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여영풍 (문단 편집) == 작중 행적 == 초반부에서는 전반적으로 중립이었지만 비중은 별로 없었다. 부찰귀인이 임신을 자랑하자 비꼬는 얘기를 했지만 부찰귀인이 고양이의 공격을 받아 넘어지자 옆에서 걱정해주며 부축하기도 했다. [[견환]]이 익곤궁 앞에 꿇어앉는 형벌을 받았을 때 견환과 사이가 나빴던 [[이정언|제비]]와 [[부찰 의흔|부찰귀인]], 화비파인 [[조금묵|조귀인]]을 제외하고 죄다 꿇어앉아 견환의 구명을 청했으나 이 때 흔상재는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견환을 함부로 대한 것은 아니라, 견환이 [[옹정제(옹정황제의 여인)|황제]]에게 한창 냉대를 받을 때도 멸시하지 않고 공손히 인사하는 등, 항상 겸손하게 행동한다.[* 이때 [[과이가 문원|기귀인]]은 인사하는 흔귀인에게 인사할 필요 없다며 뭐라고 하고는 견환을 무시하고 지나가버렸다.] 중반부부터 [[과이가 문원|기귀인]]과의 갈등이 불거지자 마침내 중립을 깨뜨리고 기귀인과 [[안릉용]]을 무너트리는 것을 도와주는 나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같은 저수궁에 사는 기빈(기귀인)이 자신을 찾아온 [[옹정제(옹정황제의 여인)|황제]]를 몇 번이고 가로채고, 윗전의 지위를 이용해[* 작중 초반 빈 이상의 후궁이어야만 궁의 정전에 기거하며 궁을 다스릴 자격이 주어진다는 내용이 나온다. 나이와 인성 면에서 흔귀인이 기빈에게 뒤쳐지는 것이 없는데 기빈이 승진을 먼저 하는 바람에 기빈이 저수궁의 주인 자리를 먹은 것이다.] '''자신의 시녀인 패아가 [[견환]]의 시녀였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구박하고 때리자 울분이 쌓여 환궁한 견환을 만나 직접적으로 돕겠다고 나선다.''' 견환이 저수궁에서 나오고 싶냐는 말에 그럴 바에 차라리 한 궁의 주인이 되겠다고 직구를 날렸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 때에는 견환을 유산할뻔하게 만든 조약돌의 출처가 흔귀인의 분재였기 때문에 견환파는 흔귀인을 신뢰하지 않았다.] 한때는 [[오라나랍 의수|황후]]쪽에 호의적이었으나 자신과 사이가 나쁜 기귀인의 배후에 황후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인지 황후의 편을 들지 않게 되었다. 이후, 기빈을 귀인으로 강등시키기 위해 견환이 황제를 꼬드겨서 기빈의 본색을 황제의 눈으로 확인시켜 줬을 때, 결정타를 날린다. 평소 기빈이 시녀들에게 어떻게 대했는지를 술술 불었고, 그래서 기빈은 도로 귀인으로 강등당하고, 이후로는 흔귀인이 저수궁의 관리를 맡게 된다. 그후로도 계속 견환의 편에 섰으며 그 덕으로 [[제월빈|단비]]가 황귀비, [[풍약소|경비]]가 귀비가 될 때 자신도 빈의 지위에 오른다. 또한 그녀의 아버지는 [[안릉용]]의 아버지 안비괴를 탄핵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등장하는 후궁들 중에선 거의 공기 수준이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제월빈|단황귀비]], [[풍약소|경귀비]]와 나란히 최후까지 살아남는다. 주인공 [[견환]]마저 온갖 풍파를 겪었던 후궁에서 꿋꿋히 살아남은 것을 보면 이쪽도 상당한 수완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팬들은 견환이 그토록 바라던 평지풍파가 없는 고요하고, 조용한 궁중생활을 쭉 이어나갔기 때문에 흔상재를 최후의 승자라고 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조연이라서 부각되지 않는 거지, 견환만큼은 아니어도 역시 제법 고생을 했다. 처음 언급될 때 갓 유산을 겪은 상태였고, 화비의 견제로 경사방 패가 치워지더니 급기야는 자신보다 품계가 낮은 여답응에게 하극상을 당해 신형사에 끌려가기까지 한다. 화비가 몰락한 후 상황이 나아지나 싶더니 기빈에게 갑질을 당하고, 황제가 어쩌다 찾아와도 기빈이 꾀병으로 황제를 불러가는 일이 여러 번 일어나다가 견환이 돌아오고 그쪽에 의탁한 뒤에야 상황이 나아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