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연천군 (문단 편집) == [[연천군/역사|역사]] == ||<-11> 연천군의 유래 || || 마련현[br](麻漣縣) ||<-2> → ||<-2> 연천현[br](漣川縣) ||<-2> → ||<-2> '''연천군[br](漣川郡)''' || [[삼국시대]] [[고구려]]의 공목달현(功木達縣)이 있었으며, 백제 시절에 석두성이 위치하고 있어 삼국사기에 기록된 '''고구려와 백제의 마지막 전면전'''이 벌어진 곳이다. [[신라]]가 차지한 이후 [[경덕왕]]의 전국 지명 한화 정책 때 공성현(功城縣)으로 고쳤다. [[고려]] 시대에는 장주(獐州)였다가 [[충선왕]] 때 연주(漣州)로 고쳤으며, [[조선]] [[태종(조선)|태종]] 때 연천(漣川)으로 바뀌어 현재에 이른다. [[일제강점기]] 시절인 [[1914년]]. 원래 있던 [[경기도]] 삭녕군을 [[일본 제국]]의 [[조선총독부]]에서는 자기들 마음대로 5시와 11시 방향으로 선을 그어서 서쪽과 남쪽을 연천군에, 북쪽과 동쪽을 [[강원도]] 철원군에 각각 붙여버리고 [[삭녕군]]을 없애버렸다. 그 이래로 삭녕군은 아직까지 부활하지 않았으며 설상가상으로 [[삼팔선]]이 쳐지면서 삭녕군이 모조리 북한 영토가 되었다가 [[6.25 전쟁]]으로 인해 휴전선이 쳐지면서 옛 삭녕군이었던 땅 중 [[철원군]]으로 붙은 옛 삭녕군은 독검리만 제외하고 전부 [[북한]] 영토가 된 반면, 연천군 쪽으로 붙은 삭녕군은 전부 [[대한민국]] 영토로 편입되었다. 참고로 삭녕군은 [[조선]]시대 기준으로 보면 '''경기도 최북단'''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통일 후 삭녕군을 복원시키면 삭녕군이 통일 한국에서 경기도 최북단이 된다. 1945년에 [[삼팔선]]이 그어지면서 [[북한]]에 대부분이 넘어갔으며, 이때 소련 군정 하에서 1946년 9월에 강원도로 이관된 후 동년 12월에 38선 이북으로 넘어간 포천군 청산면, 창수면을 편입하였다. 이후 [[6.25 전쟁]] 휴전 이후 연천군의 대부분이 수복되다. 그리고 [[군사분계선|휴전선]] 이남에 위치한 [[장단군]] 일부 면(面)들을 합했고 1963년 [[철원군]]에서 신서면을 넘겨 받았고 1983년 [[포천시|포천군]]에 관인면을 넘기고 청산면을 받아 와 현재에 이른다. 물론 1950년 중순 잠시 [[조선인민군]]에 의해 함락당하던 시절에는 북한이 이곳도 [[철원군]]으로 우겨넣은 적이 있었으나 [[인천상륙작전]]이후 이곳을 수복한 대한민국 정부가 연천군을 부활시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