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여대야소 (문단 편집) === [[대한민국 제1공화국|제1공화국]] === 1공화국은 이른바 이승만 정부 시절로서, 6.25를 거치면서 38선에서 휴전선으로 바뀌는 과정 속에 선거구의 변화가 크게 있었고, 또한 [[소선거구제]]를 실시하였던 시기이기도 하다. * [[제3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 3대 총선은 [[정전 협정(6.25 전쟁)|휴전]] 직후에 벌어진 선거로서 2대 국회에서 야권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자 야권의 내각제 개헌안을 놓고 공권력을 동원해 국회를 제압한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당과 경찰에게 총선의 개헌선 확보를 지시하여 [[3대 총선]]은 이른바 경찰의 곤봉선거, 몽둥이 선거로 불리게 된다. 경찰이 범죄혐의로 체포한 사람만 3,400명에 달했고, 반이승만 성향후보들에 대한 선거입후보 서류날치기, 선거인들에 대한 고문이 극에 달하였다. 공권력을 이용한 탄압이 극대화된 선거로서, 비록 첫 여대야소 구도를 이뤘지만, 공권력에 의했다는 대목이 매우 씁쓸함을 자아내었다. 한편, 휴전 직후 그 결과로 일부 의원들의 지역구는 전체가, 일부는 지역구의 대부분이 북한령이 되었다. 이에 따라 그 지역 의원들의 임기를 연장하는 안 또한 민의원에서 통과되었으나 거부당했다. 한편 [[38선]] 당시 북한령이었지만 되찾아온 [[수복지구]]에 행정권 회복이 늦어져 휴전선 이남의 전지역에 대한 선거는 1958년 [[4대 총선]]부터 치러졌다. 여담으로 3대부터 [[발췌 개헌]]의 통과로 인해 원래 민의원, 참의원의 [[양원제]] 국회를 선출하는 선거였어야 하나, 3대 총선과 뒤이은 4대에도 [[자유당]]의 반대로 무산되고, [[대한민국 제2공화국|제2공화국]] 출범 이후인 [[5대 총선]]부터 치러지게 되었다. * [[제4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 4대 총선은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의 시행에 따라 한국전쟁 이전의 남북분계선인 38선에서 맞춰 짜여진 선거구가 아닌 휴전 직후의 새로운 분계선인 휴전선을 따라 선거구를 조정, 휴전선 이남의 전 지역에 대해 치러진 첫 선거다. 233석이 정원이며 과반 획득을 위한 의석수는 117석이었다. 자유당의 과반 의석 점유로 끝이 났지만, 양당제로 굳어지는 현상의 출현 또한 나타난 총선이었으며, 1공화국 마지막 총선이었다. * '''[[대한민국 제2공화국|제2공화국]]''' 이승만 정권이 [[4.19 혁명]]으로 무너진 이후 수립된 정부이고, 의원 내각제를 실시한 대한민국의 처음이자 마지막 정부이다. 이른바 장면 내각이라고도 불린다. * [[제5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 5대 국회의원 선거는 [[4.19 혁명]] 이후 1960년 6월 15일의 개헌에 따른 제2공화국 수립 직후 치러진 선거이다. 민주당이 참의원 31석, 민의원 175석을 차지하며 압승한 선거이다. 또한 의원내각제의 실시를 헌법에 담아 민주당 정권을 수립하게 되었고, 발췌 개헌 이후 드디어 양원제를 성문법적인 의미가 아닌 실질적인 의미로 실시한 국회를 연 처음이자 마지막 선거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