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연방준비제도 (문단 편집) ==== 연방준비제도 의장 ==== [include(틀:역대 연방준비제도 의장)] || {{{#ffffff '''대'''}}} || {{{#ffffff '''이름'''}}} || {{{#ffffff '''재임 기간'''}}} || {{{#ffffff '''지명자'''}}} || {{{#ffffff '''특이사항'''}}} || || 1 || 찰스 섬너 햄린 || 1914년 8월 10일 ~ 1916년 8월 9일 || [[우드로 윌슨]] || || || 2 || 윌리엄 P.G. 하딩 || 1916년 8월 10일 ~ 1922년 8월 9일 || [[우드로 윌슨]] || || || 3 || 대니얼 R. 크리싱어 || 1923년 5월 1일 ~ 1927년 9월 15일 || [[워런 G. 하딩]] || || || 4 || 로이 A. 영 || 1927년 10월 4일 ~ 1930년 8월 31일 || [[캘빈 쿨리지]] || [[세계 대공황|1929년 세계 대공황]] || || 5 || 유진 메이어[* [[워싱턴 포스트]]를 인수해 세계적 일간지로 키워낸 언론사 사주출신이자 [[세계은행]] 초대 총재.] || 1930년 9월 6일 ~ 1933년 5월 10일 || [[허버트 후버]] || || || 6 || 유진 로버트 블랙 || 1933년 5월 19일 ~ 1934년 8월 15일 || [[프랭클린 D. 루즈벨트]] || 건강문제로 1년만에 사퇴[* 당해 12월 심장마비로 급서] || || 7 || 매리너 S. 에클스 || 1934년 11월 15일 ~ 1948년 2월 3일 || [[프랭클린 D. 루즈벨트]] || [[브레튼우즈 체제]], 13년간 재임[* Fed 본부 빌딩 명칭이 에클스 빌딩(Eccles Building)일 만큼 중요한 인물로, 초창기 연준의 위치가 확고하지 않았을 시기에 중앙은행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뜻에 따라 루즈벨트의 경제정책을 책임지기 위해 연준 시스템을 완전히 혁신했다. 연준 의장에서 물러난 이후인 1952년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연준을 재무부 출장소 취급하던 실세 존 스나이더 재무장관 상대로 총대를 메고 의회 청문회에서 스나이더의 폭주를 들이받아 스나이더의 사과를 받아내고 연준의 독립성을 지켜냈었다.] || || 8 || 토머스 M. 매카비 || 1948년 4월 15일 ~ 1951년 4월 2일 || [[해리 S. 트루먼]] || 1951년 [[미국 재무부]]와 연준 간 합의 성취[* 상술한대로 이 사람은 당시 존 스나이더 재무부 장관에 비해 힘이 약해서 별 영향력은 미치지 못했다.] || || 9 || 윌리엄 M. 마틴 Jr. || 1951년 4월 2일 ~ 1970년 2월 1일 || [[해리 S. 트루먼]][BR][[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BR][[존 F. 케네디]][BR][[린든 B. 존슨]] || 19년 재임[* "연준의 역할은 파티가 무르익었을 때 그릇을 치우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사람이다. 물가 통제력을 강화하는 데 주력했으며 그로 인해 베트남 전쟁 문제로 금리 인하를 요구했던 [[린든 B. 존슨]]이 자기 목장으로 불러서 압력을 행사했음에도 끝까지 거부한 걸로 유명하다.] || || 10 || 아서 F. 번즈 || 1970년 2월 1일 ~ 1978년 1월 31일 || [[리처드 닉슨]] || [[닉슨쇼크|1971년 닉슨쇼크]], 인플레이션 방어 실패[* 열렬한 공화당원으로 자신을 지명한 닉슨의 입맛에 맞는 경제정책을 밀어붙였다. 그로 인해 정치를 위해 금리 정책을 희생시켰기에 70년대 15% 가까운 인플레이션을 만들어냈다. 이로 인해 연준의 독립성을 내다버렸기에 현재 평가는 역대 최악의 연준 의장으로 꼽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재밌는건 이런 번즈의 제자 중에는 저명한 [[통화주의]] 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있었다는 것이다.] || || 11 || G. 윌리엄 밀러 || 1978년 3월 8일 ~ 1979년 8월 6일 || [[지미 카터]] || 인플레이션 방치, 퇴임후 [[미국 재무부|재무부 장관]] 역임 || || 12 || [[폴 볼커]] || 1979년 8월 6일 ~ 1987년 8월 11일 || [[지미 카터]][BR][[로널드 레이건]] || '''인플레이션 파이터'''[*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자신을 지명한 [[지미 카터]]의 재선 도전과 상관없이 무려 기준 금리를 20%까지 올렸던 인물이다. 이때문에 미국 내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부도가 속출 했으며 자국내에서 증오하는 이들로 인해 호신용 권총을 상시 소지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의 정책은 70년대 만연했던 인플레이션과 기대심리까지 잠재웠고 부실한 기업과 자영업자를 정리시켜 이후 미국 경제호황의 기초를 다졌다는 평가가 많다. 그러나, 엄청난 금리로 인해 외채를 짊어진 신흥국은 경제 위기로 신음했으며 특히 인접국인 멕시코도 볼커의 정책으로 수많은 국영기업과 대기업이 무너지면서 멕시코에서 엄청난 다수의 밀입국자들이 미국으로 넘어오는 계기가 되었다. 한마디로 자국을 위해 다른 신흥국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8년 재임[* 8년 재임 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측으로부터 다시 재임을 제의받았으나 거절했다는 설이 있다.] || || 13 || [[앨런 그린스펀]] || 1987년 8월 11일 ~ 2006년 1월 31일 || [[로널드 레이건]][BR][[조지 H. W. 부시]][BR][[빌 클린턴]][BR][[조지 W. 부시]] || [[골디락스|골디락스 호황]], 18년 장기 재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서브프라임 사태 책임론]] || || 14 || [[벤 버냉키]] || 2006년 2월 1일 ~ 2014년 1월 31일 || [[조지 W. 부시]][BR][[버락 오바마]] ||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세계금융위기]], [[양적완화]] || || 15 || [[재닛 옐런]] || 2014년 2월 1일 ~ 2018년 1월 31일 || [[버락 오바마]] || 첫 여성 의장, G. 월리엄 밀러 이후 39년 만에 연임 실패 || || 16 || [[제롬 파월]] || 2018년 2월 1일 ~ || [[도널드 트럼프]][BR][[조 바이든]] || [[코로나 19]], [[대봉쇄]], [[양적완화]] 이후 [[테이퍼링]] 전환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