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연세대학교/역사 (문단 편집) == 연세대학교로의 통합 == 두 학교는 초기에 모두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 서울지부에서 운영했다(제중원은 1894년 이후). 언더우드, 에비슨 등 학교 초기의 역사와 관련된 선교사들의 다수가 두 학교의 설립에 모두 관여했고 두 학교에서 동시에 강의하는 경우가 많았다. 양 학교는 일제하의 암울한 시기에 전 조선인의 기대를 받으며 성장, 발전하였다. 이후 한국인 교수진이 확충되면서 사실상의 운영이 차츰 한국인의 손으로 이관되었다. 연희전문학교 설립 직후인 1910년대 중반부터 미 북장로회 선교부는 두 학교의 통합을 계획했다. 양교의 통합을 통해 종합대학교로 승격을 꿈꾸던 연희는 의대를 추가할 수 있게 되고, 서울역 앞 좁은 부지로 고민하던 세브란스는 신촌의 넓은 부지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언더우드가 1916년 사망했지만 그의 사후 에비슨이 연희전문학교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두 학교의 교장을 겸임하게 되면서 양교의 통합 작업은 가속화되었다. 당시 언더우드의 친형이자 미국 타자기 재벌인 존 토머스 언더우드가 에비슨이 양교의 교장 업무 겸직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도록 자동차를 제공했고, 덕분에 에비슨은 매일 오전에 서울역 앞 세브란스로 출근했다가 오후에는 자가용으로 신촌의 연희전문학교로 이동해서 업무를 볼 수 있었다. 양교의 통합은 이미 191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언더우드의 친형인 존 토머스 언더우드와 클리블랜드의 재벌인 존 세브란스는 모두 미 북장로회 뉴욕선교본부의 이사였다. 이를 통해 언더우드 측이 세브란스 가문으로부터 제중원을 위한 기부금을 받아낸 바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뉴욕 선교본부 안에 '조선 개신교육을 위한 협력이사회'를 설립했고 존 언더우드가 회장, 존 세브란스가 재무위원장을 맡았다. 이후 1910년대 후반 존 언더우드와 존 세브란스는 협의 하에 각각 연희전문학교 및 세브란스의 교지 매입을 위한 기부금을 출연했고, 양교 통합을 전제로 신촌에 부지를 매입했다. 그리하여 존 언더우드의 기부금으로 연희전문학교 측은 신촌의 현 연세대 본교 주변 부지를 매입했고, 존 세브란스의 기부금을 받은 세브란스 측은 그 옆 현 세브란스 병원 인근 부지를 매입했다. 3.1 운동 후 일제의 유화적인 문화통치가 펼쳐지자 발빠르게 대학교 승격을 목표로 양교의 통합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빛을 보지 못하고 일제는 1924년 [[경성제국대학]] 하나만으로 조선의 대학을 퉁쳐버렸다.[* 학교 교과서에는 일제가 사립대학 승격을 불허한 대신 경성제대를 설립해서 퉁치고 입막음하려 했다는 식으로 설명되어 있으나 최근 들어서는 폐기된 이론이다. 일제는 [[민립대학설립운동]] 및 각 지역의 구제전문학교들의 사립대학 승격 요구 전부터 경성제대 개교 계획은 세워 왔으며 어쩌다 그 시기가 우연찮게 맞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다만 경성제대와는 별개로 조선인들이 고등교육을 받아서 의식수준이 높아지는 것을 경계해서 사립대학 추가 설립 및 승격을 불허한 건 사실이었다. 경성제대는 유일한 관립대학이라는 지위를 통해 식민지배에 충성하는 황국 청년들을 양성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경성제대 출신들이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건 아니다.] 경성제대가 세워지자, 오히려 연희전문학교 및 세브란스 의전 양교 통합에 관한 내부 조율이 빠르게 진척되어 [[1926년]] 연희전문학교 및 세브란스 의전 이사 및 교수진간에 양교 합동안이 합의되었다. 그러나 일제의 간섭 및 제지로 성취되지 못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걸쳐 몇 차례 합동안이 다시 제안되었으나 일제의 방해로 양교의 통합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8.15 광복]] 이후 양교의 통합이 다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두 학교의 통합을 전제로 1949학년도부터 세브란스 의과대학의 예과가 연희대학교에 설치되었다. 그러나 통합은 [[6.25 전쟁]]으로 다시 지연되고 말았다. 휴전 이후 연희대학과 세브란스 의과대학 통합 위원회가 한국 전쟁 이후 처음으로 개최되어 합동안을 제정했다. 한때 이화여대의 합류 가능성도 잠시 논의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학과들이 중복되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의견 제기 수준에서만 그치고 불발되었다. 연희와 세브란스 두 학교는 통합에는 이미 뜻을 같이 했지만 정작 통합된 학교의 교명에 대한 이견 때문에 오랫동안 통합이 지연되었다. 연희대학교 측은 세브란스 의과대학이 연희대학교 의과대학으로 통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세브란스 의과대학 측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이에 연희대학교 세브란스 의과대학이라는 명칭도 제안되었지만 역시 수용되지 않았다. 결국 1955년 '''연'''희와 '''세'''브란스의 앞 글자를 따 연세대학교라는 새로운 교명을 만드는 것에[* 단순히 이름만 붙인게 아니라 세상을(世) 이끄는(延) 인재를 기르는 대학이 되겠다는 의미까지 ~~끼워~~맞췄다.] 양측이 합의하였다. 1956년 재단법인 연세대학교가 설립되었고, 1957년 [[1월 5일]] 통합 '''연세대학교'''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초대 총장은 [[백낙준]], 부총장은 [[최현배]]였다. 이후 5월 둘째주 토요일을 창립기념일로 정하여 기념하게 되었다.~~개교기념일 휴강을 없애버리신 어르신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