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역전 (문단 편집) ===== [[반란]] ===== * [[조사의의 난]] - 왕자의 난으로 권력을 잃은 [[태조 이성계]]와 태조 이성계의 뜻을 받든 [[조사의]]가 일으킨 반란으로 처음에 태종 이방원과 조선 조정에서는 동북면을 회유하는 데 주력하였으나 박순과 송류가 살해를 당했고 이후 [[태종 이방원]]과 조선 조정에서는 각 고을의 군사들을 모아서 서북면에는 이천우를 파견하여 서북면으로 이동하는 반란군을 차단하도록 했고 동북면에는 [[조영무]]를 파견하고 대규모 진압군을 보내서 반란군을 진압하도록 했으나 조사의를 위시한 반란군은 이천우가 이끄는 진압군을 혼란에 빠뜨린 뒤에 기병 100명을 사로잡고 이천우도 겨우 살아서 탈출했으며 기세등등한 조사의와 반란군은 그 숫자가 더욱 늘어나서 6~7천명에 이르렀고 여진족이 합류하면 1만이 될 것이라고 더욱 기세를 올렸다. 그러나 태종 이방원이 직접 친정을 하고 조영무가 이끄는 진압군이 동북면으로 이동하여 배후의 지원을 차단했고 연달아서 이천우와 이빈 등이 남은 군사들을 이끌고 가서 적극적인 교전은 회피한 채 조사의의 군대가 주둔한 곳들의 주변을 점거하면서 반란군의 발을 묶으면서 슬슬 전세가 바뀌기 시작했고 역전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조사의에 의해 포로로 잡힌 자가 한 말에 의해 반란군은 당황을 했고 탈영병들이 발생하면서 조사의의 반란군은 일거에 무너지기 시작했고 한 탈영병이 반란군 진영에 불을 지르면서 조사의의 반란군은 일거에 와해된다. 그리고 반란이 진압되면서 태종 이방원과 조선 조정, 진압군의 승리로 끝이 난다. 그리고 반란을 일으킨 조사의와 그에 가담한 자들은 모두 참수된다. * [[계유정난]] - 사실 계유정난도 본래는 쉽게 성공한 게 아니었다. 계유정난을 일으킨 [[수양대군]]은 본래는 김종서에게 밀렸다. 수양대군의 측근인 [[홍윤성]], [[양정(조선)|양정]]은 과거에 급제하거나 내금위에서 관직을 하고 있었으나 거의 무뢰배 수준에 가까웠고 수양대군에게 모인 병력들은 거의 무뢰배들에 가까웠다. 반면에 [[김종서(조선)|김종서]], [[황보인]], [[정분]] 등 삼정승과 [[민신]], [[조극관]] 등 김종서의 측근 중신들을 위시로 한 세력들은 의정부는 물론, 인사권과 삼군의 군권까지 장악하고 있었고 김종서가 거느리는 병력들은 수양대군보다 훨씬 많았다. 하지만 수양대군에게는 [[한명회]]라는 책사가 있었고, [[권람]]이라는 문과에 급제한 책사도 있었으며 명나라에 가면서 [[신숙주]]까지 자기 편으로 끌여들었고 [[정창손]], [[정인지]], 이계전, 이인손 등의 일부 대신들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고 [[서거정]], 강희맹, 양성지, [[노사신]] 등 일부 학자들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면서 김종서에게 기울어져 있던 전세를 슬슬 역전시키기 시작하더니 [[홍달손]]과 내금위 무사들이 수양대군의 편이 되면서 계유정난을 실행에 옮겼고 [[김종서(조선)|김종서]], [[황보인]]을 위시한 김종서파 대신들을 다 죽이면서 완전히 역전에 성공했으며 수양대군은 국정 전반을 틀어쥐었다. 그리고 2년 후 [[세조(조선)|세조]]로 즉위한다. * [[이시애의 난]] - 초반에는 이시애가 함길도절제사 강효문을 죽이고 길주목사 설정신이 다스리는 길주를 점령하고 함길도관찰사 신면의 관군들도 격파하면서 이시애의 반란군이 우위에 있었고 귀성군이 이끄는 관군 3만은 강원도 철원군까지 밀려버렸다. 그러나 세조가 지원군을 더 파견하면서 전세가 역전될 조짐을 보이더니 귀성군의 관군들이 회양으로 진격하면서 점점 역전을 하기 시작했고 영흥을 탈환하고 북청까지 탈환하면서 관군이 승리하는 듯 했지만 북청에서 이시애의 반란군이 여진족과 합세하면서 다시 반란군에게 전세가 역전되는 듯 했지만 제2차 북청전투에서 관군이 대승을 거두고 만령전투에서 관군이 큰 성과를 올리고 이시애의 반란군을 궤멸시키면서 관군의 완벽한 승리로 끝났으며 이시애는 참수가 된다. * [[이괄의 난]] - 처음에는 이괄이 인조가 보낸 금부도사와 선전관을 살해하고 이괄의 반란군들이 우위에 있었다. 그러나 반란군들 다수가 장만의 관군에게 투항하면서 관군 우세로 역전하는 듯 했으나 관군이 우왕좌왕한 틈을 타서 이괄의 반란군이 황주 전투에서 관군을 패퇴시켰다. 그러나 아직 관군의 포위망은 건재한지라 마탄에서 적을 격퇴할 수도 있었지만, 마탄전투 역시 이괄의 반란군이 승리를 거두고 관군을 궤멸시켰으며 임진강 방어선마저 무너지고 한양도 함락당하면서 인조는 공산성으로 피난을 갔다. 그러나 한양을 점거한 이괄이 인조 일행을 뒤쫓지 않고 한양에 머무르면서 전황이 이괄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고, 인령전투에서 장만과 정충신의 관군이 기적적인 역전승을 거두면서, 전세가 관군에게 역전되었으며, 이괄은 부하들의 배신으로 인해 참수된다. * [[이인좌의 난]] * [[홍경래의 난]] * [[정난의 변]] - 처음엔 주체가 선전을 하며 북부 지역을 다 쓸었지만, 황제군이 상당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둬서 전세는 도저히 좋아질 기미가 안 보이고 심지어 포위당해서 잡힐 위기에도 쳐한다. 하지만 잘못된 오보로 인해 방어군이 철수하는 일이 벌어지고, 그 뒤론 상황이 뒤바뀌었고, 결국 주체는 수도인 난징까지 점령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