 무창에 있으면서 포기를 다스리다가 요식의 반란이 일어나자 이들을 토벌하기 위해 출병한다. 손권은 그를 교주목으로 삼고 [[당자#s-2]]를 보내 여대를 돕게 했는데, 그는 1년 안에 요식과 비양을 참수하고 무창으로 돌아오니, 그의 나이가 이미 80을 넘었는데도 신체는 여전히 정력적이고 근면하면서도 직접 직무를 처리하는 것에 대해 [[장승(손오)|장승]]이 "그대는 육손과 함께 [[주공단]], 소공석[* 연나라의 시조인 주 왕조의 인물이다.] 급의 인물"이라며 칭찬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