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여의전/등장인물 (문단 편집) === 황녀 === ||<-6><:><#18223d> {{{#FFFFFF ''' 장공주(長公主) ''' }}}|| ||<-3><:>'''단숙장공주 애신각라 항착'''||<-3><:>'''유숙장공주 애신각라 항제'''|| ||<-6><:><#18223d> {{{#FFFFFF ''' 공주(公主) ''' }}}|| ||<-2><:>'''3황녀 고륜화경공주 애신각라 경슬'''||<-2><:>'''4황녀 화석화가공주 애신각라 경연'''||<-2><:>'''5황녀 고륜화의공주 애신각라 경시'''|| * '''단숙장공주''' 애신각라 항착. 숭경황태후 뉴호록씨의 장녀. 몽고로 화친을 갔다. [[준가르]]와 청의 전쟁이 끝난 후엔 태후의 곁으로 돌아와 살고 있다. 달와제가 쿠데타를 일으켜 남편을 죽였는데 건륭이 재가하라고 했다. 건륭이 선조의 예를 들며 원래 만주에 재가의 풍습이 있었다고 하는데 태후는 입관한지 100년이 흘러서 풍습이 바뀌었는데 언제적 얘기를 하는 거냐며 실망한다. 달와제와 혼인한 후 임신해서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건륭이 여동생을 보러 오는데 항착은 군신의 예로만 대한다. 이에 건륭은 항착이 자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한다. 전작의 롱월공주에 해당하는 캐릭터. 원작에서도 롱월은 화친갔다. 여의에게 예전에 옷을 만졌다가 쳐낸 일에 대해 말하자 여의는 태후와 자신의 고모의 사이가 좋지 않기에 거리를 두기 위해서 그랬다고 한다. * '''유숙장공주''' 애신각라 항제. 숭경황태후 뉴호록씨의 차녀이며 장친왕이 태후를 대신하여 그녀를 양육하게 된다.[* 드라마에서는 의환의 아들 10황자를 함친왕부에 보내면서 함친왕 부부가 유숙장공주를 양육했다고 한다. ~~그런데 함친왕 윤비는 건륭제보다 5살이나 어리다~~] 원래 몽고로 시집을 가야 했으나 또다시 딸을 먼 곳으로 시집 보내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태후의 개입과 여의의 도움으로 화경공주가 대신 갔다. 다만, 건륭 대에는 몽고 왕족과 공주가 혼인을 해도 북경에서 살았으므로 이는 잘못된 고증이다. 전작의 령서공주에 해당한다.~~그렇게 따지면 이분은 과군왕 딸~~ 여담으로 유숙장공주 역 배우 왕학윤은 [[연희공략: 금지옥엽]]에서 위영락의 딸인 소화공주(고륜화정공주)로 나온다. * '''3황녀 고륜화경공주 애신각라 경슬''' 효현순황후 [[부찰 랑화]]의 차녀. 홍력의 유일한 적녀라 오만하며, 후궁들을 무시한다.[* 드라마에서는 어느 정도냐 하면, 7황자 영종 사망+랑화의 급격한 건강 악화 직후 진행된 동순(東巡)에서 건륭, 랑화, 여의, 록균이 랑화의 건강을 주제로 얘기 중인데, 록균의 "황후마마가 건강하셔야 신첩들이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에 "어마마마는 국모이시니 당연히 부처의 보호를 받으실 것이며, 너희는 그래봤자 첩실일 뿐이니 어마마마를 잘 모시기나 하면 된다"고 한다. 다만 랑화와 홍력이 있는 곳에서도 대놓고 저런 말을 한 이유는 고륜공주인 경슬이 황귀비보다 높은 위치이기 때문이다.][* 이 성격은 태후마저 잘 알고 있는데, 태후의 심복 복가의 대사에서 "(유일한 적녀라는 이유로) 화경공주의 성격이 몹시 오만하니 몽고로 화친을 보내는 것이 그 성격을 죽여놓기엔 딱 좋다"며 대놓고 언급된다. ~~본인이 말하며 본인이 고소해하는 표정은 덤~~] 그러나 부모에게는 효성스럽다. 처음에 랑화는 딸이라는 이유로 경슬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7황자가 죽고 난 직후 아파서 누워있는 랑화에게 경슬이 "동생이 (먼저) 갔어도 어마마마께는 제가 있잖아요, 제가 어마마마의 의지할 곳이 되고 어마마마를 위해 힘낼게요"라고 위로하지만, 돌아온 랑화의 대답은 "딸이 무슨 쓸모가 있니, 아들이 있어야만 금상첨화의 구실을 하는 거잖니."라는 한탄 뿐이였다. 이 말에 경슬이 울먹이자 이내 랑화도 딸을 다독이며 네가 아니라 자신에게 하는 소리라고 했다.] 이후 영종이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숙장공주 대신 몽고에 시집갔다.[* 원래는 유숙장공주가 시집갈 듯했지만 남은 딸마저 몽고로 시집보내고 싶지 않던 태후가 매빈에게 경슬을 시집보내게 만들라며 종용했고, 매빈은 "유숙장공주마저 몽고로 시집가면 태후의 세력이 더 커지게 된다"며 건륭에게 유숙장공주 대신 경슬을 시집보낼 것을 권유한다. 여의 역시 경슬을 치워버리고자 같은 말을 하고, 결국 건륭은 유숙장공주가 아닌 경슬을 시집보내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경슬에게 차마 직접 말하기는 두려운지 여의와 록균을 통해 경슬을 설득할 것을 지시한다. 이때 록균은 경슬을 좋은 말로 달래려고 하지만 그러면 네 딸을 시집보내지 그러냐는 경슬의 말에 찍소리도 못하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의는 경슬에게 "사람은 자리에 맞는 책임감이 있고, 이를 피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대놓고 말한다. 록균이 너무 지나친 것 같다고 하자 여의는 경슬이 부모의 고심을 모르니 명확히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을 들은 경슬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는 건 덤~~ 결국은 나라와 부찰 가문을 위해 네가 가야만 한다는 랑화의 설득에 시집가게 된다. 이를 받아들이면서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터덜터덜 걸으며 "황가에서 태어났지만 처지는 촌부보다 못하다"는 한탄에서 경슬의 심경이 그대로 드러난다.] 랑화는 하나 남은 딸마저 자신을 떠나게 되자 그제서야 자책한다.[* 경슬은 랑화의 사망 이후 예정대로 몽고로 화친을 가고, 2년 후 여의의 황후 책봉식에 참석한다. 경슬은 여의의 황후 책봉식 책사로 자신의 외삼촌인 부항(랑화의 남동생)을 쓴다는 것에 불만을 가지게 되지만 건륭은 이미 결정된 사안이라며 일축한다. 건륭이 돌아간 이후 경슬은 죽은 랑화의 초상화 앞에 절을 하며 총애는 있다가도 사라지는 것이니 자신이 꼭 돌아와서 복수를 해주겠다고 다짐하며 여의의 책봉식이 끝나고 다시 몽골로 돌아간다.] 화의공주 경시의 사망 이후, 건륭의 부름으로 자금성으로 귀환한다. 아들 경우를 낳다가 난산으로 죽을 뻔했고, 그래서 아이를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는데 이때부터 부마가 축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경슬이 과이심으로 돌아가기 싫다고 하자, 건륭은 과이심 친왕이 반란을 제대로 진압하지 못한 데다 경슬에게도 잘 대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금성에 머무는 걸 허락한다. 한편 경슬은 여의가 자신을 몽골로 시집 보내도록 황제와 태후를 움직이는 바람에 상심한 어머니가 죽었다고 여겨 복수심에 불타고 있었다. 또한 여의는 후궁 출신의 계후이고 자신은 원배[* 원배는 죽거나 이별한 첫 아내를 말한다. 랑화는 선제가 맺어준 건륭의 첫 아내로, 같은 황후라도 첩이었던 적이 있는 여의보다 격이 높았다. 소설에서는 건륭조차 여의는 계후라 귀하지 않다고 할 정도.] 황후 소생 적출 공주이니 여의가 자신에게 모후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후 경슬은 복수를 위해서 자신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몽골 출신 후궁 및 위연완[* 7공주 출산 이후 답응으로 강등된 위연완이 자신의 외아들 경우가 물에 빠졌을 때 구해준 것을 계기로 위연완과 결탁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건륭의 총애를 되찾고자 했던 위연완이 경우를 이용하여 벌인 자작극.]과 어울리며 여의를 적대한다. 드라마판에서는 5황자 영기의 장례식에 참석한 영비 파림씨로부터 위연완의 야심을 언질 받게 된다.[* 파림씨: "황후의 자리만을 탐하는 사람이 자식 교육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에 사실 확인을 위해 환관을 잠복시켰고, 15황자 영염에게 "아바마마에 대한 효심도 중요하지만, 어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위연완의 말을 전해 듣는다. 영비의 언질이 틀리지 않음을 깨달음과 동시에 건륭에게 이를 알려 위연완이 자식들의 양육권을 모두 박탈당하게 만든다. 부황의 후궁들을 싫어하지만 자신의 이복남매/자매들인 후궁 소생의 황자 및 황녀들과는 친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여의와 해란의 아들인 5황자 영기가 죽었을 때도 기도를 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였다. 더군다나 여의와의 관계도 마냥 증오하기만한 게 아니었다. 막상 여의가 홍력과의 갈등 끝에 머리카락을 자르고 익곤궁에 연금되면서, 거의 폐후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었음에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머니 랑화의 복수를 했다고 통쾌해할만도 하지만 아버지와 서모(여의)의 갈등이 극에 달하는 것을 보면서, 연완의 행패로 내명부의 분란이 갈수록 커지는 것에 불안감을 느꼈는지 여의를 안쓰럽게 쳐다본다. 오히려 상재들이 황귀비가 된 연완에게 아첨을 떨러 온 것을 궁 밖에서 보면서, 저리 체면을 지킬 줄 모르는 것을 황귀비에 앉히면 안 됐다며 여의보다 연완을 더 혐오한다. 이후의 등장은 없으며 여의의 사후에도 그녀의 장례식장에는 모습을 비추지 않는다.[* 여의의 장례가 황귀비만도 못한 예로 치뤄졌고 경슬은 원배 황후 소생이기 때문에 입효하지 않은 듯하다. 랑화의 장례식에서는 모든 황자녀들이 나온 것과는 대조된다. 여의의 유일한 친아들인 12황자 영기 또한 상복을 입지 않았다.][* 태후가 홍력에게 “애가가 친히 황후의 장례식에 다녀왔소. 그러나 대우가 너무 처참하오!”라며 따질 정도. 다만 여의는 죽어서나마 지긋지긋한 황실과 [[자금성]]에서 벗어나길 원했고, 이러한 소망을 유언장에도 남겼으며 홍력 역시 이를 보고 여의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준 것이다.] 실제 역사에서 [[고륜화경공주]]는 [[효현순황후]]의 성인까지 장성한 유일한 자식이었고[* 건륭제보다는 일찍 죽었다. 건륭의 27명의 자녀들 중 건륭보다 오래 산 아이들은 5명에 불과하다.] 몽골 과이심 왕에게 시집을 간 것은 맞지만 몽고로 간 것은 잘못된 고증이다. 화경공주는 효현순황후 사후에도 북경에 거주했다. 유일한 적녀여서 건륭제가 엄청나게 총애했기 때문. 또한 영종 사망 → 효현순황후 사망 → 화경공주 하가 순서인 드라마와는 다르게 실제 역사는 화경공주 하가(건륭 12년 3월) → 영종 사망(건륭 12년 12월) → 효현순황후 사망(건륭 13년 3월) 순서이다. 드라마에서는 부마가 축첩하여 사이가 안 좋은 것으로 나오나 실제 액부와 화경공주는 금슬이 좋았으며 1남 4녀를 낳았다. * '''4황녀 화석화가공주 애신각라 경연''' 순혜황귀비 소록균의 딸. 몇 안되는 공주라 홍력의 총애를 받는다. [[부찰 랑화]]의 동생인 부찰 부항의 차남 복륭안과 결혼한다. * '''5황녀 고륜화의공주 애신각라 경시''' 계황후 [[오라나랍 여의]]의 딸. 실제 역사에선 봉호를 받기 전에 죽었다. 이름인 경시는 당태종과 장손황후의 요절한 딸 진양공주의 아명인 시자에서 따왔다. 원작에선 광견병에 걸린 개에게 물려죽는다. 드라마에선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 심장 질환을 앓고 있었는데, 어화원에서 오빠인 12황자 영기와 놀다 [[김옥연]]이[* 사실 [[위연완]]이 몰래 김옥연의 개를 빼돌려 풀어놓은 것이었다.] 풀어놓은 개가 달려들어 발작을 일으키다 이내 사망한다. * '''6황녀''' 영비 파림 미약의 장녀. 소설에서는 흔귀비 대미약의 소생인데, 드라마에서는 영비 파림씨와 대미약을 하나로 합치는 바람에 영비의 딸이 되었다. 5황녀 경시가 개에 당해 쓰러졌을 때 영비도 크게 놀라는 바람에 결국 임신 6개월째에 유산되었다. * '''7황녀 고륜화정공주 애신각라 경완''' 효의순황후 [[위연완]]의 장녀. 태어나자마자 위연완이 아닌 영(穎)비 [[파림 미약]]에게 키워졌다. 나중에 위연완이 되찾으려 하자 자신의 어머니는 파림씨라며 거부하고 위연완이 여의를 해쳤다고 생각한다.[* 드라마에서는 경완의 이런 말을 듣고 눈이 뒤집힌 위연완이 그 입 다물라며 경완의 볼을 꼬집고 그 모습에 당연히 양모인 [[파림 미약]]은 분노한다. 급기야 연완은 지나가다 등판한 태후 앞에서까지 아이에게 양어머니는 친어머니보다 친밀하지 못한데 양어머니가 어떻게 진심으로 아이를 아끼겠냐는 말까지 해버린다. 안 그래도 건륭과 양아들-양어머니 관계인 태후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두고 하는 말로 들렸는지 아이는 누가 키우고, 또 누구를 따르고 싶어하느냐에 따라 누구의 아이인지 결정된다며 경완이 원하는 대로 영비가 계속 키우게 해준다.] * '''9황녀 화석화각공주 애신각라 경운''' 효의순황후 위연완의 차녀. 위연완의 실언 후 힐방전에서 유모들 손에서 자라며 위연완과는 1년에 한 번 꼴로 만난다. 성장한 후에는 아들, 특히 15황자 영염에게만 신경 쓰는 생모에게 냉담하게 대한다. [[한향견]]을 바친 장군 오아 조혜의 아들 오아 찰란태에게 시집간다. * '''10황녀 고륜화효공주''' 돈비 왕부지의 딸. 화의공주를 닮았다하여 홍력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다. 실제 역사에서의 고륜화효공주는 오히려 아버지인 건륭제의 외모며 성격, 재능을 유난히 닮아 여러 면에서 출중했던지라 엄청난 총애를 받았고, 그녀의 친모인 돈비도 덩달아 대우받았다. 딸을 각별히 사랑한 건륭제는 고륜화효공주가 후궁 소생의 공주임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고륜공주로 봉해주었을 정도.[* 일반적으로 청나라에서 황제의 적녀는 고륜공주로 봉해졌고 서녀는 화석공주로 봉해졌다. 조선으로 치면 고륜공주는 '공주' 에, 화석공주는 '[[옹주]]'에 해당하는 셈. 물론 조선의 공주, 옹주와는 달리 모친의 지위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예외도 있었다.] 이후 건륭제의 총신 [[니오후루 허션|뉴호록 화신]]의 아들과 결혼했다. 하지만 건륭제의 뒤를 이어 즉위한 가경제가 화신의 전 재산을 몰수하는 바람에 돈을 아끼며 살아야 했고, 시댁이 고륜화효공주에게 의지하였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