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여대야소 (문단 편집) ====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 ====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변경하며 당을 장악한 박근혜 대표 아래에서,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을 치렀다. 야권에게 판이 유리하게 전개되자 야권 스스로 지리멸렬함이 계속되었고 새누리당 당 내의 친박계열로 일원화하여 당을 완전히 장악했던 시너지 효과까지 겹쳐 [[새누리당]]이 당시의 정권 심판론을 이겨내고 152석의 과반의석을 가져갔다. 이 기세를 이어 [[18대 대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결국 18대국회때 친박세력들이 여당내부에서 계속 야당처럼 활동했던 것이 큰 성과를 발휘한 것이다. 현행 헌법이 시행된 이래 가장 오랜 8년간의 여대야소 정국(2008~2016)을 이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18대국회 말기에 재정된 일명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해 과반의석을 차지했음에도 법안을 밀어붙이지는 못했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신들이 과반확보에 실패할 것이라는 전망속에 야당이 요구했던 국회선진화법을 수용해줬다.]. 거기에 18대 국회때와 달리 야당도 과반에 육박하고 의장의 직권상정이 사실상 무력화되면서 과거처럼 힘으로 압도할 수도 없게 되었고, 역시 지리멸렬이 계속되었다[* 야당이 다수거나 위원장인 상임위원회 중심으로 견제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상임위에서 야당이 법안 통과를 막아버리면 여당도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패스트트랙 절차를 진행하려해도 전체의석수에 5분의3이 되지 않아 역시 불가했다. ]. 결국 이에 질려버린 청와대는 국회와의 소통을 거의 끊어버리고 국정을 독단적으로 운영했으며, 심지어는 여당하고도 소통이 되지않아 많은 논란이 되었다. 결국 20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여소야대 정국이 구성된 후 헌정사상 최초의 탄핵 인용이라는 결과를 맞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