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역전 (문단 편집) ===== [[전쟁]] ===== * [[한니발 전쟁]] * [[고구려-백제 관계|고구려-백제 전쟁]] - 고구려-백제 전쟁도 역전과 재역전을 반복하면서 전쟁이 계속되었다. 근초고왕과 고국원왕 때는 백제가 우위였으나, 근구수왕, 침류왕, 진사왕과 소수림왕, 고국양왕 때를 거치면서 역전될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아신왕과 광개토태왕 시절에는 고구려가 우위를 점하면서 역전에 성공했다. 이후 전지왕, 구이신왕, 비류왕, 개로왕과 장수왕 때를 거치면서 고구려는 더더욱 우위를 점했다. 그러나 동성왕, 무령왕과 문자명왕, 안장왕, 안원왕 때를 거치면서 다시 두 나라간 사이에 역전과 재역전을 반복했으나 성왕과 양원왕 때를 거치면서 백제가 다시 우위를 점했다. 하지만 나제동맹이 깨지고 성왕이 전사하면서 두 나라는 치열한 싸움을 계속한다. * [[백제멸망전]] 당시 [[황산벌 전투]] - 백제의 계백 장군이 이끄는 5천 결사대가 신라의 명장인 김유신 장군이 이끄는 5만 대군을 상대로 네 번을 싸워서 모두 이겼지만 반굴과 관창의 전사로 인해 사기가 오른 김유신 장군과 신라의 5만 군사들이 계백의 5천 백제군을 모두 섬멸했고 계백 역시 전사했으며 백제 역시 멸망을 했다. * [[고구려-당 전쟁]] - 고구려-당 전쟁은 초반에는 당나라가 고구려의 요충지들을 함락시키고 주필산 전투에서 고구려 대군을 궤멸시키면서 당나라 우위였다가 [[안시성 전투]]에서 고구려가 승리하면서 고구려 우위로 바꾸는 데 성공했고, 이후로도 각종 소모전 및 사수대첩 등에서 고구려가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연개소문]] 사후 고구려의 내분으로 인해 당나라가 다시 상황을 뒤집는 데 성공했고 그럼에도 고구려는 2년 동안 버텼으나 당나라가 고구려의 요충지들을 함락시키더니 평양성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평양성은 초반에 함락당하지 못했으나 배신자인 신성이 성문을 열면서 평양성은 함락당했고 고구려는 결국 멸망한다. * '''[[안시성 전투]]''' - 제1차 고당전쟁에서 밀리던 고구려군을 승리로 이끌면서 전세를 역전시킨 중요한 전투이다. * '''[[여요전쟁]]''' * [[제1차 여요전쟁]]과 [[제2차 여요전쟁]] - 제1차 여요전쟁은 초반에 거란군에게 봉산 방어선을 함락당하면서 위기에 몰렸으나 대도수와 유방이 지휘한 안융진 전투의 승리로 고려군이 역전에 성공했고 서희와 소손녕의 회담에서 고려는 강동 6주를 얻어내었다. 제2차 여요전쟁은 초반에 흥화진성 전투에서 고려가 승리를 거두고 강조가 지휘하는 30만 대군이 1차 전투에서 거란군을 몰아내면서 고려의 승리가 확실시 되는 듯 보였으나 삼수채 전투 중 2차 전투에서 거란군에게 고려군이 참패를 하고 곽주성을 함락당하고 개경이 거란군에게 점령당하고 현종이 나주까지 몽진하면서 거란군이 전세 역전에 성공하고 고려는 큰 위기에 몰렸으나 고려의 요충지들이 건재했으며 양규와 김숙흥이 게릴라전으로 거란군을 섬멸하면서 고려 백성들을 구출하고 하공진의 활약으로 거란군이 철수하면서 고려군이 다시 전세 재역전에 성공한다. * [[제3차 여요전쟁]] 중 [[귀주대첩]] - 초반에는 소배압의 거란군과 강감찬의 고려군이 치열한 전투를 계속하면서 양쪽이 궁기병, 경기병, 검차(고려 한정), 궁병, 창검병 등을 동원해서 역전과 재역전을 반복했는데 고려군의 궁병 사격에 거란군이 밀리지만 거란군 역시 궁병으로 사격하면서 거란군이 우위를 잡았다가 강민첨의 고려군 궁기병과 경기병이 측면을 향해 달려오는 거란군 궁기병들을 저지하면서 다시 고려군이 승기를 잡고 고려군의 중앙부가 방패병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검차를 밀고 들어와서 고려군이 다시 승기를 잡았으나 거란군 궁기병이 고려군의 좌우측으로 들어가면서 다시 거란군이 승기를 잡고 고려군은 후퇴할 수밖에 없었을 정도로 치열한 접전이 지속되다가 김종현의 철기병 1만이 오면서 강감찬, 강민첨, 조원이 지휘하는 고려군은 승기를 잡아서 거란군을 궤멸시키는데 성공했고 소배압의 거란군은 살아서 돌아간 자가 1천에 불과했다. * '''[[여몽전쟁]]''' * '''[[홍건적|홍건적의 2차 침입]]''' * '''[[백년전쟁]]''' * '''[[이탈리아 전쟁]]''' * [[네덜란드 독립전쟁]] * '''[[임진왜란]]''' - 초반에는 조선군이 부산진첨사 정발과 동래부사 송상현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부산진과 동래가 일본군에게 함락당하고 이일의 군대와 신립의 기병대마저 일본군에게 전멸당하면서 조선군이 일본군에게 밀렸고 수도 한양과 연이은 요충지들을 내주며 [[선조(조선)|선조]]와 조정이 의주까지 피신하면서 조선이 멸망 직전까지 몰렸으나 [[한산도 대첩]] 등 [[이순신]]의 여러 해전의 승리, 의병들의 참전, [[권율]]의 [[행주 대첩]], [[이치 전투]]으로 조선군이 역전에 성공했다. 하지만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자멸하면서 당시 왜군이 잠시 우위를 잡다가 [[명량 해전]]에서 다시 역전에 성공했다. 그 이후 명나라 지원군도 참여하게 되고 조선군이 평양성에서 탈환을 한 뒤 한양에 재입성하는 데 성공하고, [[노량 해전]]에서 대승을 거두며 조선이 승리를 거두었다. * [[이치 전투]] - [[한산도 대첩]]과 더불어서 왜군이 유리했던 임진왜란을 조선군이 유리한 전쟁으로 바꾼 전투 중에 하나이다. * '''[[행주 대첩]]''' * '''[[한산도 대첩]]''' * '''[[명량 대첩]]''' - [[원균]]이 [[칠천량 해전]]으로 거북선 3척과 판옥선 80~90여척을 까먹어서 13석 vs 333석으로 대열세였는데 이 열세에서도 이순신이 이끄는 13척의 판옥선이 왜군의 세키부네를 31척이나 부쉈다. 이 결정적인 승리로 조선은 재반격을 시작하게 된다. * '''[[30년 전쟁]]''' * [[프랑스-스페인 전쟁]] * '''[[7년 전쟁]]''' * '''[[미국 독립 전쟁]]''' * '''[[나폴레옹 전쟁]]''' * '''[[제1차 아편전쟁]]''' * [[태평천국 운동]] * [[의화단 운동]] * [[제1차 세계대전]] 서부 전선 - 초반엔 독일 제국군이 [[벨기에의 강간|벨기에를 점령하고]], [[국경 전투]]에서 이겨서 [[프랑스]]의 수도인 [[파리(프랑스)|파리]]까지 단 50km 남은 지점까지 진격했다. 하지만 제1차 [[마른 전투]]에서 저지를 하고 파리에서 100km 지점인 누아용까지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 이후 수 많은 [[참호전]]를 치르는 도중에 [[러시아 제국]]이 전쟁에서 물러나면서 독일 제국군이 [[춘계 공세]]을 해서 파리 근교에 다시 도달했지만 그 이후 [[킬 군항의 반란]]으로 독일 제국군이 항복하였다. * [[제2차 세계대전]] * '''[[독소전쟁]]''' - 특히 [[모스크바 공방전]]이나 [[스탈린그라드 전투]] * '''[[태평양 전쟁]]''' - 특히 [[운명의 5분]]으로 요약되는 [[미드웨이 해전]]이나 [[과달카날 전역]] * [[국공내전]] - 초반엔 국민당이 만주 전역을 휩쓸고 다니면서 홍군을 밀어붙었지만, 미군의 휴전 요청 이후부턴 홍군이 만주를 장악하고 베이징,난징,충칭까지 다 털리면서 [[국부천대|타이완 섬으로 쫒겨났다.]] * [[이라크 내전]] - 참고로 [[ISIL]]가 수도에서 불과 '''1.6 km'''까지 진격했었기에 더 기적적이다. 특히 이라크판 스탈린그라드 전투인 [[모술]] 공방전이 여기에 더 어울린다. * '''[[6.25 전쟁]]''' * '''[[인천상륙작전]]''' - 전세 역전의 서막이 된 전투다. * '''[[청천강 전투]]''' - 기껏 북진통일을 앞두고 있었는데 이 전투로 인해 상황은 다시 뒤집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